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하 특강 7 - 다윗과 요나단, 그리고 사울 (삼상 18-20장)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삼상 18:3-4)

오늘은 사무엘상 공부 일곱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제목은 '다윗과 요나단, 그리고 사울'입니다. 세 명의 인물을 함께 살펴보는데, 사실 오늘의 주제를 보면 하나님의 영이 떠나간 사람과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는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가 어떤 것인지를 오늘 내용을 통해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다윗이 왕으로 기름부음 받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부음 받는 것은 독특해서, 기름부음을 받으면 그때부터 왕인데 사실 진짜 왕으로 쓰임받으려면 그 가운데 훈련 과정이 굉장히 많이 필요했습니다. 사울이 실패한 이유가 바로 그 훈련 과정이 생략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철저하게 훈련시켜 갑니다.

기름부음을 받으시고 첫 번째 왕업(王業)으로 하신 일이 악한 왕 사울을 섬기는 일이었습니다. 수금을 타고 악기를 연주해서 악한 영을 내쫓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내가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는데 이 악한 왕을 내가 섬겨야 하나 고민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군말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서 그 일을 감당합니다. 두 번째 왕업으로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일이 골리앗과의 전투입니다.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승리의 비결을 세 가지 정도로 공부했습니다. 첫째가 과거의 승리의 기억입니다. 들판에서 양을 칠 때 사자나 곰이 와서 양을 물어가면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양을 건져 주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그 놀라운 승리의 기억을 가지고, "저 사자나 곰이나 이 골리앗이나 뭐가 다른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못할 일이 없지 않은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둘째가 허세를 부리지 않은 것입니다. 사울이 자기 투구도 주고 갑옷도 주고 칼도 주었습니다. 그런데 시험 삼아 입어보고 차보고 걸어보더니, "못하겠습니다. 이건 저하고 맞지 않습니다" 하고 벗어두고 내려갑니다. 사실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데, 왕의 하사품을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셋째가 가장 결정적인 이유였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오거니와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멋진 말이지 않습니까. 결국 그렇게 해서 승리했습니다.

1. 요나단과 다윗의 만남

오늘은 그 승리 그다음의 일입니다. 그 승리를 직접 목격한 이스라엘 군대는 사기가 충천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하나님의 승리, 다윗의 승리를 보고 가장 감동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크게 감동받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요나단입니다.

1-1. 마음이 하나 됨

요나단은 다윗을 어떻게 대우합니까? 1절에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기를 마치매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니라." 우리가 17장을 읽지 않고 18장 1절의 이 말씀만 보면 요나단이 미친 사람 같습니다. 왜냐하면 처음 봤기 때문입니다. 별로 면식이 없고 친하지 않은 사람인데,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여기 보면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다윗의 마음이 어떤 마음입니까? 한마디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골리앗이 사십 일을 조석으로 자기 몸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고 조롱하는데, 이스라엘 군대는 잠잠했습니다. 사울 왕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병사들까지 침묵했습니다. 소년 다윗이 지나가다가 그 이야기를 듣고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니까 거룩한 분노가 치밀어 올라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마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마음과 요나단도 하나님을 사랑한 그 마음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람을 사귈 때, 특히 교회 공동체에서 "하나님, 제게 기도 동역자를 주세요. 저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주세요"라는 기도제목을 가지고 있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 사람을 찾아다니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잘 표현하면, 똑같이 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만나게 하십니다. 결혼 배필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을 잘 표현하며 믿음 생활을 하면, 똑같이 나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나도 영의 눈으로 보고, 그도 나를 영의 눈으로 보고, 그래서 서로가 서로를 만나서 두 사람이 똑같이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을 찾아다니다 보면 그 사람 속을 우리가 어찌 알겠습니까? 번번이 속고 판판이 넘어집니다.

지금 요나단이 다윗을 보고 한눈에 반한 것은 이 사람이 골리앗과 전투하는 것을 보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게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내 마음과 그의 마음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1-2. 언약의 증표

그런데 지금 요나단의 신분이 무엇입니까? 왕자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신 것을 모릅니다. 백성들은 알 수 없습니다. 사무엘만 알고, 다윗도 기름부음을 받았으니 알고, 사울도 알죠. 자기에게서 하나님의 영이 떠난 것을 백성들은 모릅니다. 사울은 그냥 껍데기만 붙들고 있는 중입니다. 그런데 그냥 형식적으로 보면 사울이 죽고 나면 왕은 요나단에게로 그대로 넘어가는 것입니다. 왕위를 계승할 적장자, 왕자입니다.

그런데 이 왕자가 하는 일을 한번 보십시오. 3절에 "요나단은 다윗을 자기 생명같이 사랑하여 더불어 언약을 맺었으며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더불어 언약을 맺었습니다. 겉보기에 백성들이 보기에 누가 이득입니까? 누가 수지맞았다고 생각할까요? 다윗이 좋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삼남 중 여덟 번째 아들, '하카톤'입니다. 가장 키도 작고 덩치도 작고 보잘것없고, 가장 보잘것없는 먼지같은, 티끌같은 존재로 아버지조차 인정하지 않았던 그런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왕자님께서, 왕위를 계승할 왕자께서 그와 더불어 언약을 맺고 군복도 주고 칼과 활과 띠도 다 주었습니다. 그냥 언약의 증표로 말입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보면 누가 수지맞은 것입니까? 요나단이 수지맞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요나단은 자기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다윗의 진가를 한눈에 알아본 것입니다. 그리고 요나단이 이렇게 한 것은 다윗을 사랑했고 하나님에 대해서 회개한 결과가 그대로 드러난 것입니다. 무엇을 회개했을까요?

요나단도 그 전장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골리앗이 사십 일을 조석으로 나타나며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할 때 거기서 쩍 소리 못하고 한마디도 못하고 사십 일 동안 그거 듣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기와 비슷한 또래의 소년 다윗이 일어나서 용감하게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가노라" 하고 무너뜨리고 목을 베었습니다. 그러면서 얼마나 후회가 되고 회개했겠습니까. "내가 용기가 없었구나.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나는 왜 그런 용기를 낼 수 없었을까? 저 골리앗의 위세에 눌려서 나는 왜 이러고 앉아 있었을까?" 그러면서 용기 내어서 소년 다윗에게 다가가서 사랑을 고백하고 언약을 더불어 맺고 자기 증표를 주는 것입니다.

대단히 용기 있는 사람이고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신분, 지위 고하 이런 것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입니다. 쉽지 않습니다. 사실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굉장히 영적으로 탁월한 사람입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정말 우리가 영적으로 뛰어나려면 다윗 같은 사람이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다윗을 알아볼 수 있는 영안이라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다윗을 사랑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면 그 다윗과 내가, 그 사람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언약이라도 맺어야 다윗이 가진 복이 나한테 올 것이고, 나도 함께 축복받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