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하 특강 8 - 광야에서 (1)

사무엘상 21-23장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사무엘상 22:1-2)

오늘은 사무엘서 공부 여덟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부터 다윗 이야기의 절정으로 들어갑니다. 제목에서 보시다시피 '광야에서'라는 제목입니다.

다윗 이야기의 절정은 다윗이 왕이 되어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지배하는 능력자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은 광야에서 보낸 세월, 광야에서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셨던 시간, 이 시간들이 다윗 이야기의 절정입니다. 우리 인생도 살펴보면 반전의 계기들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들을 그래프로 그려보면 단계마다 마디마다 화려했던 시간도 있고, 저 밑바닥에서 힘들었던 시간도 있습니다. 그중에서 힘겨웠지만 하나님과 함께함이 있었던 시간을 우리는 광야라고 부릅니다. 죄 지어서 힘든 것 말고, 하나님과 함께했던 어려웠던 시간이 광야입니다. 그 광야의 시간들이 오늘 우리를 있게 한 힘이 되고 원동력이 됩니다.

요셉 인생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는 나중에 이집트의 총리가 되어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었던 그 자리가 아닙니다. 아버지 집에서 채색 옷을 지어 입고 형제들 위에 군림했던 그 자리도 아닙니다. 그가 팔려서 노예로, 그리고 죄수로 살았던 그 시간,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셔서 요셉이 형통하였더라 했던 창세기 39장의 그 시간이 요셉 인생의 최고의 하이라이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공생애에서 최고의 하이라이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부활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부활이 십자가 없이 가능했겠습니까? 그래서 십자가가 우리 주님이 이 땅에서 보낸 최고의 시간입니다. 십자가를 빼고 어떻게 부활을 논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가 다윗을 공부하는 목적은 광야를 한번 되새겨 보자는 것입니다. 사실 광야는 생각하기 싫습니다. 힘겨워서 눈물로 보냈던 시간들, 힘든데 하나님 한 분 붙잡고 기도하고 통곡했던 시간들, 돌아보면 힘겨웠고 생각하기 싫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옛날에 돌아가신 할머니는 수제비 먹기 싫어하셨습니다. 너무 힘겨워서 수제비만 먹었던 그 시절이 너무 힘들어서 수제비는 죽어도 안 먹겠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수제비를 먹으면서도 기도하고 하나님과 함께했던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참 좋아하셨습니다.

사실 우리가 보내는 이 시간들, 지금은 잘 먹고 잘 살고 걱정 없이 사는 분들이 계시지만 과거에 광야 시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뛰고 기쁘고 그 설렘들이 있습니다. 그것을 다윗의 광야 생활을 통해서 느껴봤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광야로 몰아넣으셨는데 훈련을 대충 시키시는 것이 아닙니다. 벼랑 끝까지 몰아가시고 정말 힘들게 훈련시키십니다. 왜 그렇게 하시느냐 하면 귀하게 사용하셔야 되기 때문입니다. 귀하게 사용하려면 광야 훈련이 고될 수밖에 없습니다. 강한 훈련을 받아야 근육이 생기고 내성이 생기고 힘이 생기는 것 아닙니까? 하다 말면 안 한 것만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훈련시키시는 것이 그냥 훈련시키시는 것이 아니라 굉장한 고난이도의 훈련을 시키십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혼자 몸이 아니고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를 이끌어가야 할 굉장한 책임감 있는 사람을 세우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훈련을 잘 받고 잘 통과하면 다윗은 훌륭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가 공부할 때 광야 1, 광야 2, 광야 3의 세 단원에 걸쳐서 공부하는데 오늘은 21장에서 23장까지 살펴보겠습니다.

1. 성전으로 간 다윗

1-1. 다윗의 첫 피신처

왕궁에서 나온 다윗이 가장 먼저 간 곳은 어디였습니까? 쫓겨난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하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자기 발로 나온 것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나오니 갈 데가 없습니다. 어디로 가겠습니까?

21장 1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놉에 가서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여 그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고 함께 하는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니" 정말 답답하고 힘들 때 성전에 간 것입니다. 제사장에게 간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 다윗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정말 막막한 힘든 일을 만나면, 막다른 길에 딱 이르게 되면 제일 먼저 어디가 생각납니까? 교회에 와서 그냥 하나님께 엎드리고 기도해야 되겠다는 것, 그 생각밖에 나지 않습니다. 너무 힘들면 사람 붙들고 울어봐야 아무 해결도 안 되는데, 하나님 앞에 가서 하나님께 울며 통곡하고 토로해야 그래도 마음이나 편안해집니다.

다윗이 갈 데가 없었습니다. 쫓겨나니 곳곳에서 다윗을 다 알아봅니다. 다윗은 사울의 군대 장관이었고 가는 곳마다 지혜롭게 행해서 백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사람 아닙니까? 그러니 그가 누구에게 가서 부탁하고 누구에게 가서 숨을 수 있겠습니까? 성전에 간 것입니다. 제사장에게. 그랬더니 제사장이 다윗을 영접합니다. 아히멜렉이 영접했다는 말을 보면 교회가 이래야 되겠구나 싶습니다. 누가 오든지 간에 영접하고 맞아들이고, 목회자는 누구든지 어서 오시라고 환영해야 되겠구나 하는 것을 깨닫습니다.

1-2. 다윗의 거짓말

다윗이 아히멜렉 제사장에게 무엇을 요구했습니까? 여기서 우리는 다윗의 약함을 봅니다. 거짓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2절을 보십시오. "다윗이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왕이 내게 일을 명령하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보내는 것과 네게 명령한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시기로 내가 나의 소년들을 이러이러한 곳으로 오라고 하였나이다" 다윗이 함께한 자기 부하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지금 왕의 비밀 명령을 수행하고 있는 중이라고 거짓말을 합니다. 우리가 다윗의 심정을 이해합니다. 왕이 나를 죽이려고 해서 내가 지금 수배 중입니다, 쫓겨났습니다 하는 말을 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말한 것인데, 이 작은 거짓말이 나중에 큰 파장을 불러일으킵니다.

3절, "이제 당신의 수중에 무엇이 있나이까 떡 다섯 덩이나 무엇이든지 있는 대로 내 손에 주소서" 배가 너무 고파서 먹을 것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밥 얻어먹을 데도 없고 입을 축일 것도 없어서 떡을 달라고 요구합니다. 또 8절을 보시면 "다윗이 아히멜렉에게 이르되 여기 당신의 수중에 창이나 칼이 없나이까 왕의 일이 급하므로 내가 내 칼과 무기를 가지지 못하였나이다" 누가 보더라도 이것은 뭔가 석연치 않습니다. 다윗은 왕의 군대 장관 아닙니까? 그런데 무기 없이 길을 나섰습니다. 왕의 비밀 작전을 수행하는 사람이 칼도 없고 창도 없고 무기도 없이 그냥 나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성전에 와서 칼이나 창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도 거짓말입니다.

1-3. 진설병을 준 제사장

아히멜렉은 뭔가 석연치 않고 불편했습니다. 옛날 다윗, 이전의 다윗과 다른 모습입니다. 쫓기는 것 같고 불안한 것 같고 사람이 달라 보입니다. 그런데 평안하게 하고 다윗을 잘 대접해 줍니다. 4절, "제사장이 다윗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보통 떡은 내 수중에 없으나 거룩한 떡은 있나니" 거룩한 떡이 무엇입니까? 제사장이 가지고 있는 거룩한 떡, 우리가 레위기에서 배운 진설병입니다. 거기에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 낸 떡밖에 없었습니다. 이 떡은 더운 떡을 들이는 날에 물러 낸 것이었습니다.

진설병은 제사장 외에 다른 사람이 먹어도 됩니까? 레위기 24장을 보십시오. "이 떡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리고 그들은 그것을 거룩한 곳에서 먹을지니 이는 여호와의 화제 중 그에게 돌리는 것으로서 지극히 거룩함이니라 이는 영원한 규례니라" 아론과 그의 자손들, 제사장들만 먹도록 법이 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히멜렉이 다윗과 그와 함께한 부하들에게 주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