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의 목표는 언제나 그렇듯이 원대하다. 지덕체와 작과 업에 따른 일간, 주간, 연간 루틴을 세웠다. 지덕체라는 말에서 일단 실소가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간단히 말해 지는 더 많은 것을 알아가고 생각해내는 것이고, 체는 끼니를 거르지 않고 근육량을 늘리는 것인데 덕이 가장 어렵다.

지덕체 중 덕에 해당되는 올해 목표는 좀 더 정직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정직은 '거짓말을 하지 말자'가 아니라 '진솔하게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말자'에 가깝다. 솔직하게 말하고, 그 정직의 결과를 결연하게 마주하자는 것이다(생각해보니 '덕'이라고 하기에는, 남을 위한 것 보다는 나를 위한 것에 가깝다. 여태까지 직설을 피하는 버릇이 많은 곤경으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작년에 내가 배운 것 중 하나는 솔직한 화법과 무례한 태도가 전혀 다른 카테고리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예의를 지키면서 솔직하게 말하는 법을 익히고, 거짓이 아닌 참으로부터 상대가 상처를 받는다면 그러려니 하는 법을 연습하려고 한다. 내가 목표로 하는 정직은 그런 것이다.

친절에 대해서도 설명이 필요하다. 보통 친절이라는 말에서 상냥한 말투와 표정을 떠올리게 되는데 그런 한국식 감정노동을 하겠다는 건 아니다. 나는 상냥한 게 아니라 다정해지고 싶다. 상냥함은 포장의 영역이고 다정함은 내용에 달린 것이라 생각한다. 상냥함은 밝은 표정과 목소리로 "무엇을 도와드릴까요?"라고 묻는 것이고 다정함은 "허 참.."하면서 무거운 짐을 같이 들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상냥한 사람이 될 자신은 평생 없다. 다정한 사람은 되고 싶다. 다정과 친절이란 도덕을 조건으로 한다고 믿는다.

임자와 나는 십이지신에 포함되지 않는 동물 중 하나를 골라 그 해의 연호로 삼기로 했다. 우리에게 2021년은 '웜뱃年'이다. 웜뱃은 몸집이 크고 땅굴을 판다. 그리고 배려심이 뛰어난 동물로 알려졌다. 작년, 호주에 큰 산불이 났을 때 웜뱃이 자기 땅굴을 내주어 다른 동물들의 대피를 도왔다는 미담이 전해진 바 있다. 사진 속 공허하고 무뚝뚝해 보이는 눈빛과 그의 도덕관이 멋지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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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기사를 다시 찾아보니 그 미담은 허구로 밝혀졌다고 한다. 절망이 큰 시기에 아름다운 거짓말에 속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유구한 습성이 반영된 이야기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 발견한 더 중요한 내용이 있었다.

<aside> 🐨 실제로 웜뱃은 다른 종은 물론, 같은 웜뱃에게도 자신의 굴을 잘 공유하지 않는 동물이다. 다만 퀸즐랜드 대학의 스티브 존스턴 부교수는 브리즈번타임즈에 ”웜뱃이 의도한 바는 아니겠지만, 화재와 같은 극단적 상황에서 다른 동물들이 웜뱃의 굴을 이용했을 수는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웜뱃이 워낙 깊은 굴을 파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이 웜뱃이 뚫고 지나간 굴의 입구를 찾아들어와 대피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존스턴 부교수는 ”웜뱃이 화재 상황에서 그 곳에 숨은 동물들을 굳이 쫓아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허핑턴포스트 '호주 산불 속에서 다른 동물들의 대피를 도왔다는 웜뱃 이야기의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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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웜뱃과 나는 평소 성격이 실제로 꽤 닮았는지도 모른다. 나의 사회성은 같은 종족에게도 자신의 굴을 잘 공유하지 않는 웜뱃보다도 형편없다. 나는 여러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일에 평생 실패해왔다. 집이 여럿 모여있는 동네라면 어디서나 발생하는 양호한 수준의 소음도 견디기 싫어서 최소의 이웃만이 존재하는 벽지에 살기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거대한 규모의 산불이라는 재앙에 처했을 때 웜뱃은 평소보다 친절해지기를 택했다. 기꺼이 자신의 굴을 내주지는 못해도 그곳에 숨은 동물들을 굳이 내쫓지는 않은 것이다. 말하자면 웜뱃은 커트 보네거트가 말한 '아포칼립스 시기에 우리가 해야하는 것'을 행한 것이다.

<aside> 👨🏼‍🏫 And how should we behave during this Apocalypse? We should be unusually kind to one another, certainly. -Kurt Vonnegut, ‘The Idea Killers’ essay,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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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이 작년보다 덜 고통스러운 해이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장밋빛일 리는 없다. 사실 장밋빛은 영원히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더라도 친절한 이웃이자 좋은 시민이 되려는 노력은 하고 싶다. 시루떡을 쪄서 나눌 정도의 다정함은 자신 없지만 현관 앞에 쌓인 눈을 먼저 치울 수는 있다. 길고양이의 물과 밥을 챙기고 눈이나 비가 내릴 때는 배달 음식을 시키지 않고. 안 입는 옷이 당근마켓에서도 팔리지 않는다면 여성 노숙인 복지 센터나 옷캔(otcan.org)에 보내 해결하고. 이것도 살 만해야 가능한, 대단히 수고로운 일인지 모른다. 그러면 도움을 요청하는 이웃을 곤경에 몰아넣는 사람이 되지는 않는 것을 최소한으로 하자. 웜뱃도 자신의 땅굴을 다른 동물들과 함께 쓰는 일이 성가시고 못마땅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웜뱃은 그 곤욕을 견뎠다. 우리의 연대의식이 웜뱃 만큼은 되기를. 그 밖에 친절을 위해 내가 생각지 못했던 좋은 아이디어를 가진 친구가 있다면 알려주기를, 그것도 다정함에 해당하는 것이니까.

(202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