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하신 대로

본문: 창세기 21:1-7

사회 소요지수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폭동, 대규모 시위, 약탈, 심지어 정부 전복 시도까지 이러한 사회적 불안 요소를 수치로 나타낸 개념입니다. 198개국 중 현재 101개국에서 사회 소요지수가 상당히 불안정하게 높다는 보고가 나왔습니다. 2016년에 조사를 처음 시작한 이래로 매년 보고서가 발표되고 있는데, 그중 지금이 가장 위험한 시기라고 합니다. 더 충격적인 사실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나라뿐만 아니라 비교적 안정되어 있다고 여겨졌던 유럽연합 국가들 중에도 사회 소요지수가 상당히 높다는 것입니다.

이런 지수를 뒷받침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바로 식량 문제입니다. 실제로 2008년 '아랍의 봄'을 촉발시킨 것은 바로 식량 문제였습니다. 식량이 부족해지자 독재정권이 아랍 여러 나라에서 무너지고 사회적 소요 사태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문제는 현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는 더했습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났을 당시 성인 남자가 하루에 소모하는 빵이 약 1kg 정도였습니다. 그때 프랑스 사람들이 그 1kg의 빵을 사려면 자기가 버는 돈의 88% 정도를 지출해야 했습니다. 돈을 벌어서 먹는 데 88%를 쓴다면 자녀교육과 그 외 여타의 비용을 쓰면 남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아마 모자랐을 것입니다. 그만큼 인플레이션이 극심했고 흉작과 기근으로 사람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그 때문에 프랑스 대혁명이 촉발된 것입니다.

여기에 더 기름을 끼얹는 것이 있는데 바로 정치인들의 말입니다. 정치인들은 우리에게 정권을 주면, 나를 뽑아주면 이런 경제 문제는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믿고 그 사람을 뽑아줍니다. 그런데 해결되지 않습니다. 문제는 전혀 나아지지 않습니다. 여전히 삶은 어렵고 이전보다 오히려 더 피폐해지고 더 힘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회는 더 불안정해집니다. 이토록 사람의 말은 믿을 것이 못됩니다. 사람들이 이런 약속 저런 약속을 다 하지만 우리는 그 사람의 말을 믿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경험해 보아서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런 말 저런 말로 약속을 하지만 내가 한 말을 다 지키며 사는 사람은 아마 얼마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하나님 당신이 하신 말씀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응답하시고 이루어 가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을 '말씀'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도 남김없이 다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에는 당신의 말씀대로 행하시고 돌보시고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창 21:1)

말씀대로 돌보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돌보다'라는 말은 '파카드'(פָּקַד)라는 히브리어 단어를 사용합니다. '방문하다', '보살피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방문하시고 하나님의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봐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부르실 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고 너를 창대하게 하겠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 대로 돌봐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이 자신들을 돌보시는지 느낄 수가 없었습니다. 큰 민족을 이룬다고 하셨는데 자녀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여쭙습니다. "하나님, 우리 집에 똘똘한 종이 하나 있는데 이 종이 내 후사입니까? 이 사람을 세울까요?" 하나님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네 몸에서 날 자가 너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도 행하지 않으십니다.

그 과정에서 아브라함과 사라는 죄를 짓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약속의 땅에 머물지 않고 애굽으로 그냥 내려가 버립니다. 거짓말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 위기 가운데서 그들을 돌봐 주셨습니다. 24년이 지나서 블레셋 땅 그랄 지방에 가서도 역시 거짓말합니다. 자기를 보호하고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위기에 빠집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무너질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곳에서도 아브라함과 사라를 돌봐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전쟁하는 무모한 일을 벌여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지키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런 하나님을 성경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가 택하신 기업이로다 여호와께서 그를 황무지에서 짐승이 부르짖는 광야에서 만나시고 호위하시며 보호하시며 자기의 눈동자 같이 지키셨도다" (신 32:9-10)

사람은 자기의 분깃이 평생 동안 모은 재산입니다. 건물이 분깃이 되기도 하고 자기 명예가 기업이 되기도 하고 자기가 지금까지 소중하게 생각했던 땅이 자기의 분깃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이 없으십니다. 천지 만물을 하나님이 지으시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관심을 두시고 이것이 나의 기업이고 분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피조물, 우리 같은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하나님의 분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분깃인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눈동자같이 지킨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우리 눈앞에 어떤 물체가 가까이 오면 눈을 감아 버립니다. 내 눈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눈을 지키고 보호하기 위해서 눈을 감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인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자기 눈동자같이 지키신다는 말씀은 그만큼 소중하게 돌본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비단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하나님께 선택받고 하나님께서 일을 하라고 맡겨 주신 모든 사람을 하나님은 그렇게 돌보고 지켜 보호해 주십니다.

대표적인 사람이 사도 바울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을 부르실 때 그에게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방을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다." 이방인들, 믿지 않는 사람들을 담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릇으로 바울을 택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릇이 깨어지면 어떻게 됩니까? 그릇에 문제가 생기고 그릇에 금이 가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애초에 계획하셨던 이방 선교와 이방인들을 전도하고 구원하는 일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눈동자같이 지켜 보호해 주셨습니다. 그릇이 깨어지지 않도록, 금 가지 않도록, 상처받지 않도록,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바울이 1차 선교 여행을 하다가 루스드라에 갔습니다.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들은 그 사람들과의 사이에 오해가 생겨서 사람들이 돌팔매질을 합니다. 바울이 돌에 맞아서 사람들이 죽은 줄 알았습니다. 끌어다가 성 밖에 던져 놓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호하셨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보호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이방을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다"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릇이 깨어지지 않도록 하나님이 지켜 주셨습니다. 멀쩡하게 일어났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각 교회에서 거둔 연보를 전달하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갔습니다. 체포됩니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미결수 상태로 호송선을 타고 배를 타고 로마로 갑니다. 유라굴로라는 광풍이 몰아쳤습니다. 사람들이 다 죽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파도가 심해서 배가 난파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를 보호하십니다.

"내가 속한 바 곧 내가 섬기는 하나님의 사자가 어제 밤에 내 곁에 서서 말하되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다 하였으니 그러므로 여러분이여 안심하라 나는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고 하나님을 믿노라" (행 27:2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