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4월 30일

《담배와 영화》에는 《화양연화》에 대한 글이 있다. 거기서 왕가위 감독은 완성될 때까지, 심지어 완성된 후에도 완성이라는 말 자체를 애매하게 만들 만큼 잡히지 않는 작업에 대해 이야기한다. 시인 R은 그 글을 보고 자신도 작업을 할 때 종종 그런 느낌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고 했고 그는 어렸을 때 《화양연화》를 봤는데 뭐라 말하기 힘든 이상한 느낌을 받았으며 그런 느낌을 줬던 영화들이 몇 편 정도 있다고 말했던 적이 있다. 나는 그런 경험이 참 멋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 자신은 거의 그런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종종 그런 경우가 있다. 특히 잠에 대해 얘기할 때. 내 주변에서 글을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거나 시달렸던 적이 있는데, 그들은 다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고 그래서 나는 내가 글을 잘 쓰지 못하는 게 잠을 너무 잘 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유명하게는 카프카도 불면증에 시달렸다. 카프카는 두 가지로 유명하다. 공무원으로 꼬박꼬박 일을 하면서 명작을 써낸 소설가, 그리고 불면증에 시달린 소설가. 카프카의 《꿈》이란 책에는 그가 겪었던 불면의 괴로움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바로 카프카는 그때 이미 선진국이었던 독일의 가호 아래 오후 2시면 퇴근을 했다. 그리고 그의 일과 중에는 낮잠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놓고 뭐…… 꿈이 현실을 침투한다느니…… 낮잠을 그만 자야지 낮잠을 자면 당연히 밤에……

아무튼 나는 잠을 잘 자고, 잠을 잘 자는 건 나의 거의 유일한 특기인데, 나는 친구 집에서도 잘 수 있고 노래방에서도 잘 수 있고 사실은 커피를 잔뜩 마시고 낮잠을 자도 밤에 또 잘 잘 수 있다. 그게 뭘 의미하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잠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의미할 것이다…… 요즘에는 밤에 잘 자도 낮에도 잠을 참기가 힘들다. 그게 나의 괴로움이다…… 나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어렸을 때 문화적 환경에 거의 노출되지 못했고, 몇 권 정도의 책을 제외하면 당연히 영화와도 거리가 멀었다. 왜 내게는 트라우마가 되었던 영화가 없을까? 약간 슬퍼져서 열심히 과거를 뒤져보자 내게도 그런 비슷한 영화가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와 《워터월드》이다. 지금 생각하면 도대체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와 《워터월드》는 내가 어렸을 때 영화 채널에서 거의 광고만큼이나 많이 틀어주던 영화들 중 하나였고, 볼 때마다 매혹되었지만 단 한 번도 끝까지 본 적이 없던 영화들이었다.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는 기괴한 포스트 종말론적 배경에서 아이들이 어떤 이유론가 모험을 하고 "통 속에 갇힌 뇌"와 바보 어른들 그리고 엄마를 외치며 우는 늙은이들이 등장한다. 내가 기억하는 것은 이게 전부다…… 어둡고 침침한 도시와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았던 것은 제목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잃어버린 건 아이들인가 도시인가? 지금 생각해보면 잃어버린 아이들이 모여 살던 도시라는 뜻이었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변변찮은 전개도 없고(항상 온갖 이유들 때문에 내가 중도에 보기를 그만둔 바람에) 절대 끝까지 볼 수 없었던 그 영화를 우연히 때로는 컴퓨터로 다운받아서까지 반복해서 보면서 이 이상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잃어버린 것이 아이였는지 도시였는지 그걸 누가 잃어버린 건지 알 수 있게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아직까지도 한 번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 영화를 다 보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기로 그 이야기에서 진짜 잃어버린 것으로서 다뤄지는 것은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그 누구도 어른이 되어 있지 못하고 인물들은 단순히 성장에 실패한다는 정도가 아니라 아이 그 자체에 머물러 있다. 아이에게는 아직 성장이 문제가 되지 않고 따라서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는 성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다. 진짜 아이들은 그것을 괴로워하지 않지만 아이가 아닌데도 아이로 남아 있는 인물들은 그것 때문에 괴로워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전혀 괴로워하지 않고 씩씩한 아이들의 모습은 도대체 그 괴로움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를 의문에 부친다. 그 괴로움은 우스꽝스럽고 슬프지 않고 성가시고 귀찮으며 시끄럽고 보기 좋지 않다. 그것은 또 무엇을 의미했을까?

《워터월드》에서 가장 눈에 많이 띄었던 건 물론 물이다. 지금의 내 인상으로 이 영화는 바다판 《매드맥스》인데, 《매드맥스》와는 다르게 박진감 넘치는 액션 장면 같은 게 없었던 것 같다. 나는 그 영화를 보면서 바다가 사막과 비슷하다는 걸 알았고 내가 그 영화에서 좋았던 건 그 영화에서 느껴지는 수분 부족, 그러니까 상시적인 갈증과, 가끔 마시는 물(마실 수 있는 물)의 상쾌함과 소중함(《석양의 무법자》에서 사막을 건너다 물을 아끼기 위해 입술에 물을 적시는 장면이 떠오른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그냥 바다 위를 둥둥 떠다녔고 바다에는 아무것도 없고 거기에는 당연히 바다와 구름과 하늘 같은 것들밖에 없었다는 점 등등이었고, 그런 것들은 지금 생각해도 내게 좋은 기분을 준다. 그냥 떠다니는 것…… 하지만 《워터월드》는 내가 기억하는 것과 전혀 다른 영화일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도…… 내가 그 영화들을 끝까지 다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차곡차곡 정리하는 것에 대한 어떤 선망 같은 것이 있고, 산만함, 손에서 빠져나가는 느낌, 일단 미뤄두는 것, 그 미뤄둔 것들이 점점 쌓이고 그것을 외면하는 일, 그리고 무언가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 엄청나게 많고 그것들은 아주 중요해서 나를 크게 망쳐놓고 있거나 이미 망쳤거나 적어도 앞으로 망칠 건데 그것들을 아주 잠깐만 힘을 내서 마주하고 정리하기 시작하면 금방 처리할 수 있겠지만 왜인지 모르게 절대로 그것에 착수하고 있지 않다는 느낌, 나는 언제나 그런 것들에 사로잡혀 있고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사실은 그로부터 벗어난 깔끔한 상태라는 것 자체가 이루어질 수 없는 환상에 속할 것이다. 나는 언젠가 《잃어버린 아이들의 도시》와 《워터월드》를 끝까지 다 볼 수도 있고 결국 끝까지 보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어느 쪽이든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며, 생각하는 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도 다 잘 되지는 않는데 잘 되지 않는 것을 하려고 애를 쓰다 보면 자연스레 잠이 오고, 내게 있어 현실을 침투하는 것은 꿈이 아니라 잠이다. 잠을 많이 자서 좋은 일 중 하나는, 누구든 잠을 자는 동안은 조용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해당 에세이의 전문은 『셋 이상이 모여』혹은 던전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문학 플랫폼 던전

셋 이상이 모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