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전후서 특강 6 - 견고한 믿음을 위하여 (벧후 1장)

"그러므로 너희가 이것을 알고 이미 있는 진리에 서 있으나 내가 항상 너희에게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벧후 1:12)

오늘은 베드로후서 말씀을 함께 공부하겠습니다. 야고보서 말씀을 다 공부했고, 베드로전서 말씀도 공부했으며, 이제 베드로후서 1장, 2장, 3장 세 번에 걸친 말씀이 남아 있습니다. 야고보서도 그렇고 베드로전후서도 그렇고, 워낙 우리 신약 성경이 바울 중심으로, 바울의 저작들로 가득 채워져 있으니 야고보서나 베드로전후서를 읽으면 신선한 느낌이 듭니다. 문체도 다르고 표현법도 다릅니다. 바울이 조금 어렵다면, 야고보나 베드로는 좀 직설적으로 강하게 표현하기 때문에 훨씬 더 이해하기도 쉽고 또 우리 마음에 조금 더 강하게 부딪혀 옵니다.

오늘 우리가 공부할 베드로후서는 베드로의 마지막 저작입니다. 베드로가 마가복음, 베드로전서, 베드로후서를 썼는데, 마가복음은 마가의 복음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베드로 복음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마가의 손을 빌어서 기록한 것이지, 사실은 베드로의 설교가 그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갈수록 베드로가 훨씬 더 성숙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 이 사람이 우리가 알고 있는 철없는 베드로, 예수님 당시에 좌충우돌하고 들이받고 화내고, 칼 들고 말고의 귀를 베고, 예수님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던 그런 베드로가 이제는 아니로구나 하는 것을 베드로후서를 통해서 더 깊이 배우게 될 것입니다.

오늘 제목이 '견고한 믿음을 위하여'입니다. 베드로가 견고한 믿음을 위해서 무엇을 주문하고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베드로의 성숙한 자기 소개

1-1. 종과 사도의 정체성

베드로는 자신을 어떻게 소개하며, 그의 편지를 받는 성도를 어떻게 칭하고 있습니까? 1절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걸 그냥 넘겨서는 안 됩니다. 자기를 소개하는 것은 자기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어떻게 소개하느냐가 중요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절에서는 베드로가 자기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이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달라졌습니까? 제일 중요한 것이 '종'이 더 추가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에서는 사도로만 자기를 소개했고, 후서에 오니 '종'이고 '사도'입니다. 그런데 앞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종'이 앞에 있습니다.

사도는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것은 사명, 사역, 일에 관련된 것입니다. 사도로서 일해야 합니다. 보냄을 받았으니 가서 전도하고 복음 전하고 영혼 구원하고 죽어가는 사람 살리고 교회 세우는, 일과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종'은 무엇과 관계가 있습니까? 보다 더 본질적인 것, 곧 관계가 있습니다. 자기 정체성입니다. 사도가 일이라면 종은 본질입니다. 보내심을 받았는데 순종하는 자세가 종의 자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제 성장하고 성숙하여 베드로후서로 가니까 자기를 종된 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더 깊이 성장할수록, 성숙할수록 자기 자신은 다른 것이 아니라 '나는 그냥 종이로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종이 있으면 또 누가 있습니까? 주인이 있게 됩니다. 내가 종이면 누가 주인입니까? 주님이 주인이시죠.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이 글을 쓰면서 아마 생각했을 것입니다. '내가 예수님 따라다니던 그 3년간은 과연 종이었는가?' 종의 자세가 아니었습니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외치고 떠들고, 예수님이 무어라 하건 말건 자기는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때로는 책망도 하시고 나무라기도 하셨지만 3년 동안 주님은 참아주신 것입니다. 참아주시고 훈련시키시고, 그리고 나서 예수님 승천하시고 나서 성령 받고, 그 후에도 베드로전서를 쓸 때까지도 종의 정체성을 완벽하게 가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제 인생 말년으로 올수록 '아, 내가 종이었구나' 하고 깨달은 것입니다.

1-2. 종됨의 의미

우리가 신앙의 성장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과연 내가 성장한다는 것, 여물어지고 성숙해지고 인생이 점점 더 깊어진다는 의미는 자기의 종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종은 순종하는 자입니다. 종은 말없이 주인의 말에 순종하는 자입니다. 그것이 종입니다. 다른 것이 종이 아니고 그냥 순종하고 그대로 따라가는 것, 그것이 종입니다.

이 분의 성숙을 아주 기본적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자기를 소개하는 것이 종으로서 나를 소개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한 은혜를 줍니다.

옛날에 이랬습니다. 마가복음 9장 33절에서 34절을 보시면 제자들이 한 일들입니다. "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예수님의 질문입니다. 예수님이 다 알고 묻는 것입니다. 34절을 보면 "그들이 잠잠하니" 말을 못합니다. 왜 말을 못 하느냐?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자기들끼리 막 싸운 것입니다. 길에서 말입니다. 이것이 이 사람들, 제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누가 크냐, 그냥 우리 열둘 중에 누가 대장이냐' 하고 싸웠습니다.

심지어 야고보와 요한이 형제인데, 야고보와 요한은 자기 어머니를 예수님이 가는 길에다가 딱 대기시켜 놓고, "어머니, 우리가 이날 이때 이 시쯤에 이쪽으로 지나갑니다. 대기하고 있다가 예수님한테 청탁 좀 해 보십시오" 하였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예수님 딱 붙들고 청탁합니다. "주의 영광의 때에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해줄 수 있는데, 너희가 과연 내가 마시는 잔을 알고 있느냐? 지금 이 말의 뜻을 알고 말하는 거냐?" 하시니 당당하게 대답합니다. "마실 수 있다"고. 아무것도 모르고, 이 십자가 가는 길도 모르고 그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일러주고 가르쳐 주셨는데, 이 제자들이 서로 누가 크냐 하고 다투고 있었습니다. 자존심 싸움하고, 그 열둘 중에 예수님이 반드시 왕이 될 텐데 그때 내가 1등, 너는 2등 하는 식으로 자기들끼리 싸웠습니다. 돌아보면 이 분이, 지금 베드로가 이 마지막 서신을 쓰면서 자기들이 한 짓거리들을 돌아보면 얼마나 부끄럽고 우습겠습니까? '그래, 그런 적도 있었지' 할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것도 아닌데 교회 안에서 막 자존심 싸움하고 기분 나빠하고, 그 말 한마디 가지고 교회 안 나온다 그러고, 누가 크냐 다투고, 직분 때문에 다투고, 목사님이 누구한테 먼저 전화했냐 그것 때문에 삐지고. 그냥 생각나서 그냥 전화한 것인데, "내가 먼저 전화 못 받았다. 너는 몇 시에 전화 받았냐? 나는 몇 분에 전화 받았다" 그것 가지고 다툽니다. 그냥 다 우리도 다 똑같이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또 지나고, 나중에 하나님 나라 갈 때 되니까 '아, 종이었구나' 하고 내 정체성을 깨닫습니다. 그런데 너무 시간이 많이 가 버린 것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이 나에게 일을 안 주십니다. 순종하고 싶은데, 이제는 종인 거 알겠는데, 이제 순종 좀 해서 이제 좀 시켜 주기만 하면 열심히 하고 싶은데 일을 안 주십니다. 이제 어떻게 합니까? 이제 아무도 안 시켜줍니다. 일은 안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