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19:4-11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두 환경이 주어지면 그 환경에 빠르게 적응하며 살아갑니다. 무더운 사막에서도 살아남는 동물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낙타입니다. 낙타는 등의 혹 덕분에 45일 동안 물 한 방울 마시지 않아도 버틸 수 있습니다. 사람의 지방이 온몸에 골고루 퍼져 있는 것과 달리, 낙타의 지방은 혹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사막을 횡단하며 걷다 보면 지방이 연소되고, 지방 1g이 연소될 때마다 물 1g이 생성됩니다. 혹의 지방이 물로 바뀌기 때문에 45일을 걸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동물원에 있는 낙타는 어떻습니까? 무더위에 동물원의 낙타는 목이 말라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사막을 횡단하는 낙타처럼 열심히 걷지 않고, 동물원에서 주는 물과 먹이로 살아가니 이런 더위를 견딜 수가 없습니다. 걸어야 지방이 연소되고, 지방이 연소되어야 물이 생성될 텐데, 그 낙타는 동물원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해 버린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환경이 좋으면 신앙생활을 잘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까? 환경이 좋아졌는데 오히려 신앙생활은 나태해지고, 연약해지고, 믿음은 퇴보합니다. 오히려 척박했던 시절, 환경이 좋지 못했던 때에 우리 믿음이 불같이 뜨거웠습니다.
고대 로마 시절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 신앙인들은 지하 카타콤에서 살았습니다. 예수 믿는 자라는 것이 발각되면 맹수의 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았습니다. 예수 믿다가 맹수 앞에 끌려나가도, 목에 칼이 들어와도 그들은 믿음의 절개를 굳게 지켰습니다. 기꺼이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공인된 후, 기독교가 로마 제국의 종교가 된 이후 교회는 타락했습니다. 교회 안으로 돈이 들어오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정거장이 되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교회는 급속도로 타락해 갔습니다. 같은 교회인데 기독교 공인 전과 후가 이토록 다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그러한 환경에 완벽하게 적응해 버린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롯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롯은 한때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조카였고, 그도 믿음의 결단을 했으며,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으로,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먼 믿음의 여정을 떠났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소돔성에 가서 그곳에 완벽하게 적응하고 타락해 갔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타락한 시대, 타락한 도시에 살면서 우리가 믿음의 절개를 굳게 지키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롯의 집에 두 분의 나그네가 오셨습니다. 그분들은 천사였습니다. 롯이 동분서주하며 열심히 음식을 만들었지만, 아내도 두 딸들도 동역하지 않아 빈약한 식탁을 제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식사를 마친 후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데, 한바탕 소동이 일어납니다.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창 19:4-5)
원근 각지에서 사람들이 다 몰려들었습니다. 그 집을 에워싸고 소리칩니다. "그 사람들을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여기서 '상관하다'라는 표현에 쓰인 히브리어 동사 '야다(ידע)'는 '경험적으로 알다', 곧 성관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는 집단 동성 성폭행을 하겠다는 말입니다. 은밀하게 동성애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드러난 자리에서 집단으로 동성을 성폭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충격적인 광경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 때문에 소돔성을 심판하셨습니다. 소돔성의 극단적인 상태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면을 살펴봐야 합니다. 소돔성이 처음부터 이랬겠습니까? 원래 처음부터 이런 악한 모습이었겠습니까? 우리는 그 질문을 해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소돔성의 정보를 상세하게 제공하지는 않지만, 실마리는 던져줍니다.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 거주하였고 롯은 그 지역의 도시들에 머무르며 그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더라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 (창 13:12-13)
롯이 소돔성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시 소돔성을 평가하실 때 "소돔 사람은 여호와 앞에 악하며 큰 죄인이었더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악하다'라는 형용사 히브리어 '라(רע)'는 '불편하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소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롯이 소돔성에 처음 들어갔을 때, 무엇이 하나님을 그렇게 불편하게 했을까요? 그때는 물질 문제였습니다. 롯이 소돔성에 정착했던 초기에 왕들의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당시 소돔 지역의 맹주는 그돌라오멜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러 도시 국가의 왕들이 그돌라오멜을 섬기다가, 소돔성의 왕을 비롯한 몇몇 왕들이 배반합니다. 더 이상 조공을 바치기 싫다는 것입니다. 그돌라오멜이 가만히 있겠습니까? 다른 세력들을 규합해서 조공을 거부한 왕들을 쳤습니다.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돈 때문에, 물질 문제 때문에,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그들은 목숨을 걸고 싸웠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불편하게 만드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그나마 봐줄 만했고 이해할 만했습니다. 먹고사는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약육강식의 세상에서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들이 조금 더 잘 살려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조공 문제로 서로 다투고 전쟁을 벌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잘 살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생존의 문제가 아닙니다. 먹고 살 만합니다. 부자가 되었습니다. 더 큰 부자가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더 잘 살려고, 더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소돔성에서는 농사도 잘 되고 목축도 잘 되어서 부자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허무해집니다. 돈을 많이 만지니까, 부자가 되니까 허무해집니다. 그 다음 수순은 육체적 쾌락에 대한 탐닉입니다. 이성애가 아니라 동성애로. 처음부터 동성애가 공공연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은밀하게 그들이 동성애의 쾌락을 즐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드러내 놓고 동성 간 성폭행을 공공연하게 자행하고 있습니다. 도시 전체가 음란의 소굴이 되고 말았습니다.
죄가 처음에는 먹고사는 문제였다가, 자그마한 문제였다가, 이제는 더 커지고 더 커져서 감당하지 못할 수준까지 와버렸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모든 죄의 배후에는 사탄이 있습니다. 사탄의 전략을 주목해야 합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따라하는 존재입니다. 얼마나 잘 모방하는지 모릅니다.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풀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마 13:31-32)
겨자씨 비유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설명하신 말씀입니다. 작고 작은 겨자씨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땅에 떨어지고, 그 말씀이 자라고 또 자라서 큰 나무가 됩니다. 그 나무에 열매가 맺힙니다. 그 나무 가지에 새들이 깃들입니다. 나무 그늘에는 사람들이 쉬게 됩니다. 성장하는 하나님 나라를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