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에 한글 파일에 홀린 듯이 글을 적고 꼼꼼히 다듬어서 어딘가에 올려야만 하는 심정을 잘 안다. 남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불쑥 튀어나온 기억이 평소처럼 쉽게 안 눌러지고 오래 버티는 날, 어디를 겨누는지 알리지 않고서 라도 일단 꺼내놔야 자려고 마음 먹을 수 있다.

이제는 거의 생각이 안 나, 화나기 보다는 그냥 안타까워, 한심한거지, 같은 대답을 진심으로 해놓고도 몇 개월 뒤 황당할 정도로 뚜렷하게 특정 순간의 말투와 표정이 촉감처럼 재생된다. 그게 한 시간 이상 지속되면 이렇게 침대에서 나와 스탠드 불을 약하게 켜고 쓰는 것이다. 쓴다기 보다는, 받아쓴다. 정신이 기억의 인질이 되는 바람에 졸음을 참고 억지로 쓴다. 이러지 않으려고 많은 비용을 치렀다. 그 결과 영원히 이러지 않는 법은 없고 빈도가 약해지게 노력하는 것만이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고, 종종 그걸 까먹는다. 그것만으로도 비용은 분명히 값어치를 했다.

어쩌면 그들도 자다 깨서 밤중에 뭐라도 쓰게 만드는 경험이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글쓰기 대신 넷플릭스를 보면서 저주나 자기만의 암시를 되뇌이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 경험을 선사한 사람은 내가 아닐 것이다. 밤에 한글 파일에 홀린 듯이 글을 적게 만든 사람들은 대체로 저주나 자기 암시를 귀가 후 뒤늦게 할 필요 없었던 사람들이다. 뒤돌아서기 전 면전에서 해소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다. 그 해소 방식이 어느날 갑자기 누군가의 밤잠을 방해한다.

보복에 대한 갈망은 폭죽이나 무늬가 화려한 풍선 비슷한 것. 언뜻 부피가 커보이지만 들여다보면 속을 채우는 건 아무 것도 없다. 쓸데 없으나 잠깐은 기분이 좋다는 효과는 있음. 내가 바라는 건, 그들이 아니라 내가 변하는 것, 그들로부터 멀어지는 만큼 내가 닮고 싶은 것에 가까워지는 것.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일직선이 아닌 삼차원의 좌표 위에 놓여있으며, 그들도 누군가에게는 가까워지기 위한 대상이라는 것과 나는 저 멀리 상관 없이 놓인 점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 그런 구체적으로 어려운 숙제지만, 폭죽 놀이가 아니어서 다행인 것. 나는 보통 이렇게 상황을 정리하고 이 암시는 대체로 잘 먹힌다.

한밤중 더 안 나올 때까지 토하거나 신중하게 피를 뽑듯이 밤의 일기를 쓰는 분들에게. 누구보다 나를 가장 처참하게 파괴할 고발이 목 끝까지 차오른 상태로 모니터를 보는 사람들에게. 우리는 무슨 고결함을 지키자고 자기 안에 자기 몸집 보다 더 큰 침묵을 꾹꾹 눌러담고 사는 걸까요?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 이름들은 꺼내든 삼키든 우리 안에 남겠죠? 그것만 해도 힘드니 자책만이라도 하지 맙시다. 안녕히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