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원한 위로와 좋은 소망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너희 마음을 위로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건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데살로니가후서 2:16-17)
오늘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 데살로니가전후서론 일곱 번째 말씀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는 기록 연대의 차이가 크지 않습니다. 바로 이어서 기록했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시간 차이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전서와 후서 사이에는 크게 이질감이 없고, 문체나 문법, 내용의 변화도 거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데살로니가전서에 나온 이야기들을 조금 더 압축적으로, 더 중요한 것을 추려서 한 번 더 요약하고 정리했다는 점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가 어찌 보면 전서의 압축판이니, 이것을 더 상세하게 살펴보면 전서까지 이해할 수 있는 효과가 있습니다.
1장에서는 고난에 대처하는 성도의 자세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오늘 2장은 종말을 살아가는 성도의 자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종말 이야기는 너무 많이 들어서 좀 식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오늘 후서 2장의 종말 이야기는 계시록을 보는 것처럼 아주 특별하고 의미 있는 말씀입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간곡하게 고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1절입니다.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예수님이 강림하시는 것은 재림의 날 아닙니까?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은 다른 말로 하면 종말입니다. 이 세상이 끝나는 날입니다. 이 세상이 끝나는 날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 우리가 그 앞에 모이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날 영접하러 가야 할 것 아닙니까? 천사장의 호령 소리와 나팔 소리로 이 땅에 재림하시는 예수님, 그분을 영접하기 위해 성도들이 그 앞에 모일 것 아닙니까? 지금 그래서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을 보면,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 해서"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주의 날이 이르렀다 하여 어떤 사람들이 "예수님이 이미 오셨다"고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교회에 그릇된 종말론을 유포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 중에 한 부류가 "예수님이 이미 재림하셨다던데, 너 그거 몰랐냐? 지금 재림주가 나타나셨다는데 왜 그거 아직까지 모르고 있냐?"라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주로 어떤 식으로 거짓말합니까? 첫째는 영으로, 두 번째는 말로, 세 번째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입니다. 영으로는 무엇입니까? "내가 성령의 음성을 들었는데"라고 말하는 것이지요. 또 어떤 사람들은 말로 합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누가 이런 말을 했다는데, 예를 들어 바울이, 디모데가, 혹은 실라가 이렇게 말했다는데"라고 합니다. 그것은 확인할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요즘 같으면 삼자대면하자, 전화해볼까 할 수 있는데, 그 당시에는 바울이 이 편지를 고린도에서 쓰고 있고,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곧 마게도냐에 있습니다. 어떻게 바울을 찾아와서 만나서 삼자대면하고 확인합니까? 그런 거짓 정보를, 가짜 뉴스를 퍼뜨리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편지를 받지도 않았는데 "예수께서 이미 재림하셨다는 편지를 바울이 썼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뒤의 두 가지는 사실상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요즘도 미혹되는 것 중에 하나가 영으로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실 육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대부분이 하루 세 끼 먹어야 살고, 잠을 자야 살고, 항상 우리는 영보다는 육에 가까운 삶을 삽니다. 그런데 어떤 누군가가 "내가 계시의 음성을 들었다, 내가 기도하는데 성령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라고 하면 일단은 기가 한번 팍 죽고 시작합니다. "그런가? 저 사람이 되게 영적이네." 그러고 나서 이렇게 맞춰보는 구조입니다. "저 사람 기도할 때 보니까 그래도 방언으로 기도하고, 오래 기도하고, 뜨겁게 기도하고, 찬양할 때도 막 우는 거 내가 봤어." 이렇게 사람들이 뭔가 영적이라는 말에 약합니다. 나는 육적인데 저 사람은 영적이고 하나님의 음성까지 들었다고 하니까, 예수님께서 이미 재림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니까, 거기에 한 코가 팍 죽고 들어가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럴 필요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영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검증이 필요한데, 무엇에 검증받아야 됩니까? 말씀에 검증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이것을 맞춰봐야 합니다. 일치가 중요합니다. 모든 성령의 음성은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꿈으로 말씀하셨다, 무엇을 이야기하셨다" 하면, 그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맞춰보면 됩니다. 그리고 지금 당장 모르겠으면 입 밖으로 내지 말고 마음에 간직하고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고 살다 보면, 그것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라면 말씀이 나에게 깨닫게 해줍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과 아무 상관없이 그냥 막 떠들고 다니기 시작하면 그것은 다 가짜입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셨다고요? 예수님의 재림을 누가 압니까? 하나님만 아시는 것입니다. 말씀에 맞추어 보면 이것이 다 가짜 아닙니까?
지금 우리가 소위 이 시대도 영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영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하는 사람, 성령께서 나에게 직접 계시하셨다는 사람은 많은데, 그러면 그것을 본인이 그렇게 말하기 전에 하나님 말씀으로 검증해 봐야 합니다. 그것이 되지 않으면 전부 다 사이비이고 가짜입니다. 그래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이 흔들리지 마십시오. 나는 그런 것이 없는데 막 불안해지고, 초조해지고, 또 두려움이 생기는 것이지요. "예수님 오셨다며? 그럼 나는 왜 못 만났지? 그러면 지금부터 환란이 시작되는 건가?" 이런 것 겁내지 마십시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영의 일치가 중요합니다. 성령께서 나에게 말씀하셨으면 말씀으로 일치되면 흔들리거나 두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영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영은 우리에게 평안을 주는 영이지, 절대로 우리를 불안하게 하거나 두렵게 하는 영이 아닙니다. 이 영 분별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찾아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말씀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너희에게 평안을 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은 평안의 영이지 두려움의 영이 아닙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사탄은 우리 마음을 흔들어 놓고 불안감을 조성해서 사람들을 끌고 갑니다. 판단력을 흐리게 해서 보이스피싱 하는 것들, 전부 다 사탄이 하는 짓 아닙니까? 전부 다 얼마나 두렵게 합니까? 사람이 두려움을 느끼고 겁을 내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습니다. 시야가 좁아져서 그렇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면 눈이 열리고 귀가 열려서 잘 보이고 잘 들립니다. 편안하기 때문입니다. 두렵게 하거나 마음을 흔드는 것은 하나님의 영의 역사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또 바울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래도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징조가 두 가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몰라요. 알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모른다고 하셨으니까요. 그런데 징조는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두 가지 징조입니다.
3절에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고 합니다. 어떤 인간이 어떤 말을 해도, 난리굿을 쳐도, 절대로 거기에 미혹되거나 흔들리지 마십시오. 배교하는 일이 먼저 있다고 했습니다. 배교가 무엇입니까? 요즘 이 배교라는 말을 신천지가 하도 써서 우리는 쓰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배교는 원래 본뜻이 이것입니다. 아포스타시아(ἀποστασία), 진리를 저버린 상태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말씀이지요. 즉 배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린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은 배교도 못합니다. 처음부터 말씀을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았다가 저버리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배교하는 사람들은 알았다가 떠나는 사람들입니다. 왔다가 가는 사람들, 어설프게 왔다가 사라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은 내성이 생겨서 훨씬 더 강력합니다. 주의 날이 임하기 전에 첫 번째 징조가 배교하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저버리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한 사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것이 세력화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교회 안에 이런 사람들이 없을까요? 교회 밖으로 나가야만, "나 이제 교회 왔다가 이제 교회 끊을래"라고 하는 사람들만 배교하는 사람들일까요? 진짜 심각한 종말의 문제는 교회 안에 몸뚱아리는 있으면서, 교회 안에 왔다 갔다 하긴 하는데 진리를 저버린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그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종말이 임할 때, 주의 날이 임하는 첫 번째 징조가 교회 공동체가 배교하는 사람으로 넘쳐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교회인데, 이 교회 공동체의 상당수가 진리를 저버리고 자기 뜻대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이 그 교회를 가만히 두시겠습니까?
노아 시대를 보십시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이 서로 통혼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아담, 셋, 에노스의 예배 공동체 족보들 아닙니까? 사람의 딸들은 가인의 족보 아닙니까? 예배 공동체 백성들이 예배 공동체를 떠나서 세상으로 세속화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교회에, 더 이상 하나님의 공동체에 더 이상 희망을 둘 수 없었던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으로 쓸어버리셨잖아요. 그러니 주의 날이 이르기 전에 첫 번째 징조는 교회가 타락한다는 것입니다. 예배 공동체에, 우리 공동체에 진리를 저버린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저버린다는 것은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는 뜻인데요, 이것은 지도자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습니다. 성도들은 그렇잖아요. 그래서 영적인 지도자가, 말씀을 먹이는 저 같은 사람들이, 교회 장로님들, 중직들, 앞서 있는 분들이 진리를 저버리면 그 공동체는 급속도로 타락합니다. 순식간에 그렇게 됩니다. 그래서 앞서 있는 분들이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수호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 종말이 다가온다, 주의 날이 임할 때가 다가온다 하면, 교회가 교회의 기능과 역할을 상실해 갑니다. 이 기준으로 본다면 이제 종말이 좀 가까이 온 것 같습니까? 이 시대가 두렵지 않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