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교병을 구우니

본문: 창세기 19:1-3

요즘은 전기차와 수소차가 등장하고 있지만, 여전히 세계 자동차 시장을 양분하는 두 나라는 미국과 독일입니다. 그러나 사실 미국과 독일보다 훨씬 이전에 자동차를 처음 상용화한 나라가 있습니다. 바로 영국입니다. 영국은 1801년에 증기 자동차를 상용화했고, 1826년에는 증기 버스까지 출시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영국 사회는 자동차를 반기지 않았습니다. 그때 영국의 주요 교통수단은 마차였고, 마차 업계에서 자동차를 환영할 리가 없었습니다. 자동차의 최고 시속은 약 30~40킬로미터였는데, 마차는 기껏해야 10킬로미터 정도밖에 속력을 낼 수 없었습니다. 마차업자들은 이대로 가다가는 앉아서 망하겠다고 판단했고, 각종 여론을 주도하며 자동차가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갔습니다.

1869년에 결정적인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시골길을 달리던 버스가 구덩이에 빠지면서 크게 흔들렸고, 버스에 타고 있던 한 승객이 밖으로 튕겨 나가 사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망자가 당시 영국에서 가장 촉망받던 여성 천문학자였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영국의 여론이 마차업자들 쪽으로 기울었고, 자동차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사람들에게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결국 법이 만들어졌습니다. 시내에서 자동차는 시속 3.2킬로미터 이상을 달릴 수 없고, 시외에서는 6.4킬로미터 이상을 달릴 수 없다는 규정이었습니다. 더 황당한 것은, 자동차가 달리다가 마차를 만나면 무조건 일시 정지해야 하고, 마차를 보낸 다음에야 자동차가 움직일 수 있다는 조항이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자동차 업계의 기술자들은 모두 해외로 빠져나갔습니다. 자본도 유출되었습니다. 이 기회를 틈타 1885년 이웃 나라 독일에서 벤츠사가 세계 최초의 휘발유 자동차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1900년대에는 미국의 자동차 전성기가 열렸습니다. 뒤늦게 영국이 자동차 산업을 다시 부활시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지금 영국은 세계 최대의 자동차 수입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혼자서는 어떤 일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기술이 아무리 있어도 국가의 제도가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자본이 따라오지 않으면, 사회 분위기가 호의적이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어도 꽃피울 수가 없습니다. 혼자 하면 풍성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럿이 함께 동역하면 풍성해집니다. 만약 그 당시 영국에서 기술과 국가 제도와 사회 분위기와 자본이 혼연일체가 되었다면, 세계 자동차 판도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 되었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말씀에서도 혼자 하는 일의 빈약함이 드러납니다. 함께해야 풍성해지는데, 혼자 하면 빈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동역하는 자들입니까, 협력하는 자들입니까, 아니면 협력하지 않고 혼자 일을 감당하는 자들입니까? 이 말씀을 통해서 함께 깊이 생각해 보기를 바랍니다.

롯의 영접, 남아 있는 하나님 사람의 흔적

아브라함의 집에 세 분의 나그네가 찾아오셨습니다. 한 분은 하나님이시고 두 분은 천사들이었습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대화하시기 위해 남으셨고, 두 분의 천사들이 소돔 성으로 길을 떠났습니다. 걷고 걸어서 저녁때가 되어 소돔 성문 앞에 도착합니다.

"저녁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창 19:1)

고대 사회의 성문에는 장사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파는 물품들을 가지고 와서 장사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성의 유력한 유지들이 성문 앞에 모여 있었습니다. 주로 해 그늘에 모여서 성의 중요한 일들을 의논했습니다. 유지들이 모여 있다 보니, 성 안에서 조용히 해결되지 않은 갈등과 분쟁들이 그 앞에 나와서 해결받으려고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문 앞은 상업의 요지이자 행정과 재판이 동시에 일어나는 곳이었습니다. 그곳에 롯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롯은 어떤 자격으로 이 성문 앞에 앉아 있는 것일까요? 만약 그가 장사하는 사람이었다면 물건 파느라 정신이 없어서 두 명의 나그네를 못 보고 지나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유지로서 소돔 성을 이끄는 중요한 인사 중 한 사람으로 소돔 성문 앞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본문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녁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창 19:1-2)

롯의 태도를 한번 보십시오.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이 세 분의 나그네를 영접할 때와 똑같습니다. 달려나가 영접하고 엎드려 절하며 자기 집에 들어와 쉬고 주무시고 가시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보면서 롯에게 아직까지 하나님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여러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성문에는 장사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 성의 유지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사람도 그 성에 나타난 낯선 두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누구 하나 그 사람들을 붙들고 "우리 집에 들어와 쉬었다 가십시오, 식사를 대접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데, 오직 유일하게 롯 한 사람만이 아브라함처럼 달려나가 엎드려 절하고 영접하며 나그네를 모셔 들어갑니다. 이 사람에게 아직까지 하나님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롯도 한때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었습니까? 롯도 아브라함과 함께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서 하란으로, 하란을 떠나서 가나안 땅으로 함께 다녔던 사람이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믿음의 길을 동행했던 사람입니다. 아브라함과 함께 다니면서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경험하고 몸으로 체험하고 느꼈던 믿음의 사람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물질을 좇아서, 돈을 쫓아서 소돔 성에 와 있습니다. 탈락했습니다. 그런데 죄가 그를 뒤덮고 있지만, 물질을 쫓아서 살아가는 그의 인생에 탐욕이 그늘지어 있지만, 그러나 그 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니 여전히 과거에 하나님의 사람이었던 흔적이 여기에서 발견됩니다.

단번에 심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천사들은 기뻤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창조하신 피조물을 그냥 심판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만약 하나님이 그냥 심판하실 것이었다면, 이렇게 천사를 보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천사를 보내서 살펴보게 할 이유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냥 하늘에서 유황불과 불비를 내리면 그만인데, 하나님께서 굳이 두 천사를 보내서 살펴보게 하시는 것은 이 성을 지금 당장 멸망시키지 않을 명분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그 성에 하나님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다면 그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 우리는 그 하나님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