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F 파일

[210627] 루쉰의 여러 얼굴들.pdf](https://s3-us-west-2.amazonaws.com/secure.notion-static.com/7d47653a-8708-4669-b1aa-8c448e958ed4/210627___.pdf)

웹에서 보기

루쉰의 여러 얼굴들 - 광인, 길손, 전사 그리고 그림자

기픈옹달(zziraci@gmail.com)

1. 루쉰魯迅

우선 오해(?)를 바로잡자. 루쉰은 흔히 중국을 대표하는 대문호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는 중국 문인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기도 하지만, (중국 작가를 몇이나 알고 있나?) <아Q정전>이나, <광인일기>로 이름을 떨쳤던 까닭도 있다. 그러나 생전에 그가 쓴 많은 글들은 문학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었으며, 그 스스로도 문학연 하는 행태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가 생전에 남긴 대부분의 글은 '잡감雜感’이라 불리는 자유로운 형식의 짧은 글이었다. 그때그때 시류에 따라 주제를 잡아 쓰는 글이었기 때문에 요즘으로 치면 칼럼으로 분류할 수도 있을법하나, 정작 그의 글을 읽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워낙 논쟁이 치열하며, 자신의 신변잡기를 다루는 글도 많아 하나의 말로 그의 글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다.

루쉰이라는 이름도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의 본래 이름은 저우수런周樹人, 루쉰魯迅은 그가 생전에 사용한 여러 필명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이 이외에도 수 없이 많은 필명을 사용했는데, 루쉰이라는 필명이 가장 널리 알려졌다. 일부 전하는 말에 따르면 'Revolution'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허나 그보다는 어머니의 성에서 루魯를 따오고, 그와 모순되는 표현으로 쉰迅을 붙였다는 것이 더 적합한 설명으로 보인다. 루魯는 노둔魯鈍, 느리고 어리석다는 말이다. 쉰迅은 신속迅速, 날쌔고 빠르다는 뜻이다. 느리고도 빠른, 상호 모순되는 요소를 이름에 품은 사람이 바로 루쉰이다.

이런 까닭에 루쉰에 대한 이해는 사람마다 크게 엇갈린다. 누구는 루쉰을 계몽주의자로 보는가 하면 누구는 루쉰은 계몽을 거부한 인물이라 본다. 문학가로서 루쉰이 있는가 하면 반문학을 외친 루쉰이 있기도 하다. 루쉰은 사후 마오에 의해 현대의 성인으로 추앙되었는데, 일부는 이것이야 말로 루쉰에게 있어 가장 치욕스런 일이라 평가하기도 한다. 루쉰이라는 모호한 이름처럼, 그는 지금도 해석을 기다리는 존재이다.

2. 몰락

루쉰은 1881년 샤오싱에서 출생했다. 그는 어린 시절 꽤 유복한 삶을 살았다. 이는 그의 할아버지가 청나라 중앙 관리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1893년 그의 나이 13세 때부터 적잖은 풍화를 겪는다. 할아버지가 과거시험의 부정행위에 가담한 일이 발각되었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투옥되었고, 루쉰의 집안은 부동산을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 화를 피하기 위해 루쉰은 친척집으로 피신해야 했다. 불행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몸저 누웠다. 의원을 모셔와 진찰을 했지만 차도가 없었다. 도리어 의원이 요구하는 진귀한 약재를 구하려 루쉰은 산과 들을 누비며 고생해야 했다. 이때 겪은 경험은 훗날 전통 의학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며, 그가 의학을 배우는 중요한 계기가 된다.

루쉰은 전당포와 약방을 오가며 아버지의 약을 받아오던 시절을 가슴 아픈 시절로 기억한다. 자신의 키보다 갑절이나 높은 전당포 창구 안으로 옷가지나 머리 장식을 밀어 넣었으며, 그 대가로 '모멸어린 돈'을 받아 약을 구입했노라고 전한다. 어린 시절의 몰락은 루쉰에게 적잖은 충격을 안겨주었으리라. 그는 그 경험으로부터 '세상인심의 진면목'을 보았노라고 기억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 몰락의 경험은 루쉰에게 다른 길을 열어주는 계기가 된다.

어지간한 생활을 하다가 밑바닥으로 추락해 본 사람이라면 그 길에서 세상인심의 진면목을 알 수 있으리라. 내가 N으로 가서 K학당에 들어가려 했던 것도 다른 길을 걸어 다른 곳으로 도망을 가 다르게 생긴 사람들을 찾아보고자 함이었을 게다. 어머니는 방법이 없었는지 팔 원의 여비를 마련해 주시며 알아서 하라고 하셨다. 하지만 어머니는 울었다. 이는 정리情理상 당연한 것이었다. 그 시절은 경서를 배워 과거를 치르는 것이 정도正道요, 소위 양무洋務를 공부한다는 것은 통념상 막장 인생이 서양 귀신에게 영혼을 파는 것으로 간주되어 몇 갑절의 수모와 배척을 당해야 했으니 말이다. <‘외침’ 서문>

할아버지와 아버지에게 연이어 닥친 불행이 없었다면 그는 번듯한 집안의 도련님으로 자랐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따라 순순히 과거시험을 준비했을 테다. 그러나 그 개인에게 닥친 불행은 앞에 주어진 길을 의심하고 따져 물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그가 말한 '정도正道'라는 것을 이야기해보자. 무릇 '도道'란 길을 의미한다. 한 사회가 닦아놓은 일반적인 삶의 과정이 바로 '도'라고 할 수 있다. 그것뿐인가. 한 사회가 공유하는 가치, 이념, 이상 등을 모두 포괄하는 말이 바로 '도道'이다. 그러나 그는 몰락을 통해 인도人道, 통용되는 인간사의 가치가 결코 믿을만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다른 길을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