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가버나움에 오시다 (막 2:1-5)

고려 말 공민왕 10년, 1361년에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이 갑자기 사망합니다. 이자춘은 당시 47세였고, 그가 맡고 있던 관직은 고려 국경을 담당하는 동북면 병마사였습니다. 또한 호부상서를 겸직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갑자기 사망했을 때, 그의 관직은 중앙의 요직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중요한 자리였습니다. 원나라의 침입을 억제하는 동북면 병마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죽고 난 후 공민왕은 걱정이 되었습니다. 누가 이 일을 앞으로 성실하게 맡아서 감당할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그의 사망 후 5개월이 지나자 국경에서는 반란 사건이 일어납니다. 공민왕은 형부상서 김진을 파견하여 토벌을 지시합니다. 하지만 토벌에 실패했습니다. 반란군이 불꽃처럼, 들불처럼 일어났습니다. 아무도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고민 끝에 꺼내 든 카드가 이성계였습니다.

이자춘의 아들 이성계는 당시 27세의 장년이었습니다. 주변에서는 반대가 많았습니다. 한 번도 검증해 보지 않았고, 한 번도 역량이 드러나지 않은 청년을 어떻게 그 위험한 시기에 등용하느냐 하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사실 대안이 없었습니다. 이성계가 잘해 주기만을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왕명을 받들고 나간 이성계가 반란군을 멋지게 토벌합니다.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위대한 탄생이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 후, 중국의 원나라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고려로 내려온 홍건적이 있었습니다. 원나라의 세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중국 대륙을 휩쓸고 고려까지 내려왔습니다. 홍건적은 고려를 야금야금 침략하다가 개경을 그들의 손아귀에 넣게 됩니다. 나라가 통째로 홍건적의 손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공민왕은 다시 이성계를 부릅니다. 이성계는 여러 장수들과 힘을 합쳐서 개경을 다시 탈환합니다. 이제 그는 28세 청년으로 전국적인 스타로 발돋움하게 되었습니다.

만약이라는 가정을 해 보겠습니다. 만약 이성계가 이자춘의 아들로서 철없이 어린 젊은 시절을 보내고 있었더라면, 응석받이 무인의 아들로 그냥 그렇게 살고 있었더라면, 그에게 기회가 왔을 때 그는 그 기회를 붙잡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성계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무예를 자기 것으로 만들었고, 열심히 글 공부를 했습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하늘이 그에게 기회를 주면 반드시 그 기회를 잡겠다고 기대하고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기회는 이렇게 준비된 자의 몫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조선을 창건하게 되는 태조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1. 은혜 받을 준비

그리스도인에게 기회를 잡는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똑같이 은혜를 주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 나온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부어 주고자 하시는 은혜는 동일합니다. 하나님은 공평하게 모든 자들에게 은혜를 부어 주고자 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은혜를 받을 만한 준비가 되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가 열심히 준비한 만큼, 그릇을 가지고 은혜를 받아들일 만큼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내가 준비되지 않으면, 간절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아무리 은혜를 주고 싶어도 부어 주실 수 없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이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준비하며, 간절하게 은혜를 소망하는 자들이 되어서 하나님 주시는 은혜를 마음껏 받아 누리고, 인생의 문제도 해결받는 귀한 은총이 있기를 바랍니다.

1절 말씀입니다.

"수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들린지라"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습니다. 다시 가버나움에 가셨다는 이 말을 미루어 보면, 주님이 언젠가 한번 가버나움에 가신 적이 있다는 말입니다. 언제 가셨습니까? 1장 21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예수께서 이미 가버나움에 가신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네 명의 제자들과 함께 안식일에 가버나움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 가르침이 서기관들과 같지 않아서 사람들이 은혜를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아주 놀라운 일이 있었습니다. 귀신 들린 자에게서 귀신이 떠나간 것입니다. 귀신 들린 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회당에서 나오셨습니다. 역시 가버나움에서 베드로의 장모가 열병으로 사경을 헤매고 있었는데, 그의 병을 고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집에 모여든 가버나움에 있던 각색 병자들의 병을 한 사람도 빠짐없이 다 고쳐 주셨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가버나움에서 있었던 사건입니다.

그 후에 주님은 가버나움을 떠나서 갈릴리 각 마을마다 다니면서 전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가버나움에 한 명의 병자가 더 있었습니다. 그는 바로 중풍병자였습니다. 그 중풍병자에게는 네 명의 친구가 있었는데, 친구들은 중풍병자 친구를 너무나 사랑하는 친구들이었습니다.

1-1. 간절한 기다림

그들이 나중에 소식을 들었습니다. 어떤 한 청년이 나타나서 귀신 들린 자를 고쳐 주셨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가 절망적인 상황에 있었던 열병 환자를 고쳐 주셨다는 이야기, 각색 모든 병자들을 다 치료하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친구가 생각났습니다. 친구에게 달려갔습니다. 이름을 불러가며 말합니다.

"예수라는 분이 와서 이런 일을 행하셨는데, 우리 마을에 한 번 더 오시지 않을까? 한 번 오시면 그때 너도 가서 주님께 네 몸을 보이자."

중풍병자는 그 이야기를 처음 들을 때는 아마 반신반의했을 것입니다.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너무 확신 있게 네 명의 친구들이 와서 똑같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열립니다. 귀가 열렸습니다. 친구의 마음이 열리는 것을 보고 네 명의 친구가 이제 결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