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특강 6 - 구원의 날 (고후 6:1-7:1)

1.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무엇을 권면합니까? 1절 말씀을 보시면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일한다고 했는데, 여기서 일하는 자가 사명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에 의하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가지고 일하는 것입니다. 그냥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 직분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과 인간 사이를 화목하게 하고, 또 하나님과 믿지 않는 사람 사이를 화목하게 하는 직분입니다. 바로 그 직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여기서 '권한다'는 말은 가볍게 한번 해보라는 말이 아닙니다. 원어로 파라칼레오(παρακαλέω)라고 해서 '촉구하다', '간청하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가졌기 때문에 당신들은 반드시 이 일을 해주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이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신 은혜를 의미합니다.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는데 이 은혜를 헛되이 받는다는 말은 은혜만 받고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은혜받는 것을 좋아합니다. 은혜받고 말씀대로 살고, 또 은혜받고 실천하며 살아야 하는데, 말씀 듣고 귀만 즐거워하고 마음만 행복해하고, 그다음 화목하게 하는 직분자로서 살지 않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것이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내가 구원받은 사람이면 구원받은 사람답게 살아가야 하는데, 이 은혜를 헛되이 받는 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지금도 그렇고 과거 2천 년 전 고린도교회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는 말씀은 은혜받고 화목하게 하는 직분자로서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1-1. 지금이 구원의 날이다

2절을 보시면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지금'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이고 지금이 구원의 날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은혜를 전하고 베풀고 구원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동역자로 제발 좀 살아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릴 때 화목제에는 세 가지 기능이 있다고 했습니다. 구약의 레위기 율법에 보면 첫째는 감사제, 두 번째 자원제, 세 번째 서원제입니다. 감사제는 그날 다 먹어야 합니다. 서원제와 자원제는 둘째 날까지는 가능한데 셋째 날까지 남겨두면 그 제사가 무효가 됩니다. 소를 잡았는데 그 소를 한 가족이 다 못 먹으니까 나누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화목제의 핵심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화목 제물이 되셨는데, 그 예수 그리스도의 화목 제물 되심을 나만 먹고 나만 받고 은혜받고 끝내지 말고, 긴급하고 시급하게 나누어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나누어야 합니다. 왜 긴급합니까? 왜 지금이 은혜받을 만한 때입니까? 왜 지금이 구원의 날입니까? 예수님께서 언제 재림하실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초림, 그리고 우리는 지금 재림하시는 그 사이를 교회 시대라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언제 재림하실지 알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복음 전하는 일이 긴급하고 아주 시급합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는 말을 두 번이나 강조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느긋합니다. 오늘 못 하면 내일 하면 되고, 내일 못 하면 내년에 하면 됩니다. 상대가 듣든지 안 듣든지, 되든지 안 되든지 지속적으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은 꼭 내 입으로 복음을 전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 삶으로 자주 불신자들을 만나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만나서 나를 통해서 그리스도가 보이도록 그런 삶을 자꾸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귀찮으니까, 나도 내 일이 바쁘니까, 오늘 못 하면 그다음으로, 그다음으로 계속 미룹니다. 그러나 이 직분은 언제 예수님이 재림하실지 모르는 상태라서 지금 해야 합니다.

1-2. 구원의 긴급성

우리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9장에 보면 여리고성으로 지나가시다가 삭개오를 만나십니다. 삭개오가 얼마나 간절했으면 뽕나무에 올라갔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보고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셨습니다. 그 집에 들어가셔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말씀하셨습니다. '오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긴급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삭개오에 대해 알고 계셨습니다. 세리로서의 과거를 말입니다. "네가 지금은 회심을 이야기하지만 지켜봐야 하겠다. 내가 지금 십자가 지러 가는 길이라서 좀 바쁜데, 가서 십자가 지고 3일 만에 부활하고, 40일 동안 이 땅에 있을 텐데, 40일 후에 승천하기 전에 한 38일째쯤 와서 너의 소문을 동네 사람들에게 들어보고 그때 구원을 주마."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구원은 긴급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왜 저런 사람에게 구원을 저렇게 성급하게 주시나, 선포하시나 말할 수 있으나, 그만큼 예수님의 마음은 급하십니다. 구원에 대해서 말입니다.

빌립 집사님이 에티오피아 내시를 만납니다. "읽는 것을 깨닫느냐?" "모르겠습니다." 이사야의 글에서부터 시작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것을 가르치고, 내시가 동의하자 두 사람이 바로 물로 들어가서 세례를 베풀어줍니다. 즉시입니다.

구원에 대해서는, 특히 믿지 않는 불신자들에게 내가 도구 되어서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수행하는 일은 미루시면 안 됩니다. 기회가 있을 때, 나에게 하나님이 기회를 주실 때, 그 기회는 즉시 붙잡고 화목하게 하는 직분으로서의 사명을 살아야 은혜를 헛되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잘 기억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도입부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봅시다. 요한복음 9장 4절을 보면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낮'이라고 하셨습니다. 해가 떠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다음에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종말이 오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고 심판이 이루어지면 다 끝나버리는데, 그때가 되면 하고 싶어도 못 한다는 말입니다.

종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역사의 종말이 있고, 또 하나는 개인의 종말이 있습니다. 역사의 종말은 예수님께서 천사장의 호령 소리와 공중의 나팔 소리로 구름 타고 임하시는 그 종말입니다. 개인의 종말은 내가 세상을 떠나 하나님 앞에 가는 그날입니다. 어떤 종말이든지 밤이 이르면 아무것도 못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