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25포스터 제작자는 왜 손모양을 반복 사용했을까

경향신문 정용인 기자의 이 기사 덕분에 논란의 GS25 광고 포스터 속 ‘별과 달’ 그림이 어째서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읽히는지 처음 알았다. 별과 달을 비롯한 만물로부터 페미니즘과 남성 혐오의 기호를 발견하려 애쓰는 분들께 진심으로 궁금하다. 굳이 편의점 광고 포스터에 서울 소재 대학교 여성주의 학회를 상징하는 기호를 넣는 것이 페미니스트들에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그리고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모든 학교와 모든 지역의 페미니즘 학회, 페미니즘 단체, 페미니즘 동아리, 페미니즘 모임의 이름과 로고를 외우고 있으리라 믿는가? 페미니스트들 사이의 은밀한 남성 비하 코드로 사용하기 위해서? 한국 페미니스트들은 그 정도로 한가하지 않다.

"그럼 그 손가락은?" 그렇다. 손가락이 남았다. 가끔 사소한 의문에 몰두하다 보면 정작 중요한 걸 까맣게 잊게 된다. 논란이 되고 있는 포스터 속 남성 혐오로 추정되는 내용은 ‘한국 남성의 성기 크기를 상징하는 손가락 제스처를 사용했다’는 것이다. 집게손가락 제스처에 실제로 남성 비하의 의도가 담겨 있었는지의 진위를 파악하는 일이 그렇게나 중요한 일인가. 그 일이 중요하다고 여긴다면 그것이 말해주는 더 중요한 사실이 따로 있다. 한국 남성들이 분개하는 남성 혐오란 성기의 크기를 놀리는 것이며, 그마저도 (그들에 따르면) 편의점 광고 포스터 속에서 비밀스럽게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놀랍게도 한국 여성들이 겪는 혐오는 그와 달리 공공연하고 투명하게 일상에 널려있으며 그 내용도 ‘놀림거리’의 수준이 아니다. 비밀도 상징도 은유도 아닌 명백한 여성혐오로 무엇이 있는지 굳이 짚어봐야할까? 지난 몇 주간 우리가 접한 여성 살해 사건의 수를 우리는 차라리 모르고 싶다. 우리는 자기 집이 아닌 다른 건물의 화장실에 갈 때마다 어딘가 숨어있을 불법촬영 카메라의 가능성을 떠올린다(그리고 소라넷의 이용자 수를 생각해볼 때, 나는 이미 한 번 이상은 찍혔을거라고 체념하고 살기로 했다). N번방 가입자의 수는 26만 명으로 알려졌다. 우리는 여성 응시자에게 성차별적 질문을 한 다수의 기업 중 하나의 이름을 한 응시자의 용감한 고발을 통해 알고 있다. 그 제약회사에 쏟아진 항의와 불매운동이 지금 문제의 편의점에 쏟아지는 그것만큼 격렬했는지는 모르겠다.

여러분은 혐오에 맞서기 위해 암호를 풀고 있다.

우리가 겪는 혐오에는 수수께끼가 없다.

여러분은 추측에 불과한 암호 해독으로 해당 기업의 사과문을 받아냈다.

n번방 사건 고발은 수사기관에서 여러번 묵과되었고 사건의 공식적인 수사는 민간 단체의 오랜 추적 끝에 이루어졌다.

여러분은 작은 성기를 의미하는지 어떤지 모를 집게 손가락 제스처에 분개한다.

우리는 여자 친구들의, 여자 어린이의, 우리보다 나이 많은 여성들의 안전을 기원한다.

여러분은 해당 편의점을 불매하며 “남자들도 더이상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외친다. 경향신문 정용인 기자는 해당 기사로 인해 “경향신문을 다시 봤다”는 남성들의 칭찬과 뜨거운 지지를 얻으며 네이버 댓글을 통해 스스로 기자 본인임을 밝히면서 그들과 연대하고 있다.

나는 앞으로 어떤 자리에서 단지 여러분의 심기를 거스르는 바람에 ‘남성혐오자’로 낙인 찍힐까봐 문제의 집게손가락 제스처를 실수로라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게 될 것이다.

이 우스꽝스러운 암호해독과 그것을 심각하게 대해주는 사회적 분위기로부터, 페미니스트든 아니든 여자들은 두려워해야 하는 일이 또 하나 늘어난 셈이다. 얼마전 어느 페미니스트 정치 시사 토론 유튜브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는데 이런 일이 있었다. 가운데 앉은 남성 진행자가 문제의 손가락 제스처를 해보이며 “이게 뭐라고!”하며 비웃는 와중에, 양쪽에 앉은 여성 패널 두 사람은 웃으면서 손을 가만히 두었다. 그 중 한 사람이 말했다. “나는 (그 손가락) 안 할거야, 내가 하면 박제 돼서 영원히 돌아다닐 테니까.” 나는 이 말을 들은 순간 안도했고 그 다음 순간 크게 절망했다. 그 손가락 제스처 따위가 우리를 매장시킬 근거가 안된다는 걸 아는 동시에, 실제로는 그 위협이 가능하다는 걸 알기에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준석 후보가 몇몇 사진 속에서 보여준 다양한 집게 손가락 제스처는 문제 되지 않지만,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한 여자가 실수로 안경을 집게 손가락으로 잡거나 하는 모습이 포착되면 아무런 맥락 없이 ‘남성의 성기 크기를 조롱하는 모습’으로 찍혀서 영원히 고통받을지 모르는 일이다(피해망상인가 싶다가도, 포스터 속 별과 달 그림으로부터 관악여성주의학회가 소환된 걸 보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다). 그러니까 내 절망은 이것이다. 실체가 없는 피해 주장으로부터 실질적 피해를 입는 것은 여자들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존재론적 열패감을 모를 것이다. 단지 평등하고 안전한 삶을 위해 한국에서 페미니스트로 살아가는 여자들 모두를 싸잡아 "남성의 성기 크기를 조롱하는 남성혐오자"로 간주하며 존재해서는 안될 해악으로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그 덕분에 우리는 두려워 해야하는 일이 하나 더 늘었다. 그리고 정용인 기자의 기사, 기사에 달린 댓글이 그 사회적 분위기를 증명한다.

정용인 기자는 광고 포스터에 실제로 한국 남성의 성기 크기를 조롱할 의도가 담겨 있었는지, 그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총 3천자 가량의 기사를 썼다. 그리고 이 기사는 “훗날 경영학 교과서에는 2021년 5월 일어난 ‘GS25 남성혐오 논란’의 교훈을 어떻게 정리할까. 궁금하다”는 문장으로 마무리된다. 내가 궁금한 것은 따로 있다. 만약 GS25의 포스터 속 집게 손가락에 실제로 한국 남성의 성기 크기를 비하하려는 의도가 담겨있었으며 그것을 증명할 수 있다면, 그 의도로 인해 불특정 다수의 한국 남성이 입을 수 있는 가장 큰 피해는 무엇일까? 평균적인 성기 크기에 컴플렉스를 가진 한국 남성의 기분 외에 무엇을 훼손할 수 있단 말인가? 이 기사의 댓글 중 나를 가장 놀라게 한 것은 아래 댓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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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메갈도 이보다 창의적으로 남성의 성기 크기를 비하할 수 없다.

여성들은 후대의 경영학 교과서 보다 현재의 한국 사회의 진실에 좀 더 관심을 기울이는 동료 시민을 원한다. 실체가 불분명한 혐오의 암호를 해독할 시간에 보다 눈에 보이는 명백한 혐오에 주목하길 바란다. 정용인 기자의 기대와 같이 이 사건이 훗날 경영학 교과서에 기록될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수 년 내에 한국 사회의 젠더갈등 또는 여성혐오를 다루는 책에 반드시 실릴 만한 기록적 흑역사라는 점은 분명하다. 또한 정용인 기자의 이 기사는 대표적 진보 언론인 경향신문 소속의 기자가 자랑스러운 남성 연대를 공고히 한 사례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페미니스트든 아니든 한국 여성들은 한국 남성의 성기 크기에 그렇게 까지 관심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