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특강-8: 두 증인과 일곱 번째 나팔 (11장)

요한계시록 11장 3절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1. 계시록의 전체 흐름

오늘은 요한계시록 여덟 번째 시간입니다. 11장을 함께 공부하게 되었는데, 계시록이 22장까지 있으니 오늘 공부하면 딱 절반을 함께 나누는 셈입니다. 이제 절반 가까이 왔으니 1장부터 지금까지 오는 동안 적어도 큰 대략적인 얼개 정도는 우리가 머릿속에 넣고 있어야 합니다.

1장은 제목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하였습니다. 계시의 말씀을 읽는 자, 그리고 지키는 자, 보는 자,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말씀이고, 2장과 3장은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 일곱 교회에 주시는 말씀에서 7이라는 숫자는 계시록에서 상당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데, 하늘의 수와 땅의 수가 합쳐진 완전수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소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뿐만 아니고 앞으로 올 모든 교회가 7이라는 숫자에 다 담겨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4장부터가 계시록의 본격적인 계시의 말씀인데, 4장은 요한이 하늘에 올라가 보니 하나님의 보좌가 계시고, 보좌 주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있고, 천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5장과 6장을 보면 계시록의 심판 가운데 첫 번째 심판이 나오죠. 첫 번째 심판이 무엇입니까? 일곱 인 심판이 5장과 6장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마지막 일곱 번째 인을 떼실 때 심판은 6장에 나오지 않고, 7장을 건너가서 8장을 시작할 때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그 의미는 하나님께서 심판을 지연시키시고 그 기간 동안 오래 참고 기다리고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심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그렇게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7장에 가니 십사만 사천의 의미에 대해서 말씀한다고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리고 8장과 9장에 가니 계시록의 심판 스토리 가운데 두 번째 심판인 일곱 나팔 심판이 8장과 9장에 나옵니다. 그런데 그것도 똑같이 일곱 심판 가운데 전부 다 들어 있는 것이 아니고, 마지막 일곱 번째 나팔은 저 뒤쪽에 오늘 우리가 살펴볼 11장, 그것도 한참 뒤에 제일 마지막에 숨겨져 있습니다. 그러면 10장과 11장 그 앞까지는 마지막 일곱 번째 나팔을 불기까지 오래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와 인내의 사랑이 녹아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일곱 번째 심판이 오기까지, 일곱 번째 나팔을 불기까지 그냥 기다리는 게 아니잖아요. 하나님은 어떻게 기다리십니까? 10장에 보니 펴놓인 작은 두루마리,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말씀대로 살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10장에 나와 있고, 오늘 11장은 이제 하나님이 증인을 보내십니다. 보다보다 답답해서 두 증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두 증인이 돌아오라 돌아오라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거기에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계시록을 우리가 절반 정도 지금 살펴보았는데, 계시록이 무서운 책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과 인내와 오래 참음의 책입니까? 후자라고 보셔야 되죠. 심판은 반드시 있는데, 하나님의 심판은 계속해서 지연되고 또 오래 참고 기다리고 바라고 계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지연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판하시는데, 그 심판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서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기다림과 사랑의 손길을 우린 계시록을 통해서 읽어내야 합니다.

2. 성전을 측량하라

오늘은 두 증인 이야기가 나오는데 한번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사도 요한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시며 명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에게 명한 것이 무엇이냐, 1절을 보니 "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하였습니다. 성경을 읽으실 때는 '나'는 누군지, 말하는 분은 누군지를 적어가면서 보셔야 됩니다. 지팡이 같은 갈대를 줄 때 '나'는 사도 요한이겠죠. 사도 요한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신 분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이시라고 볼 수도 있고, 지난 시간에 맥락에 의하면 힘센 천사라고 볼 수도 있죠. 힘센 천사는 그냥 힘센 천사가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사도 요한에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신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라고 그렇게 보시는 게 훨씬 더 정확합니다.

뭐라고 말씀하셨는가.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측량하라." 측량할 대상이 몇 가지가 있습니까? 세 가지가 나오죠.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성전, 제단,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입니다. 사도 요한에게 세 가지를 측량해보라 하셨습니다. 측량이 뭡니까? 재는 거죠. 자를 가지고 잽니다. 자는 오늘은 이랬다가 내일은 저랬다가 하는 겁니까? 정확한 기준이 있죠. 우리가 자 댄다고 그러잖아요. 절대 변하지 않는 정확한 기준을 가지고 세 가지를 측량하는데, 성전도 제단도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 즉 예배드리는 자들도 측량하라 하셨습니다.

그럼 여기서 우리가 측량한다는 의미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측량한다는 의미가 뭘까요. 여기서 의미는 달아본다는 의미보다는 보호한다, 지킨다, 내가 책임지겠다 하는 의미가 훨씬 더 강합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부모님이 자녀들 방에 줄자를 가지고 들어가서 이쪽 벽도 재고, 천장 높이도 재고, 사이즈도 잽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아, 우리 어머니가, 우리 아버지가 책상을 하나 들여다 주시려는 건가, 침대를 하나 바꿔 주시려는 건가,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여기에 측량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리고 우리 인생의 성전과 제단과 예배드리는 자를 측량한다는 말은, 내가 너희들을 살피고 돌보고 책임지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 책임지겠다는 게 무작정 책임지겠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무작정이 아니라 자 대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 하나님의 자 대 안에, 하나님의 측량의 줄자 안에 들어와 있는 사람을 내가 책임지고 돌보겠다는 의미를 그렇게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됩니까? 하나님의 자 대 안에 들어와 있어야죠. 하나님의 잣대가 뭡니까? 변함없는 하나님의 잣대,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영원토록 변함없는 하나님의 잣대는 말씀이죠. 사람은 이랬다 저랬다 하고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계속해서 바뀌는 것이 사람인데,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종말의 때에 성전과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자들과 제단에서 분향하는 자들을 측량하고 계시고, 그 안에 들어 있는 자들을 하나님은 무조건 책임지고 돌본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 우리가 이 종말의 시기를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 말씀을 받는 도미티아누스 황제 박해 가운데 살고 있었던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이 편지를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이었을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렇구나, 하나님이 나를 측량하고 계시는구나, 책임지고 계시는구나. 그럼 나는 하나님의 영원한 언약의 말씀 가운데 생명 걸고 이 말씀을 붙들고 지키려고 발버둥치고 노력해야 되겠구나. 그런 마음을 가지지 않겠습니까?

2-1. 성전 바깥 마당

2절을 한번 볼게요. "그런데 성전 바깥 마당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 두라 이것은 이방인에게 주었은즉 그들이 거룩한 성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우리가 여기서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것은 성전 바깥 마당은 버린 공간이라고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성전의 조감도를 우리 지난번에 예배학교 때 성전 조감도, 성전의 모형을 다 보셔서 아마 머릿속에 기억하고 계실 텐데, 성전 마당도 성전입니다. 성전 마당도 하나님의 성전이에요. 이방인의 뜰도 있고, 거기에 하나님의 백성들도 오가고, 성전 마당도 성전인데, 이곳은 측량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방인에게 내버려 두라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성전을 지키고 돌보시지만, 그러나 이방인이 성전을 침탈하는 것까지 하나님이 허락하셨다는 뜻입니다. 종말의 때에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난 받고 핍박 받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지금 힘들고 어렵게 사는 것까지도 하나님은 부분적으로는 허락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난의 기간이 얼마 동안이냐. 마흔두 달 동안이라 하였습니다.

여기 마흔두 달 동안이라는 기간이 중요한데, 3년 6개월이잖아요. 3년 6개월 동안 딱 지나고 고난이 끝난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42달에 대해서 여러 해석들이 있고, 이단들이 이것 가지고 수없이 말장난을 했기 때문에 사실은 이 기간을 이렇다 저렇다 설명하는 것보다, 이걸 우리가 이해할 때는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의 기간이 한정적이라고 이렇게 이해하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한계가 있다, 끝이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난 당하는 것도 허락하셨는데, 하나님의 백성도 고난 당하잖아요. 성전 바깥 뜰이 짓밟히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인데, 그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허락하신 고난의 기간은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