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본문: 창세기 24:1-9

대한상공회의소에서는 5년마다 국내 100대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조사합니다. 2023년 조사 결과 1위는 '책임의식을 가진 인재'였습니다. 5년 전인 2018년에 책임의식은 5위에 불과했습니다. 그때는 도전정신, 창의성, 소통, 열정, 전문성 등이 상위권을 차지했는데, 이제는 책임의식이 창의성보다, 소통보다, 전문성보다 더 가치 있게 평가받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5년 만에 어떻게 이렇게 바뀌었을까요? 지난 몇 년 동안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은퇴하고 그 자리를 MZ세대가 채웠습니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특징은 개인보다는 조직을, 가정보다는 회사를 더 위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뼈 빠지게 일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MZ세대는 다릅니다. 조직보다는 개인을, 회사보다는 가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워라밸을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다 보니 기업 입장에서는 걱정이 됩니다. 이들을 데리고 국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까? 이전처럼 경쟁력 있는 회사를 유지할 수 있을까? 그래서 책임의식을 가진 사람을 직원으로 채용하고, 동시에 그에 따른 혜택과 보상도 준비합니다.

세상의 어느 조직이든, 어느 사회든 책임을 다하고 최선을 다해 성과를 내면 혜택과 보상은 당연히 따라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기업이 그러한데, 오늘 이 세상이 그러한데, 신앙의 세계는 어떠할까요? 하나님의 세계에서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총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신비의 영역입니다. 하나님이 왜 나를 택하셨을까? 왜 나 같은 존재를 택하시고 구원해 주셨을까? 그것은 우리가 천국에 가서 하나님께 여쭈어 봐야 될 일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하나님의 신비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구원 이후에 주어지는 복은 다릅니다. 우리가 복 받을 행동을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비하신 복을, 그 원천적인 복을 부어 주십니다. 오늘 아브라함이 그 복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입증합니다.

범사의 복, 기도하는 자의 특권

아브라함은 사라의 장례를 치르면서 하나님께는 영광과 기쁨이 되고,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빛과 소금이 되었습니다. 성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가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62년 동안 거주하는 동안 그의 삶은 믿음으로 성공적인 인생이었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노년을 성경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창 24:1)

여호와께서 그에게 범사에 복을 주셨습니다. 모든 일을 복되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복은 특별합니다. 동사 '바라크'는 '무릎을 꿇다'라는 말과 연동되어 있습니다. 무릎을 꿇어야 그것이 복이 됩니다. 창세기부터 시작해서 성경 전체가 이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 2: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습니다. 안식일을 복 주셨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안식일의 모든 사람에게 복을 주셨다는 말이 아니라, 무릎을 꿇는 자에게 안식일의 복이 주어진다는 뜻입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그 자리에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 자기주장을 내려놓고 엎드려 기도하는 자, 무릎을 꿇는 자를 하나님은 복되다 하시고 그를 통해 하나님의 복을 내려주신다는 뜻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철저하게 기도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노년은 기도했고, 그 기도가 그의 범사에 복이 되었고,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 같으나 결코 쉽지 않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어가면서, 늙어가면서 기도하고 매사에 하나님께 묻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어가면 연륜도 쌓이고 경험도 쌓입니다. 물질도 있을 만큼 쌓입니다. 인간관계도 폭이 더 넓어집니다. 웬만한 것은 자기 경험과 연륜과 인간관계와 쌓아놓은 물질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면 기도를 더 많이 할 것 같습니다. 시간도 많고 하는 일도 별로 없고 직장도 다 은퇴했으니 당연히 기도를 더 많이 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살아보면 오히려 나이 들수록 기도하지 않습니다. 젊을 때는 무엇을 잘 몰라서, 젊을 때는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앞뒤 좌우를 분별하지 못해서, 기도해서 하나님 은혜를 구하지 않으면 안 되니까, 연약하니까 기도했는데, 나이 들수록 기도가 더 무뎌지고 기도의 시간이 더 짧아집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반대로 살았습니다. 노년이 되어서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무릎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분별의 복, 시대정신을 꿰뚫어 보다

이제 구체적으로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성경이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내 허벅지 밑에 네 손을 넣으라" (창 24:2)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은 다메섹 엘리에셀입니다. 창세기 15장에 처음 등장하는데, 롯이 소돔으로 떠나고 난 다음에 아브라함은 이 사람을 자기 상속자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네 몸에서 날 자라야 네 후사라 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그때 젊은이였던 다메섹 엘리에셀이 그 집에서 평생을 살아서 늙은 종이 되었습니다.

종에게 허벅지에 손을 넣으라고 합니다. 아주 중요한 맹세를 할 때, 절대로 이 약속을 어기지 않겠습니다 할 때, 허벅지 아래에 손을 넣고 약속합니다. 도대체 아브라함이 이 종에게 어떤 약속을 하려고, 무엇을 다짐받으려고 그렇게 한 것입니까?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창 24:3-4)

우리는 이 말씀을 그저 믿음의 결혼을 원하는 한 아버지의 소원이라고만 읽어서는 곤란합니다. 당연히 믿음 있는 아버지는 자녀가 믿음의 결혼을 하기를 원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구체적이고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은 가나안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내 아들의 아내를 택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