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특강 6 - 종말의 시대를 사는 성도들 (약 5장)

야고보서 5장 7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께서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아멘.

오늘은 야고보서 마지막 시간입니다. 야고보서가 5장까지 있는데, 오늘 여섯 번째 시간으로 종말에 대한 말씀을 끝으로 야고보서는 막을 내립니다. 사실 야고보서는 직면하기에 상당히 부담스러운 말씀이고, 또 우리에게 여러 가지 방향을 직설적으로 알려주는 말씀이며, 믿음의 실천을 강하게 요구하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마지막은 종말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설명하고 있는데, 크게 세 부분입니다. 첫째는 악한 자들에 대한 경고, 둘째는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개인에 대한 말씀, 셋째는 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세 가지를 통해 종말의 시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깨닫게 합니다.

1. 악한 부자들에 대한 경고

1-1. 시간의 한계를 무시하는 자

5장 말씀은 지난 시간에 공부했던 4장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오늘 교재 31쪽을 보면 '악한 부자들'이라고 나옵니다. 그런데 '악하다'라는 의미가 도대체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려면 지난 4장을 좀 이해하셔야 합니다.

지난 시간 우리가 공부할 때, 악한 사람들은 종말의 시대에서 시간의 한계를 기억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이 시간의 한계를 기억하고 깨닫고 살아가면 여러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인정하는 자가 됩니다. 나는 유한한 존재입니다. 시간의 한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시간을 창조하신 분이시니 영원하신 분 아닙니까?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인정하게 되면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고, 나의 유한함을 깨달을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우리가 그렇게 되면 성실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한정된 시간 안에 사니까, 언제 이 세상을 떠나게 될지 모르는 것이니까, 오늘 하루도 그저 성실하게 주어진 사명을 열심히 감당하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로, 시간의 한계를 기억하면 종말의식을 가지고 삽니다. 종말의식은 언제 예수님이 땅에 오실지 모르니까 겸손하게 사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아끼며, 영원히 살 것처럼 교만하게 굴지 않습니다. 이것이 시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자가 누리는 유익입니다.

그러면 이 연장선에서 5장을 들여다보면, 여기 악한 부자들은 그런 시간의 한계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그런 것 따위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자들, 즉 영원히 살 것처럼 그냥 마구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1-2. 부한 자들의 통곡

첫 번째 질문을 보면, "부한 자들은 무엇 때문에 울고 통곡해야 합니까?"라고 되어 있습니다. 1절에 보시면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상하지 않으세요? 부한 자들, 부자들이잖아요. 부자들이 왜 고생해야 되며 왜 울어야 됩니까? 부자들은 고생할 일이 없잖아요. 엄청난 부자들은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그냥 살아가는데 고생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너희에게 임할 고생 때문에 통곡하라"고 했습니다. 부자들은 항상 웃고 즐겁고 세상의 모든 것을 원하는 대로 다 가질 수 있는데, 왜 그들이 통곡해야 됩니까?

성경 말씀은 정말 진리의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9절과 20절을 보시면,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라고 나옵니다.

잘 보시면 예수님의 비유입니다. 그런데 부자는 이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냥 '한 부자'라고 설명했습니다. 거지는 이름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있습니다. 누구입니까? 나사로입니다. 부자는 이름이 없고, 거지는 이름이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예수님의 비유인데, 굉장히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냥 인간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 당시에 엄청나게 부자였던 이 부자는 당연히 사람들이 그 이름을 불렀겠습니다. 그냥 '한 부자'라고 누가 그렇게 부르겠습니까? 최 씨 어르신이라고 부르든 박 씨 어르신이라고 부르든 이름을 불러가며 존경을 표했겠습니다. 그런데 그 집 앞에서 구걸하던 거지는 이름이 있어도 사람들이 불러줬을까요, 안 불러줬을까요? 안 불러주었습니다. "야, 이놈아!" 하고 그냥 엉덩이를 발로 뻥뻥 차고 다녔지, 누가 그 거지의 이름을 공손하게 불러줬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 나라 생명책에는, 성경은 이 부자의 이름을 모른다고 했습니다. 기록이 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나사로의 이름은, 거지의 이름은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둘이 다 같이 죽었습니다. 부자는 지옥에 가고 나사로는 천국에 갔습니다. 천국에 갈 그 이름을 하나님 나라 생명책에 기록해 두셨고, 부자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울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통곡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장차 그 모든 고생 때문에 울고 통곡해야 합니다.

이 말씀이 맞습니다. 악한 부자니까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없이 영원히 살 것처럼 그냥 마구 살았는데, 어느 날 그냥 죽어버렸습니다. 갑자기 하나님이 내 영혼을 취해 버리셨습니다. 그러니 지옥 가서 통곡하고 우는 것입니다. 한 부자가 저기 저 거지 나사로를 시켜다가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만 적셔서 내 혀를 좀 적셔 달라고 그렇게 부탁할 만큼 탄식하고, 지옥에서 울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