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1

본문: 창세기 18:20-33

종교를 뜻하는 영어 단어 'religion'은 라틴어 어원에서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다시 읽다'라는 뜻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을 다시 읽어가는 여정입니다.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며 성경을 읽다 보면, 믿음의 위인들뿐 아니라 비겁한 사람, 악한 사람, 정의로운 사람, 바른 사람 등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 말씀이라는 거울에 나 자신을 비추어 봅니다. 그러면서 내 인생을 다시 읽어내고 재해석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늘 자신을 반성하고, 돌이키고, 다시 곱씹어 봅니다. 되새기며 다시 하나님 은혜 가운데 살려고 발버둥칩니다. 이것이 믿음의 여정입니다.

또 하나의 의미는 '연결하다'입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연결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원초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날 때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죄 있는 인간은 하나님과 연결될 수 없는 숙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완전한 하나님이시요 완전한 인간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 보혈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우리가 주님을 중보자라고 부르는 이유입니다. 그 이후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들도 연결하는 사명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과 사람, 세상과 사람,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이어주는 중재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아브라함이 바로 그러한 중재자의 역할, 연결자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 문제를 해결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다"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밝히 보여주시는 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부르짖음의 역설

"여호와께서 또 이르시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창 18:20-21)

하나님께서 소돔 땅을 살펴보시려고 내려오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부르짖음과 소돔 땅의 상황이 일치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살펴보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사실 하나님께서 내려오신 목적은 소돔을 심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부르짖음'이라는 단어입니다. 20절과 21절에 두 번이나 등장합니다. 부르짖었다는 것은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기도하고 부르짖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소리를 들으셨다는 말씀입니다. 누가 기도했습니까? 누가 부르짖었습니까? 소돔 성에 있는 사람들이 부르짖고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소돔성은 악한 도성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고, 하나님께서 완전히 쓸어버려 마땅한 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읽어보니 그 성의 사람들도 부르짖고 있었고, 기도하고 있었고, 하나님은 그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이 성을 살피기 위해 내려오셨습니다.

더 이상한 것은 부르짖는 사람이 있고 기도하는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은 이 성을 심판하려고 오셨다는 점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이 있고 부르짖는 사람이 있는데, 하나님은 왜 이 성을 심판하려 하신 것일까요?

의인을 바라보는 두 관점

이것은 우리의 의문일 뿐 아니라 아브라함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 (창 18:23)

아브라함은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려 하시나이까?"라고 하나님께 질문합니다. 아브라함이 생각할 때, 부르짖는 사람과 기도하는 사람은 의인이었습니다. 하나님,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까? 부르짖고 간구하는 사람이 많은데 하나님이 왜 이 성을 멸하려 하십니까?

아브라함은 소돔성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조카 롯과 그의 가족이 거기 살고 있었고, 가까운 성이었기 때문에 출입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 성에도 기도하고 부르짖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 성 중에 의인 오십 명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 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하지 아니하시리이까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창 18:24-25)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부당합니다"라는 말을 두 번이나 드립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하나님, 이것이 정말 하나님 말씀하시는 정의입니까?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망시키는 것이 하나님의 본뜻이고 본심이며 정의입니까? 저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논리를 따라가 보면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시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여기 본질적으로 의인을 바라보는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관점에는 큰 괴리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부르짖고 기도하는 자를 의인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봅시다. 오랫동안 참고 기다리고 인내하며 여기까지 오셨는데, 부르짖는 자는 있고 기도하는 자는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소돔성의 변화를 이끌었습니까? 그 사람들이 개혁의 의지를 가지고 소돔성 사람들을 고치려 했습니까? 함께 뜻을 모아서 '우리가 이렇게 살지 말자, 이렇게 살면 안 된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우리 제대로 살자, 죄짓지 말자'라고 이 사람들이 함께 뜻을 모았다면 이 성은 달라지지 않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