그 때에 (눅2:1-7)

말벌의 생태를 연구하는 인도의 유명한 생물학자가 특별한 연구 업적을 남겼습니다. 이분의 관찰에 의하면 한 말벌 집단 개체군을 관찰했는데, 그중에 여왕벌이 될 만한 두 마리 벌이 보였습니다. 한 마리 벌은 강력하고 힘이 있었지만 포악해서 주변 벌들에게 마음을 잘 얻지 못했습니다. 또 한 마리 벌은 부드럽고 섬세하며 소통도 잘했지만, 처음 벌보다는 힘이 좀 약했습니다. 누가 여왕벌이 될까 흥미롭게 지켜봤더니, 그 개체군에서 부드러운 벌이 여왕벌이 되었습니다. 본인이 생각했던 상식과는 맞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적자생존의 세계에서 강한 리더가 있어야 이 개체군이 생존할 텐데, 왜 이 집단은 부드럽고 섬세한 벌을 여왕벌로 선택했을까 하는 의문이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개체군들도 그럴까 생각해서 또 다른 말벌 집단을 관찰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집단에서는 강한 벌이 여왕벌이 됩니다. 역시 그랬구나 싶었는데, 조금 더 살펴보자 해서 살펴봤더니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강한 벌이 여왕벌이 되었는데 다른 벌들이 일을 하지 않습니다. 태업을 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습니다. 심지어 여왕벌이 알을 낳으려고 하는데 재료도 갖다 주지 않습니다. 이건 전체 개체군의 생존과 관련된 일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벌들이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결국 그 여왕벌은 그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 집단을 떠나고 맙니다. 그러자 부드러운 벌이 이제 여왕벌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계처럼 돌아갑니다. 열심히 일하고 알아서 자기 일을 잘해 줍니다. 누가 명령하거나 부탁하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공동체가 재빠르게 회복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결국 벌 집단이나 사람 공동체나 이 부분에 있어서는 마찬가지가 아니겠습니까? 강한 것이 좋은 것처럼 보입니다. 강한 것이 결국은 이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강함이 사람들의 마음을 얻지 못한다면, 겸손한 사람, 부드러운 사람, 어쩌면 더 연약해 보이는 사람이 공동체 리더로서 더 적합할지도 모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은 성경에 나오는 가장 기념비적이고 특별한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예수님은 강한 군주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 예수님은 사람들 위에 군림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보면 작고 연약한 예수님이 여관이 없어서 말구유에 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탄생의 모습을 통해서 세상의 군주들 이면에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셨음을, 요셉과 마리아가 강인한 믿음을 가지고 살아갔음을, 또한 예수님의 겸손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함께 살피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요한을 출생했습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났습니다. 이제는 마리아가 아기를 낳을 차례가 되었습니다. 이제 순탄하게 아기를 낳으면 되는데, 세상에 한번 요동치는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벌어집니다.

본문 1절에서 3절입니다. "그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1. 숨어 계시는 하나님

1-1. 황제를 도구 삼으시는 하나님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에 호적령을 내렸습니다. 이 사람은 우리가 잘 아는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입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많이 남겼습니까? 이분이 로마 본토뿐만 아니라 로마 지경에 있는 식민지 모든 백성들에게 호적하라고 천하에 호적령을 내립니다. 로마는 통치를 이렇게 합니다. 그들이 본토뿐만 아니라 넓은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는데, 식민지 백성들에게 의무를 두 가지 부여했습니다. 하나는 세금 납부의 의무, 두 번째는 징집에 응할 의무를 부여합니다. 그건 당연한 일입니다. 당연히 국민들, 백성들은 세금을 내야 되고, 로마가 또 다른 영토 확보를 위해서 전쟁하러 가면 젊은이들을 차출하면 그 징집에 응해야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하려면 세금을 걷거나 징집을 하려면 가장 기초되는 자료가 있어야 되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인구 조사입니다. 그래서 지금 호적령을 내려서 인구 조사를 하는 장면입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 막달입니다. 언제 아기가 나올지 모릅니다. 그런데 마리아도 짐승을 타고 요셉과 함께 자기 고향으로 가서 호적하러 가야 되는 상황입니다. 자기 고향에 가서 나는 어디에 살고 있습니다, 우리 식구들은 이 정도입니다, 우리는 혼인한 사이입니다, 우리 자녀는 이렇습니다, 우리 재산 정도는 이러합니다 하고 호적 신고를 명확하게 해야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할 수 있는 불이익이 어마어마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외 없이 이 일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황제의 명령이기 때문에 어길 수 없는 강력하고 존엄한 명령입니다.

이런 상황을 보면 세상의 권력자들이 얼마나 기분이 좋겠습니까?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이 맛에 권력에 도취됩니다. 내가 던지는 한마디 말이라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다 일사불란하게 순종하고 복종하니 황제 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권력의 맛을 보면 그 말에 사람들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이것 때문에 권력을 놓지 못하는 것입니다. 작은 권력, 그 권력이 조금 더 큰 권력으로, 그 권력이 조금 더 큰 권력으로, 그렇게 권력의 상승의 욕구를 가지고 나는 천하의 어떤 사람보다도 더 강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로마 황제의 권력이 대단합니다. 이분의 한마디 말로 누구 하나 찍소리하지 못하고 움직여야 됩니다. 이런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황제가 세속에 거대하고 커다란 권력을 가지고 있지만 이 황제의 뒤에서 황제를 움직이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어버리면 안 됩니다. 이것은 우리끼리 하는 신앙고백이 아닙니다. 역사가 하나님께서 이 모든 세상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고 입증하고 있습니다.

미가서 5장 2절 말씀입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 있느니라"

미가 선지자 예언의 핵심이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 메시아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이사야 선지자와 동시대 인물입니다.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전 7세기 어간에 예언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분의 말씀이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아버지 요셉이 살았던 곳은 갈릴리 나사렛입니다. 갈릴리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는 약 150킬로미터에서 160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거리입니다.

만약 황제의 명령이 없었다면, 황제의 호적령이 없었다면 임신 막달에 언제 아이가 나올지 모르는 이 상황에 베들레헴까지 짐승 타고 갈 일이 있었겠습니까? 아무리 누가 떠밀어도 갈 수가 없는 상황 아닙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는 도구로 세속의 최고의 권력자 황제가 그 수단으로, 그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황제는 이것을 알 길이 없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겠습니까? 내 말 한마디에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다 움직인다는 이 쾌감을 가지고 그가 정치하고 있는데, 그런데 그는 모르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도 역시 하나님 손 위에 있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있으면서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당신의 말씀의 역사를 성취하고 이루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알 길이 없습니다.

1-2.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

이뿐만이 아닙니다. 남유다는 기원전 586년에 멸망당합니다. 유다가 망하고 나서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갑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이전에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해서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면 70년이 지나면 해방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포로로 살고 있었던 유다 백성들은 암담합니다. 누가 우리를 해방시켜 주나? 언제 이 바벨론이 망할 것인가? 누가 우리를 우리 고향으로 돌아가게 할 것인가? 그런데 정말 70년이 지나자 그 일이 현실이 됩니다. 철통 같았던 바벨론이 무너져 내립니다. 고레스 왕을 통해서 페르시아 제국이 부흥하고 그분이 바벨론을 멸망시키고 또 다른 제국을 이루어 갑니다. 그분의 정치적인 판단에 의해서 유다 백성들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해방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들이 자기 고향에 가서 이제 성전을 짓고 살게 되었습니다.

고레스는 하나님을 모르는 백성입니다. 이방 사람입니다. 그는 황제의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이방 민족들 다 돌아가라고 명령을 내린 것입니다. 그의 정치적 판단이 어떠했든지 그것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이 고레스 왕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세속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신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이런 하나님을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사야 45장 15절 말씀입니다.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