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를 여섯 번에 걸쳐 공부하였습니다. 에베소서의 주제는 옥중서신 중에서도 '교회'였습니다. 교회가 어떤 곳인가를 살펴보았는데, 바울이 말하는 교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원초적인 교회는 분열된 교회가 아니라 일치된 교회였고, 성장하는 교회였습니다. 그 성장이란 숫자의 성장이나 교회 건물이 커지고 넓어지는 종류의 성장이 아니라 성도의 성장이었습니다. 성도의 성장이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성장하는 사람을 빛의 자녀라고 했고, 빛의 자녀는 한 번 빛의 자녀로 이루어진 것으로 영원히 그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영적 전투를 지속적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에베소서 전체의 흐름이자 주제입니다. 앞으로 에베소서를 말할 때 단순히 "에베소서가 있었다"라고 하지 말고, 이러한 흐름을 설명하고 풀어서 말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빌립보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빌립보서는 첫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기쁨의 서신입니다. 그런데 왜 기쁜가, 이것을 빌립보서 네 장의 말씀을 통해 살펴볼 것입니다.
바울과 빌립보 교회의 관계를 전제로 보아야 합니다. 서신서가 열세 권인데, 서신서는 편지입니다. 쓴 사람이 있고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옛날에 어릴 때 가족 중에 누군가가 연애를 하면 연애 편지가 집에 오고, 언니가 연애 편지 받아서 몰래 서랍 속에 숨겨놓은 것을 끄집어내어 읽고, 비밀 일기에 열쇠 걸어 놓은 것을 클립으로 따서 열어보던 때가 있었습니다.
남의 연애 편지를 읽는 것이 재미있는 이유는 쓴 사람도 알고 받은 사람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길 가다가 누가 흘리고 간 편지를 읽어보면, 내용이 아무리 재미있고 감미로워도 쓴 사람도 모르고 받는 사람도 모르는데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읽어봐야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습니다. 우리가 서신서를 재미없게 느끼는 이유는 쓴 사람 바울도 모르고 받는 빌립보 교회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도 알고 바울도 알면 이것이 재미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에 대한 공부도 해야 하고, 빌립보 교회에 대한 공부도 해야 재미가 있습니다.
바울이 원래 2차 선교여행 때는 에베소로 가려고 했습니다. 소아시아의 핵심 되는 도시로 말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막으셨습니다. 사도행전 16장 6절에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아시아란 에베소를 말합니다. 성령이 못하게 하셨고, 7절에는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영, 곧 성령께서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9절에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했습니다. 마게도냐는 에베소가 있는 서아시아에서 보면 에게해 바다 건너 유럽의 북쪽에 있는 큰 지역을 말합니다. 그 마게도냐, 즉 유럽 사람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는 것이 꿈의 환상에 보인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나서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썼으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부르신 줄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럽으로 건너가게 됩니다. 그런데 유럽에서 첫 번째 만난 성이 빌립보 성이었습니다. 12절에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빌립보와 바울의 첫 만남은 어떻게 된 것입니까? 계획하고 간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누가 인도하셨습니까? 성령께서 인도하셨습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셨고 나는 계획하지 않았으므로, 내가 계획한 것은 없어졌습니다. 일단 좌절감이 있고, 그런데 성령께서 인도하셨으니까 기대감이 있습니다. 좌절과 기대가 동시에 있는 자리가 빌립보였습니다.
바울이 항상 복음을 전했던 패턴이 있는데, 바울은 자세히 보면 복음 전하는 곳곳마다 가서 유대인의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것이 패턴입니다. 그런데 13절을 보면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에는 유대인 회당이 없었습니다. 이상한 곳입니다. 유대인들은 세 사람만 모이면 자기들의 회당을 만들었는데, 빌립보에는 회당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여기에 유대인이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유대인이 없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로마 사람들이 살기에 좋았다는 뜻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흩어져 있는 난민들과 비슷한 처지였는데, 이 사람들이 여기에 없었습니다. 빌립보는 계획도시였습니다. 막 세워진 신도시, 계획도시로서 로마에서 은퇴한 퇴역 장교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습니다. 여기에는 유대인들이 있을 수가 없었고, 그래서 유대인 회당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바울을 이쪽으로 인도했는데, 항상 하던 패턴이 없어진 것입니다. 유대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강가에 나가서 여인들이 모인 곳으로 갔습니다. 14절에 "두아디라 시에서 온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었는데"라고 했습니다. 자색 옷감, 그 당시에 자색은 굉장히 비싼 옷감이었습니다. 그 비싼 옷감을 파는 루디아라는 여자가 있었습니다. 루디아는 지체 높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옷감은 비싸니까 이 여인은 기본적으로 큰 손입니다.
루디아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고 했습니다. 이미 하나님을 믿고 있었습니다. 이 여인에게 바울이 가서 말씀을 전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셔서 15절에 그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루디아는 하나님을 믿긴 믿었는데 세례받기 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 당시 세례는 오늘 우리의 세례와 다릅니다. 그 당시 세례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공중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고백했다가 고발당해서 잡혀가면 죽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죄목이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입니다. 그 당시 왕은 로마 황제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죄목이 유대인의 왕이었으니, 예수께서 자기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 예수를 믿고 따르는 무리는 모두 반역자로 인정하던 시절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