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특강 7 -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고후 7:2-16)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린도후서 7:10)

우리는 고린도후서 공부의 절반을 넘어서서 그다음 절반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까지 여러 가지를 공부했는데, 그중 두 가지 개념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하나는 새 언약의 일꾼이요, 다른 하나는 새로운 피조물이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고백한 바로 그 존재입니다. 그 새로운 피조물에게 주신 사명이 있으니, 곧 화목하게 하는 직분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화목 제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도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감당해야 하는 존재입니다.

바울이 전하는 바에 의하면 화목하게 하는 직분에는 네 가지 사명이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에 의하면, 첫째로 직분자는 본인이 정결해야 합니다. 깨끗해야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직분자를 보고 화목하게 하는 직분자를 통해서 은혜를 받기 때문에, 우리가 바른 행실과 옳은 행실로 바르게 서 있지 않으면 화목하게 하는 직분자의 역할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실천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화목하게 하는 직분자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어도 마음속에 보배 되신 예수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에, 즉 한마디로 성령을 품고 있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도 단번에 극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화목하게 하는 직분자가 부요하여 흘러넘치게 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내가 가난해도 나는 부요한 자입니다. 물질이 없어서 나누어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흘려보내는 에스겔서에 나오는 성전의 역할을 감당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나와 함께하는 주변 모든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복을 누리는 은혜가 우리에게서 흘러나와야 합니다.

넷째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가진 자는 근본이 다른 자와 하나님의 일에 멍에를 같이 메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하나가 될 수 없고 빛과 어둠이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처럼, 우리가 도무지 함께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자들은 주의 일을 같이 하는 동역자가 아니라 복음 전도의 대상자입니다.

이 네 가지 화목하게 하는 자의 직분을 잘 기억하시고, 이 느낌을 가지고 7장으로 넘어갑니다. 7장부터는 교리적인 부분이 아니라 바울 개인의 이야기, 이 교회와 바울과의 관계 이야기가 나오고, 8장과 9장으로 넘어가면 연보를 부탁하는 이야기 등이 함께 이어져 나옵니다.

1. 진심으로 영접하라

2절을 보십시오. "마음으로 우리를 영접하라." 이 "마음으로"라는 말을 조금 더 정확하게 옮기면 "진심으로"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냥 마음으로만이 아니라 진심으로, 진짜 진심으로 너희가 우리를 영접해 달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고린도교회와 바울의 관계가 힘들었습니다. 중간에 끼어든 거짓 선지자들 때문에, 유대에서 온 어떤 사람들에게 동화되고 부화뇌동하여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의 사도성을 의심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바울이 사절을 보냈고 눈물로 쓴 편지까지 썼습니다. 회복되고 난 다음에 고린도후서를 쓰면서 "너희가 이제 이 모든 것이 다 지나갔으니 진심으로 우리를 영접해 달라"고 말하면서, 바울이 지난날 이 교회를 섬길 때 어떻게 사역했는지를 설명합니다.

"우리는 아무에게도 불의를 행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해롭게 하지 않고 아무에게도 속여 빼앗은 일이 없노라." 바울과 함께했던 동역자들은 사역자들입니다. 이 말씀을 조금 쉽게 풀어보면 이렇습니다.

"불의를 행하다"는 부당하게 대하다라는 말입니다. 즉 성도를 부당하게 대했다는 말은 차별했다는 뜻입니다. 있는 자와 없는 자, 종과 자유인, 로마 시민권자와 그렇지 않은 자 등을 차별해서 대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바울은 말했습니다.

"해롭게 하다"는 오염시키다라는 말인데, 복음을 그대로 전해야 오염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 교사들은 그 복음에 불순물을 타 버립니다. 바울은 그렇게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속여 빼앗다"는 이기적으로 이용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성도를 이용해 먹는 것인데, 그런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런 느낌을 가지고 다시 읽어보면, "우리는 아무에게도 부당하게 차별 대우한 적이 없고, 아무에게도 복음 아닌 다른 것을 전해서 오염시킨 적이 없고, 아무에게서도 내 목적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성도를 이용한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무 당연한 것 아닙니까? 사실 생각해 보면 사역자라면, 목회자라면 이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2천 년 전 그 시절이나 지금 우리 시대나 이런 사람들이 많으니까 이런 말을 써 놓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면 역설적으로 바울이 이런 이야기를 쓴 이유는 지금 너희를 찾아와서 나와 너희 사이를 갈라놓는 거짓 교사들, 바로 그런 자들이 꼭 이런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교회 안에 양의 탈을 쓰고 들어온 이리들이 있는데, 그들이 이런 식으로 너희를 속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단 한 번도 그렇게 한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1-1. 함께 죽고 함께 살자

3절을 보시면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너희를 정죄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이전에 말하였거니와 너희가 우리 마음에 있어 함께 죽고 함께 살게 하고자 함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