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가 게으르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그래서 100일 동안 쓰겠다던 글이 200일이 되었고, 그 200일도 지나 올해 안에는 무조건 끝내겠다고 다짐했다. 어찌어찌 써내고는 있다. 당신의 눈에는 억지로 쓰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언제나 글쓰기가 괴롭고도 즐겁다. 걱정은 오롯이 내 몫이니, 당신은 그저 입맛대로 맛나게 읽어주시면 고맙겠다.

나는 글을 쓰면서 늘 조심하는 부분이 있는데, 절대로 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글은 밖으로 내보내지 않는 것이다. 평소 나는 내 기준에서 재밌고, 공감이 되고, 만족하는 글은 몇 번이고 다시 읽어본다. 반대로 내가 봐도 별로인 글은, 말 그대로 꼴 보기가 싫다. 내가 쓴 글인데 나 하나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글이 무슨 소용이람.

일기조차도 내가 무엇을 경험했는지,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쓰는 과정 아닌가. 일기가 '맛깔나게'

쓰여서 만족하는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썼는가, 사실대로 썼는가, 쪽팔리더라도 인정할 건 인정하는가. 일기는 나를 앞에 두고 나와 대화하는 일이라, 거짓 없이 썼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그 일기의 진짜 의미를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하지만 나도 '글'이라고 하면 입장이 달라진다. 일기에서 글로 단어 하나만 줄어들었을 뿐인데, 용기도 그만큼 뚝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글에 대한 부담감을 가진다는 건, 펜을 잡아야 글씨를 쓰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부담감을 펜처럼 쥐고서 어찌어찌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러던 와중에, '기운 좋은 젊은이'라는 재밌는 문장을 가진 카페를 가게 된 어느 날.

사장님은 음료와 함께 작은 카드를 건네주셨다. 손바닥 하나 정도만 한 크기였는데, 거기에 10 포인트 정도 되는 크기로 20줄이 가득 쓰여있었다. 내용을 요약을 하자면, 1. 힘든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 2. 이런 사례를 보았다 3. 당신도 이 글을 읽고 마음이 녹았으면 좋겠다 4. 전시를 재밌게 보시길. 이것뿐이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이 카드 하나만 보고 이상한 용기를 얻었다.

매일 이 카드만 한 글만 쓰면 되지 않을까?

그 작은 카드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었다. 문제, 공감, 방향, 메시지. 잘 쓰인 것이구나. 적어도 나에게는 만족스러운 글이었던 것이다. 집에 가져와 자석보드에 붙여두고선, 유난히 펜 잡는 게 귀찮고 두려운 날에는 카드를 다시 읽어본다.

이야... 정말 별거 없는데, 근데 찝찝한 거 하나 없이 좋네. 그래, 딱 저만큼의 글만 쓰자.

그리곤 책상에 앉으면 어김없이 이렇게 긴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 그래, 내가 부족한 것이다. 이 글을 읽게 된 당신이 어쨌든 귀한 시간을 내어 읽고 있는데, 딱 20줄만 읽고도 내가 말하고 싶은 바를 정확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전달력이 높았다면 이렇게 장황하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참 미안하고 고마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