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게 제일 좋아. 행복해. 글과 연애하고 싶어.” 라고 말하던 나는 없다. 글을 쓰려고 만든 이 페이지 조차, 지금 며칠 째 들어왔다 나갔다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했다. 하얀 바탕에 깜빡이는 커서가 그렇게 보기 싫었다. 글 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사랑했던 모든 것들에게서 권태기가 찾아왔다. 그렇게 난, 마음에 들어온 허리케인을 이겨내지 못하고 내 마음을 쓸고 지나가게 냅뒀다.

나는 권태기에 졌다. 뭐든 잘 할 수 있을 거라던 건 나의 착각이었다. 요즘 콘텐츠 마케팅을 하면서 카피를 다른 회사가 썼던 걸 가져오는 팀장의 모습에서 나는 경악을 했다. 너무 똑같으니 조금이라도 바꾸자는 나의 말에 저게 좋은데 왜 바꾸냐, 아니면 비슷하게 바꾸거나 혹은 레퍼런스로 넣어둔 이미지를 삭제하자는 대답에 나의 가치관과도 권태기가 왔다.

이렇게 일하는 회사에 나는 뭘 시작해보겠다고 들어온 걸까? 이렇게 글을 안 써서 나는 무슨 작가가 되겠다고 떠들었던 걸까? 힘들 때 사람 버리는 거 아니라는데, 흔들리는 마음을 잡지 못해 스스로 나쁜X이 되어버린 나에게 앞으로 어떤 벌이 찾아올까?

우울한 글에도 즐거움을 담고 싶다던 나의 글쓰기 방식에도 권태기가 왔다. 왜 나는 남들처럼 한 곳에 안주하지 못할까? 왜 그냥 받아들이지 못하고 싫으면 싫은 이유를 크게 만들어서 나도 괴롭고, 내 이야기를 듣는 남도 괴롭게 하는 걸까?

요즘, 세상이 너무 시끄럽다고 자주 말하고 다닌다. 출근길 대중교통 소리도, 출근 후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소리도, 회의실에서 실무는 하지도 않고 대충 보고 컨펌내렸다가 결과물을 들고 갔을 때 수정하라고 하는 그 뭣도 모르는 소리도, 집에서 자려고 누웠을 때 거실에서 TV보는 소리도, 가족들이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리는 소리까지 전부 시끄러웠다.

그 시간으로 현재를 버티고 있다. 권태기를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쉽지 않다. 그래도 오늘은 조금 이겨낸 게 아닌가, 지우기는 반복했지만 다시 이 페이지에 아무것도 적지 않고 창을 끄거나 하지는 않았으니까 말이다.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면 마음이 달라질까, 조용히 몰래 영감님들의 글을 읽고 가고 있습니다. 댓글도 글이면 글이라 달지는 못하고 있지만 열심히 읽고 있어요. 영감님들의 글에서 에너지를 얻고 갑니다. 시끄러운 세상 속 사람 없는 여행지에 혼자 산책길을 걷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여유롭게, 읽고 조용히 다녀갔습니다. 발자취만을 남기고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