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국제정세 평가
- 2020년 1월, 우한을 비롯한 후베이성의 주요 도시들에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시작하여 2월과 3월을 거치며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서구 선진국들은 코로나19 대응에 총체적으로 실패했다. 3월, 이탈리아에서 전면 확대되었고, 이후 프랑스와 영국 등으로 확산됐다. 미국에서의 대응은 재앙 그 자체였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공공성의 파괴는 이번 전염병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욱 파괴적일 수 있음을 방증했다.
- 코로나19를 둘러싼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 간 ‘책임론’ 공방으로 미중 전략경쟁 추세가 가속화됐다. 미국과 중국 모두 역내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위한 다툼을 치열하게 전개됐다. 쟁점은 코로나19를 둘러싼 ‘책임론’ 공방, 무역분쟁과 기술패권을 둘러싼 대결, 홍콩·대만문제를 둘러싼 대결 등으로 옮겨갔다.
-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중국 책임론을 제기하고, WHO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 행사를 문제 삼았다. 또,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기조를 바탕으로 중국 견제를 위한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려 했다. 일본, 호주, 인도와 쿼드(Quad)를 추진하고, 11월에는 이들과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했다. 하지만 정작 Quad 4개국 국무장관들이 모인 자리에서 일본과 인도가 난색을 표하면서 실질적인 합의안을 도출하는 것에 실패했다. 중국을 견제하면서도 미국이 원하는 방식에 완전히 편입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 중국 정부는 2019년 여름부터 이어져온 홍콩 항쟁 흐름을 완전하게 차단하기 위해 초강수를 두었다. 5월 말 전국인대에서 홍콩 국가안전법을 통과시켰고, 7월 이후 전면 시행되었다. 이는 홍콩 항쟁의 불씨를 이어가려 했던 홍콩 내 범민주파에게 크나큰 시련으로 다가왔다. 지미 라이와 조슈아 웡 등 민주파 내 리버럴 인사들만이 아니라, 왼쪽의 직공맹 등 좌파, 오른쪽의 독립파에게도 전방위적 탄압이 가해졌다.
- 한편 중국 정부는 남중국해와 인도 접경의 분쟁지역에서 군사적 충돌의 긴장을 마주해야 했다. 이는 미국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무관하지 않은 결과로 보인다. 인도-중국 양국 국민들의 애국주의에 기반한 분노가 폭발했고, 잠시 불씨를 꺼뜨리긴 했지만 이 지역 화약고는 그대로다. 남중국해 역시 대만 해협에서의 긴장이 불안하게 반복됐다.
- 중국 정부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와 압박에 전면적으로 맞서기 보다는 신중하게 대응해왔다. 여름을 경과해 어느 정도 전염병 전파를 차단하게 된 중국은 ‘중국식 방역 모델’을 국제사회에 홍보하려 했으나 그리 효과적이진 않았다. 서구 사회가 바이러스 대유행에 대한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게 되면서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다시 회복되고 있다. 그러나 중국에 대한 세계 주요 국가들의 여론 추세는 역대 최저수준으로 악화되었다. 이는 홍콩 시위에 대한 초강경 진압, 서구 언론들의 비판 등이 영향을 미친 결과로 보인다.
- 2019년 하노이 회담과 스톡홀름 실무협상이 결렬된 이후 북미관계와 남북관계의 교착상태가 지속됐다. 문재인 정부는 방위비 분담금 문제, 전시작전권 전환 문제 등에서 트럼프 행정부와 견해차를 보였지만, 근본적으로는 미국이 설정한 대한반도 가이드라인을 벗어나지 않았다. 대선을 앞두었던 트럼프는 국내 문제 관리에 겨를이 없었고, 북미관계 개선을 시급한 지렛대로 여기지 않았다. 나아가 문재인 정부는 강제동원피해자 문제를 둘러싼 갈등을 극복할 모멘텀을 찾지 못했다.
미국
국내 경제
- 미국은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은 나라다. 갑작스러운 봉쇄 조치로 인해 실물경제의 수요와 생산이 크게 위축되었고, 대외 무역적자 폭도 확대됐다. 특히 대규모 실업이 발생하여 가계의 소비여력이 줄어들었고, 코로나 초기 비농가취업자수의 감소는 사상 최대 규모인 2,216만명에 달했다.
- 이에 따라 2020년 1분기 미국 경제는 마이너스 1.3%를 기록했고, 코로나 19 대유행의 영향이 본격화한 2분기에는 -9%의 역성장을 기록했다. 그러다 3분기에 다다러 성장률이 7.5%로 급등하여 한 분기만에 V자 회복을 한 것처럼 보였다. 더구나 증권 시장까지 크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실물 경제를 살펴보면 3분기 생산규모는 2020년 1분기 생산규모도, 2019년 4분기 생산규모도 회복하지 못했다. 취업자수 역시 하반기에 1200만 명 가령 늘긴 했지만, 여전히도 팬데믹 이전에 비하면 매우 낮다. 여러 예측대로 2020년 4분기에 1% 내외의 성장을 기록했을 경우 해당 분기 생산규모는 2019년 4분기 생산규모의 97.5% 남짓이다. 이를 연간으로 보면 지난해 2020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3.5%를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IMF는 2020년 10월 펴낸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2020년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4.3%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2019년 생산규모가 100이라면 2020년 생산규모는 95.7~96.5%에 머문다는 얘기다. 즉, 경제위기가 아닌 시기를 상정했을 때 예상되는 생산 궤적과의 괴리는 매우 크다.
- 이번 경제위기는 11년 전 금융위기보다도 심각한 수준이다. 1930-1933년 사이 연속 4개년에 걸친 마이너스 성장(대불황)이 있었고, 특히 1932년 경제성장률은 -12.9%를 기록했다. 1938년에도 또 다른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였다. 이번 경제위기는 2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46년 군비 지출의 급격한 감소로 -11.6%을 기록한 것을 제외하면, 1932년 이후 가장 심각하다. 이마저도 대대적인 정부지출 증대와 재정적자, 제로 이자율과 크게 늘어난 정부 부채, 금융투기 등을 댓가로 한 것이기에 내상이 깊다. 더구나 팬데믹으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저임금 노동자들이 만연한 서비스업이다. 이 때문에 소득 불평등도 심화됐다.
- 물론 이번 위기는 1930년대 대불황에 견줄 정도의 위기는 아닐 가능성이 높다. 당시에는 국가적 차원의 개입이 없었거나 뒤늦었고, 오늘날에는 상당한 국가정책적 개입이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경제위기의 심도나 전개를 전망하는 데 있어서 이 변수가 고려해야 한다. 정부 개입의 효과가 전혀 없는 것처럼 치부해봤자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는 걸 방해할 뿐이고, 사회운동은 국가 개입의 수단과 규모, 방향 등을 고려해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 2021년 미국 경제는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을 통해 팬데민 상황이 완전히 개선될 때까지 매우 완만한 회복 양상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화이자, 모더나, 존슨앤존슨 등이 백신 생산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1인당 2회씩 접종해야 하고 현재 매일 134만 명에게 접종하고 있는 상황으로 볼 때, 완전한 접종을 이루려면 18개월 가량의 시간이 걸려 해를 넘겨야 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올 하반기는 되어야 눈에 띄는 성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 이런 가운데 미국의 증권시장은 저금리와 일부 업종의 이윤 증대로 인해 폭등세를 기록해왔다. 특히 나스닥에 상장된 빅테크 기업, 테슬라나 아마존 등 초대형 기업에 의존해 가파른 상승세를 보여왔다. 거품에 대한 경고가 나오고 있긴 하지만, 거품이 폭발하는 시기나 정도를 판단하기는 어렵다.
- 2021년 미국 경제는 전년대비 3% 가량 성장하여 2019년 수준을 어느 정도 회복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백신 보급과 정부의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에 힘입어 소비와 투자 등 내수가 경제회복을 주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소비 역시 가계저축이 늘고, 노동시장이 다소 회복됨에 따라 매우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전망이다. 하지만 막대한 기업 부채와 경제정책의 불확실성, 저금리 기조에 힘입은 가계부채의 빠른 증가는 미국 주택시장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로 남아 있다. 더구나 노동시장이 매우 불균형적으로 회복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어, 실업 수준은 계속해서 심각한 수준으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당연히 노동시장의 불안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국제정치
- 임기 막바지 트럼프는 중국에 대한 공격을 되풀이했다. 국방부는 중국해양공사와 샤오미 등 9개 기업을 중국 국방부와의 연계 가능성을 이유로 제재 대상에 추가했다. 중국 정부는 이에 대해 맹비난했으나, 바이든은 의사당 시위와 탄핵 등 첨예한 쟁점이 폭발한 상황에 대해서도 트럼프의 ‘대통령노릇’에 대해 아무런 멘트도 하지 않았다. ‘못 본 척’하고 계승하겠다는 취지로 보인다. 그렇지 않아도 미국의 싱크탱크들은 좌우 막론 중국에 대한 트럼프의 강경한 기조를 계승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 많은 이들이 바이든(Biden) 미 행정부가 자유주의 가치와 다자주의적 접근을 추구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5G 기술, 무역규범, 역내안보 등 분야에서 QUAD와 D10 등 동맹 국가들과 협력을 강화하고, WTO를 다시 미국이 주도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혁을 추진하고, 이를 밑거름 삼아 무역통상 이슈에 접근하려 할 것이다. 대중국 통상과 글로벌 공급사슬에서는 트럼프와 같은 보호무역주의적 전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큰 틀에서 바이든은 레토릭적 요소에서는 트럼프와 차이가 있겠지만, 전반적인 기조는 트럼프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에 따라 바이든 임기 기간 아시아에 대한 미국의 군사적·외교적·경제적 관여와 간섭은 강화될 것이다. 바깥으로 드러나는 거친 레토릭은 완화될 것이고, 트럼프 정부와는 달리 우방을 다시 재확보하려는 노력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전반적인 기조는 유지함으로써 국제질서의 양극화, 자유주의 대 반자유주의 간 진영화는 강화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