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심하지 말라

본문: 창세기 21:12-13

지난 8월 30일 구소련의 정치 지도자였던 고르바초프가 9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1985년 54세의 나이로 소련공산당 서기장이 되었습니다. 이전의 최고 지도자들과는 달리 원고 없이도 즉석에서 연설을 자주 했고, 자신이 생각한 것은 뚝심 있게 끝까지 밀어붙이며 함께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여러 가지 업적을 남겼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이 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라고 불리는 개혁 개방을 처음부터 일관되게 끝까지 밀어붙여서 결국 성공으로 이끈 것이었습니다.

그가 개혁개방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소련이 외부에서 볼 때는 미국과 필적할 만한 초강대국이었지만 내부에서 볼 때는 가난한 나라였습니다. 만약 이대로 가만히 두면 시간이 지날수록 가난은 가중되고 결국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위기감이 그에게 있었습니다. 그래서 개혁 개방을 서두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개혁개방을 하면서 그는 여러 가지 위험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개혁과 개방을 통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40년간 지속되었던 동서냉전이 끝났습니다. 핵전쟁의 위협도 사라졌습니다. 전쟁의 위협이 사라지자 경제가 좋아졌습니다. 우리나라도 소련과 수교를 하고 우리나라 기업이 소련 땅에 진출하여 일터가 생겨났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던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면도 있습니다. 소비에트 연방이 15개 나라로 분리 독립되고 소련은 과거의 러시아로 축소되었습니다. 극단적인 민족주의자들은 고르바초프가 소련을 팔아먹었다고까지 혹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가 그때 결단하지 않았더라면 세계평화가, 그 당시의 안전과 질서가 가능했겠습니까? 역사를 만든 위대한 인물들은 결단하는 사람입니다.

결단이라는 것은 양단 간의 결단이지만, 사실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를 얻기 위해서 나머지 99가지를 포기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그 중요한 한 가지를 얻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나머지를 다 버려도 이 한 가지를 가지는 것이 가치 있기에 결단하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근심 중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결단을 요청하십니다. 결단해야 근심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결단의 의미가 무엇인지, 그리고 왜 아브라함은 주저하고 망설이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삭이 젖을 떼는 날에 큰 일이 벌어졌습니다. 사라에게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화가 불같이 났습니다. 그래서 이 여종과 여종의 자녀를 내쫓으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그럴 만하지 않았겠습니까? 이제 아브라함 입장에서는 근심이 됩니다. 자기 영혼이 파괴될 만큼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데 이 근심은 사실 아브라함이 만든 것입니다. 그가 이집트에 내려갔고, 하갈을 취했고, 이스마엘을 낳았고, 이스마엘이 자라서 장성할 때까지 18년 동안이나 그를 제대로 기르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그 근심을 끝내도록 아브라함에게 권면하십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 아이나 네 여종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지 말고 사라가 네게 이른 말을 다 들으라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네 씨라 부를 것임이니라" (창 21:12)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근심하지 말라 하십니다. 근심 때문에 너의 인생을 망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들을 때 아브라함이 아마 기대감을 가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더러 근심하지 말라고 하시는구나. 그럼 하나님이 그 나머지는 알아서 다 해 주시는 건가? 하나님이 하갈을 찾아가서 그의 꿈에 나타나셔서 사라에게 복종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실까? 이스마엘에게 찾아가서 그를 따끔하게 꾸짖으시고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책망해 주실까? 사라에게 나타나서는 네가 이 가정의 안주인인데 하갈을 품고 이스마엘을 품어서 가정의 분열과 문제가 일어나지 않도록 넓은 마음을 가지라고 하나님이 말씀해 주시지 않을까?

나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어도 이제는 걱정과 근심 없이 모든 식구들이 한 지붕 아래서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마 아브라함은 일말에 그런 기대를 가졌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건 오산이었습니다. 이미 하나님은 입장 정리가 다 끝나 있었습니다. 이어서 하시는 말씀을 보십시오.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라가 하는 말을 다 들으라고. 사라가 너에게 이른 말을 그대로 다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이스마엘과 하갈을 내보내라는 말입니다. 근심하지 않으려면 끊어내고 결단해야 근심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근심하지 않으려면 결단해야 너는 이 근심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단호한 입장 정리를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을 어떻게 부르고 계십니까? "아이"라고 부르십니다. "아이"는 히브리어 나아르(נַעַר)입니다. 소년이라는 뜻입니다. 아들이라는 말이 히브리어에 분명히 있습니다. 벤(בֵּן)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너의 아들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시지 않고 이스마엘을 가리켜 아이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마엘을 아브라함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떨지 몰라도 하나님은 처음부터 이스마엘을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 아브라함의 아들로 처음부터 인정하지 않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하갈은 또 어떻습니까? "네 여종"이라고 하나님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너의 아이를 낳아준 여자이니 너의 아내라고 말씀하지 않습니다. 하갈이 아브라함의 아내가 되고 이스마엘이 그의 아들이라면 하나님이 왜 정리하라고 하셨겠습니까? 여종이고 여종이 낳은 아이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분명히 입장 정리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입장에서는 이게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 일입니까? 하나님이 좀 넓게 생각해서 그냥 살게 해주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나님은 왜 이렇게 단호하게 끊어내라고 하시는가?

1. 시간이 지워주지 않는 죄

하나님 입장에서 보면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데도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죄는 시간이 아무리 많이 지나도 죄라는 것을 깨닫게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죄가 무엇입니까? 세상이 말하는 죄, 사회가 말하는 죄는 범법자를 죄인이라고 부릅니다. 법을 어기는 자, 사회 일반 통념과 관습과 도덕과 윤리를 벗어나서 행동하는 사람을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서 죄인은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모든 사람입니다.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이 다 죄를 범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몸에서 날 자라야 네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한 번만 말씀한 게 아닙니다. 여러 번 말씀하셨고 다양한 방식으로 일러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 따로, 자기 행동 따로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런저런 방식으로 자신에게 주어졌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습니다. 죄를 지은 것입니다. 결국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죄입니다.

이스마엘을 낳고 나서 13년 동안이나 이스마엘에게 푹 빠져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그의 몸에 병이 든다든지, 가정의 재난 상황이 닥친다든지, 재산에 문제가 생긴다든지 하면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텐데 회개하지 않고도 그냥 13년, 14년을 그냥 지나보냅니다. 그러면서 양심이 무뎌집니다. 그러면서 슬금슬금 이런 생각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다 잊어버리셨나? 이래도 되는가? 하나님이 내 죄를 용서하셨는가? 시간이 지나면서 죄에 대해서 무뎌집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계기가 일어납니다. 99세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삭 예고를 하십니다. 그리고 백세에 이삭이 태어납니다. 얼마나 영광스럽고 놀라운 일입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이삭을 주신 건 무엇 때문에 주셨습니까? 창세기 21장 1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돌보셨고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다고 하십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행위를 따라 그가 잘 살았기 때문에 그 보상으로 이삭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신실함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 과정에 이삭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착각했습니다. 착시현상이 벌어졌습니다. 문제가 없었구나. 지금까지 이스마엘을 낳은 것, 이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구나. 이것을 영적인 착시현상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그는 그냥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그냥 그렇게 이스마엘과 함께 살아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죄를 미리 청산하지 않아도 자기의 인생에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기에 그는 이렇게 살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100년 전 죄도 반드시 기억하시고 그 죄 청산을 요구하시는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던 중에 아말렉을 만났습니다. 아말렉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들 앞에 서서 그들을 죽이려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장도 하지 못했습니다. 모세와 아론과 훌이 황급히 산꼭대기로 올라가서 손을 들고 기도하고, 젊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아말렉과 전투했습니다. 하나님은 이걸 기억하셨습니다. 저 악한 아말렉, 내가 이 땅에서 기억조차 못하도록 없애버리겠다고 그들의 죄를 하나님은 분명히 기억하시고 모세에게 일러주셨습니다.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신 25:1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