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자라는 커리어를 이어온지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되었다. 개발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경제학과 출신 대학생에서 이제는 어디가서 당연하게 개발자라고 말하는 나의 모습을 돌아볼때면 지금도 이 순간이 너무 꿈만 같고 신기하다. 3년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한 나의 관점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개발을 시작한 초기에는 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환상으로 가득했었다면, 이제는 개발자라는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더불어 추구해야 할 성장의 방향성, 내적외적 평가에 대한 객관적인 시각, 그리고 늘 경계해야만 하는 자만심 등에 대한 나의 기준들이 세워져 나가는 것 같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변화에 또한 기술적인 부분을 넘어선 성장의 일부라고 생각한다.
나는 이런 성장의 과정동안 많은 생각들에 변화를 경험하였지만 한 가지 처음 개발을 시작할 때와 동일한, 그리고 아마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않을 한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개발에 대한 나의 철학이자 목적이다. 이번 글에서는 이러한 나의 개발 철학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내가 왜 개발자가 되었는지에 대해 소개해야 할 것 같다.
대학 졸업반이 되었을 무렵, 나 또한 다른 동기들과 마찬가지로 여러 회사에 지원서를 넣으며 사회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때 당시 나에게 취업의 목적은 단순히 좋은 기업에 취업하는 것이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돈을 많이 주는 회사,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 회사에 들어가기 위해 어학성적을 준비하고, 밤을 새워 자기소개서를 작성하는 등 내 나름대로의 고군분투하며 사회 진출을 꾀하였다.
취준을 하는 동안 나는 매우 수동적인 입장으로 임했었다. 회사의 지원 여부는 그 회사가 얼마나 잘 알려져 있는가, 또 얼마나 많은 급여를 보장해주는가가 전부였다. 그렇게 속빈 강정의 마음으로 약 10 여개의 대기업에 이력서를 넣은 나는 결국 모든 회사에서 탈락하면서 첫 사회진출에 실패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결과였다. 나에게 취업은 나의 비전을 실현해주는 수단이자 과정이 아닌, 그 자체로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해당 기업에서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그로 인해서 얻게 될 성취감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았었다. 부끄럽지만 취업에 실패를 겪고난 후 비로소 나에게 직업이 갖는 의미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잘 할 수 있는것, 그리고 내가 자부심을 가질 수 있을 만한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 보았다. 그때 든 생각은 나는 논리적으로 생각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즐기고, 또 나의 노력의 산물이 표면적으로 드러나 스스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일을 늘 원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일들은 대부분 공대생들의 영역이거나 예술과 같은 창작의 영역이거나 혹은 마케팅, 광고와 많은 대외활동이 뒷받침 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대학 생활동안 경제학이라는 학문에만 매진해왔던 나에게는 조금 먼 이야기라고 느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진짜 즐기며 할 수 있는 일에 도전해보자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했던 분야가 바로 개발이다. 당시 나는 전공시간에 배운 일부 통계 프로그래밍과 혼자 조금 공부해본 파이썬에 대한 얄팍한 지식이 있어 코딩이 마냥 생소한 것이 아니었기에 한번 도전해보자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 스스로에게 6개월이라는 오로지 내가 해보고싶은 일에만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로 하였다. 그렇게 개발을 배워보기로 결심하며 무려 공짜에 생활비까지 준다고 홍보하는 국비지원 학원에 들어가게 되었다.
국비지원 교육이라는 것에 대한 무성한 소문들에 사실 반신반의하며 시작한 교육이었지만, 나는 너무나도 운 좋게 좋은 강사님과 또 무엇보다 서로 의지하고 자극이되며 공부할 수 있는 동료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그들 사이에서 개발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대해 열정을 느끼며 나도 무언가 만들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이 분야에 대해서 조금씩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국비교육이 마무리 되어가며 슬슬 취업에 대해 다시 고민을 시작해야 할때가 되었을 때, 나는 한번더 자신을 되돌아 보았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6개월간의 개발 경험은 나에게 여태껏 느껴본적 없는 즐거움과 성취감을 주었음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개발을 나의 업으로 삼을 만한 가치가 있을까? 이 즐거움이 그저 한때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개발이 나에게 주는 즐거움 그 이상의 가치는 무엇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