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중서신 (6) 영적 전투 (엡 6장)

에베소서가 오늘로써 끝이 납니다. 에베소서의 핵심 주제가 교회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교회가 어떤 곳인가, 우리는 어떤 교회에서 어떤 마음으로 어떻게 믿음 생활을 해야 하는가. 1장부터 쭉 상승해 오다가 4장에 가서 교회의 절정을 맞이합니다. 거기서 교회의 일치를 이야기했고, 4장은 교회 성장을 다루었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말하는 교회의 성장은 숫자가 늘어나고 건물이 커지는 성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게 되는 것,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하고 닮아가는 것, 이것이 바로 교회의 성장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그 교회를 이루는 각각의 장성한 믿음의 백성들을 5장에서는 빛의 자녀들이라고 불렀습니다. 5장 말미부터 6장 절반 정도까지는 그런 빛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가정이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 또 그런 빛의 자녀들이 살아가는 일터는 어떤 곳이어야 하는가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제일 마지막은 이제 우리가 힘을 합쳐서 해나가야 할 영적 전투의 본질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흐름을 알면 에베소서가 머릿속에 쭉 그려집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 가지가 중요합니다. 교회, 가정, 일터입니다. 교회는 이제까지 계속해서 우리가 공부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가정과 일터가 교회와 분리됩니까? 분리된다고 생각하면 이건 심각한 문제입니다. 사람들이 이중적인 생활을 하게 됩니다. 교회에서는 꽤 괜찮은 성도였는데 가정에서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충만한 빛의 자녀는 가정에서도 이렇게 살아야 하고, 일터에서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즉 교회와 가정과 일터는 하나의 일직선상에 있는 것입니다.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교회 공동체입니다. 교회, 가정, 일터 중에서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가 가정과 일터에서 열매를 만들고 열매를 빚어 가는 가장 중요한 플랫폼이 됩니다.

1. 그리스도인의 가정

이제 그런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난 빛의 자녀들이 이룬 가정은 어떤 것인지 살펴봅시다.

1-1. 부부 관계

먼저 부부 관계부터 설명합니다. 5장 28절을 보시면 바울은 그리스도인 가정의 아내들에게 어떻게 합니까? 먼저 아내들에게 부탁하고, 그다음 남편들에게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여기 아내들과 남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빛의 자녀들인 남편들, 빛의 자녀들인 아내들입니다. 교회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서 성장하고, 그 성장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믿음 있는 가정의 부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먼저 아내들에게 말합니다. 22절,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 말만 들으면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아니 복종하라고 하니까 딱 보기 싫은 것입니다. 제가 한번은 주례를 서면서 이 본문을 넣어 가지고 미리 신랑 신부에게 설명했습니다. 충분히 설명을 했는데 그 당시 그 신부의 신앙으로는 이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라서 본문을 바꿔 주었습니다. 그 정도로 복종이라는 말은 자존심 상하고 기분 나쁘고 불쾌한 것입니다.

그런데 항상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관계, 부부 관계, 부모 자식 간의 관계, 성도들 간의 관계를 성경은 일방적인 관계로 말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다 상호적입니다. 그러면 남편들에게는 부인에게 어떻게 하라고 했겠느냐, 이제 이것을 볼 수 있어야 됩니다. 상호적인 것입니다. 어느 한쪽이 일방적으로 그냥 굴종하고 복종하는 이런 관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일단 복종하라는 말을 받고 기분 나쁘지만, 불쾌하지만 우선 받고 그다음을 보셔야 합니다.

25절, 이제 남편들한테 말합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무슨 말입니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고 교회를 위해서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는 말은 다른 말로 하면 죽으라는 이야기입니다. 아내를 위해서 남편들 너희 남편들아, 아내를 위해서 죽어 버려라. 자, 나를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남편이 있다면, 나를 위해서 목숨을 거는 남편이 있다면 복종 못 하겠습니까? 그런 남편이라면 얼마든지 복종할 수 있습니다. 나를 위해서 다 내어 주고, 나를 위해서 목숨까지 건네주고 목숨까지 바쳐 준다고 하는데, 그거 뭐 복종 못 하겠습니까? 복종하면 되죠.

그런데 아내를 위해서 추운데 겉옷 하나 못 벗어 주는 남편이라면, 그런 남편에게 복종할 수 있습니까? 그게 안 되는 것입니다. 이게 상호적인 것입니다. 부부 관계는 서로 일방적인 관계가 존재하지 않고 항상 상호적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면, 성장한 부부, 교회 공동체 안에서 성숙하고 성장한 부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른 부부는 부인은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내어 줄 정도로 사랑해야 됩니다. "아 나 피곤해서 안 돼, 나 힘들어서 안 돼, 나 이거 못해서 안 돼, 난 추워서 안 돼, 난 더워서 안 돼" 이제 이런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을 성실하게 잘 감당한 사람은 아내에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서 자기를 내어 주심같이 사랑해야 됩니다. 이게 다 상호적인 것입니다.

부부 관계는 절대적으로 일방적인 관계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을 지금 바울이 부부 관계에서 정리하고 있습니다. 33절을 보시면 그 상호적인 것을 이렇게 또 정리했습니다.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신같이 하고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라." 일방적으로 남편에게만, 일방적으로 아내에게만 말하고 있는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항상 상호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생활이 바로 된 가정, 두 사람이 다 하나님 앞에서 진짜 바르게 신앙생활하고 두 사람이 믿음 생활을 잘해서 성장한 남편과 성장한 아내가 이루는 가정은 천국 같은 가정 아니겠습니까? 부인은 남편에게 복종하고, 남편은 아내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내어 줄 만큼 사랑하고, 그래서 가정의 모든 문제는 신앙생활에서 해결되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에서 해결됩니다. 그냥 종교 생활 말고요. 그냥 가방만 들고 교회 왔다 갔다 하는 것 말고, 교회에서 직분 받고 그것으로 끝내는 것 말고, 성장해야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성장하는 것 말고 내가 하나님 안에서 성장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인격이 되면, 그러면 그 가정은 들여다보지 않아도 평안한 것입니다.

서로가 그런데 가정에 문제가 있다면, 가정에 여러 가지 불화가 있고 삐걱거리고 문제가 있다면, 그러면 거꾸로 들어와 보면 신앙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믿음 생활이 뭔가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하지 못하고 자라지 못하고, 신앙생활이 병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다른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참 잘하는데 가정생활이 엉망이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서로 연동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1-2. 자녀와 부모

이제 6장 1절을 보시면 자녀와 부모 사이의 관계를 말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주 안에서라고 말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이런 식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즉 너희 부모가 예수님을 믿으면, 너도 예수님을 믿으면 그 안에서는 부모님께 순종하라. 그러나 예수 믿지 않은 부모가 하는 말은 순종할 필요가 없다. 우린 이렇게 받아들이면 곤란합니다.

여기 '주 안에서'라는 말은 주님의 법 안에서, 말씀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즉 이 말의 반대말은 세상의 법 안에서, 상황 안에서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자기 상황에 맞춰서 부모 섬기려고 합니다. 돈이 좀 있으면, 내가 형편이 되면, 상황이 되면 그렇게 되면 내가 부모님께 효도하겠습니다, 순종하겠습니다라고 하는데, 그런 것과 상관없이 나는 그냥 자식이기 때문에, 내가 자녀고 내 부모이기 때문에 내가 자식의 도리를 하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입니다.

주 안에 있다는 말은 나오미와 룻의 관계를 보십시오. 나오미와 룻의 관계를 보면, 상황을 보면 룻도 자기 동서를 따라서 떠나야 됩니다. 그냥 떠나는 것이 맞습니다. 상황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런데 룻은 주 안에서, 하나님 안에서, 말씀 안에서 시어머니가 혼자 자기 고향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서 거기서 어떻게 먹고 살까 하고 따라간 것입니다. 주 안에 있었기 때문에 주 안에서 순종한 것입니다. 그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