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농업학자를 한 분 꼽으라면 조지 워싱턴 카버를 제외하고는 논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1864년 미국 미주리주에서 흑인 노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아버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고, 본인과 어머니는 괴한에게 납치를 당합니다. 어머니는 끝내 돌아오지 못했고, 갓난아기인 그만 겨우 돌아왔습니다. 그 아이를 기를 사람이 없어서 농장주였던 백인 부부가 양자로 입양하게 됩니다. 농장주 부부는 참으로 좋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아이를 잘 기르고자 했는데, 아이가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습니다. 그래서 농장 일을 할 수가 없었고, 집안일을 돕고 정원 일을 돕는 정도로만 일을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양부모가 한번은 크리스마스 때 성경을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때 받은 성경을 카버는 열심히 읽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읽다가 믿음이 생겼습니다. 믿음이 생기니 이렇게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더 배워야 되겠다, 공부를 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어느 학교에서도 흑인 아이를 받아주지 않았습니다. 흑인을 받아주는 학교를 찾기가 매우 힘들었습니다. 이곳저곳 떠돌아다녔지만 학교에서는 번번이 거절당했습니다. 하지만 수십 번에 걸친 거절도 그의 배움의 열망을 막을 수가 없었고, 그는 독학으로 공부하고 어깨너머로 공부하며 이 학교 저 학교를 떠돌아다니다가 결국 아이오와 주립대학의 최초의 흑인 학생이 됩니다.
그는 농업을 전공했는데, 농학사로 학부 과정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해서 식물학을 공부했습니다. 워낙 성적이 뛰어나서 학교에서는 교수로 계속 키워보려고 했는데, 그는 교수직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작은 실험실을 마련했습니다. 그곳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연구에 매진합니다. 스스로 그 이름을 붙이기를 '하나님의 작은 실험실'이라고 하고, "하나님께서 커튼을 열어주시지 않으면 나는 무익한 존재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열심히 기도하고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릴 때부터 땅콩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땅콩에 깊이 빠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런 땅콩을 만드셨습니까? 도대체 무엇을 하시려고 이렇게 신비한 음식을 만드셨습니까?"
그리고 그는 땅콩 연구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 결과 땅콩으로 105가지에 이르는 식품을 개발합니다. 200여 가지나 되는 생필품을 만들었습니다. 거기서 연구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고구마 연구까지 합니다. 고구마로 107가지의 제품을 만들어서 출원하게 됩니다. 그는 작은 실험실에서 이 일을 했지만, 이 일은 기념비적인 업적이 됩니다. 그 당시 미국 남부의 산업은 목화로 단일화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단일화된 목화 산업이 다양한 땅콩과 고구마 등의 산업으로 확대되면서 사람들이 잘 살게 되었습니다. 누구의 손에 사로잡히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성장하고 자라면서 누가 내 옆에 있는지, 어떤 사람과 함께 교제하는지가 아주 중요하지 않습니까?
사람과의 교제가 중요한데,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히면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사실 카버는 비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흑인 노예였고, 그도 태어날 때부터 흑인 노예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히니 그의 인생이 완벽하게 달라졌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을 보면 역시 비천한 한 여인의 노래가 나옵니다. 마리아는 스스로를 비천한 존재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마리아를 통해서 크고 놀라운 일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그 일을 마리아는 하나님께 찬양으로 올려드립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의 손에 사로잡힌 존재인가, 나와 하나님은 어떤 관계 속에 있는지를 살피고 돌아보며 은혜 받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리아는 수태고지를 받은 후에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즉각 행동했습니다. 일어나 빨리 엘리사벳을 만나러 갔습니다. 미적거리지 않았습니다. 행동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엘리사벳과 마리아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났지만, 이 두 사람은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게 되어 있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알아보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베푸신 비밀한 일을 말하지 않아도 서로 고백합니다. 두 사람의 공통점이 또 있었습니다. 기쁨이 충만했습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다는 기쁨, 하나님의 통로로 일꾼으로 도구로 쓰임받는다는 기쁨으로 두 사람은 가득한 기쁨을 누립니다. 이제 이 기쁨을 가지고 마리아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48절을 보십시오.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마리아는 스스로를 비천하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자기비하가 아닙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사실 마리아가 비천한 사람 아닙니까? 나라를 잃었습니다. 식민지 백성입니다. 배운 것도 얼마 없고, 가진 것도 없습니다. 아주 평범한 시골 처녀입니다. 약혼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과 결혼해서 그저 소박하게 살고자 하는 꿈을 가진 비천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고백이 특이하지 않습니까? 주께서 비천한 자를 돌보셨다고 했습니다. 이 '돌보다'라는 말이 에피블레포(ἐπιβλέπω)라는 헬라어를 사용했습니다. 에피(ἐπί)는 '위에서'라는 뜻의 전치사 접두어입니다. 블레포(βλέπω)는 '보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에피블레포는 '위에서 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비천한 자를 위에서 살펴보고 계시다가 나를 택하셨다는 고백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여기서 오해하면 안 되는 지점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조건 비천한 자를 편들어 주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공평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아무래도 그 눈이 존귀한 자에게 쏠리게 되어 있습니다. 옷을 잘 입은 사람, 좋은 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 부자로 사는 사람, 그런 사람의 모습이 사람들 눈에 들어오게 되어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존귀한 사람이나 비천한 사람이나, 가진 자나 가지지 못한 자나 똑같이 놓고 하나님께서 에피블레포(ἐπιβλέπω), 높은 곳에서 살펴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왜 살피실까요? 하나님이 왜 높은 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살피고 계시는 것일까요? 역대하 16장 9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 여호와의 눈이 온 땅을 두루 감찰한다고 했습니다. 살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눈이 온 땅을 살피는 이유는 전심으로 자기를 향하는 자들을 찾아내고 그들에게 능력을 베푸시려고 찾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복을 주시려고 하나님의 눈은 에피블레포(ἐπιβλέπω) 하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을 찾아서 나의 능력을 베풀어줄까, 어떤 사람이 복을 받을 만한 사람일까, 어떤 사람이 내가 주는 은혜를 받을 만한 사람일까, 하나님은 그렇게 에피블레포, 높은 곳에서 항상 사람을 살피고 계십니다. 그렇게 살피다가 마리아가 하나님의 눈에 띄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마리아에게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그의 품에 선물로 주셨습니다. 마리아는 이것을 찬양하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우리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 성 여인을 만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요한복음 4장 23절을 보십시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하나님은 찾는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당시는 모두가 다 예배드리는 자들입니다. 성전에 다 나가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이 드물기 때문입니다. 예배당에 나오는 사람은 많습니다. 예배드리러 몸은 오는 사람은 많은데, 정말 그 중심이 영으로 진리로 하나님 앞에 제대로 서 있는 자는 찾기가 매우 어렵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기서 찾는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왜 찾으실까요? 능력을 베푸시려고, 진실로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찾으시고, 그 눈에 띄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복에 복을 더하여 주시려고 찾고 또 찾으시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 하나님의 눈에 발견된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오늘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해서 배워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여러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이 나의 힘을 알아주기를 원하고, 나의 권세와 능력과 나의 부귀영화를 알아주기를 원합니다. 그냥 평범하게 있으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까 돈도 열심히 벌고, 권세도 가지고, 좋은 옷도 입고, 좋은 차도 타고, 넓은 집에 살려고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그를 향하여 알아주고 박수를 쳐주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이 과연 그런 사람들을 알아주시겠습니까?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 만물을 지으시고 다 통치하시고 가지고 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이 뭐가 아쉬워서 우리가 가진 물질 따위에 관심이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뭐가 아쉬워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직위나 권력 따위에 눈길을 두고 관심을 두시겠습니까? 하나님이 관심을 두고 찾는 것은 전심입니다. 그 순전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 영과 진리로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는 자, 그런 자들이 귀하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런 분들을 찾고 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