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후서 특강 6 - 박해와 환난 중에서 (살후 1장)

"그러므로 너희가 견디고 있는 모든 박해와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하노라"(살후 1:4).

오늘은 데살로니가후서 말씀입니다. 데살로니가전후서 특강을 진행하면서 지난 시간까지 전서 5장까지의 말씀을 함께 나누었고, 오늘은 후서로 들어가는 첫 번째 시간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2차 선교여행 때 가서 개척하고 복음을 전했던 곳입니다. 바울의 원래 2차 선교여행 목적지는 유럽이 아니라 아시아였고, 그중에서도 에베소였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방향을 바꾸셔서 그 순종 가운데 마게도냐 지역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첫 번째로 만나는 성이 빌립보였습니다. 두 번째가 데살로니가였고, 데살로니가를 거쳐서 베뢰아로 갑니다. 베뢰아를 지나 배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면 아가야 지방을 만나는데, 그곳에서 아테네에 갑니다. 아테네에서 잠깐 머무르다가 다시 고린도로 가지요. 고린도에서 비교적 오래 머뭅니다.

바울은 보통 몇 개월씩 있다가 떠나는데, 고린도에서는 1년 6개월가량을 머물렀습니다. 그곳에 있으면서 데살로니가 교회의 소식을 듣고 쓴 편지가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입니다. 전서를 쓰고 나서 곧이어 후서를 씁니다. 불과 이 기간이 얼마 되지 않습니다. 데살로니가전후서는 고린도에 머무는 1년 6개월 안에 쓴 편지이기 때문에 전서와 후서의 연관성이 상당히 있습니다. 고린도전서와 후서는 그 기간의 편차가 좀 크기 때문에 고린도전서의 내용과 후서의 내용은 조금 다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전후서는 시차가 별로 없어서 내용이 굉장히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읽다 보면 '이거 전서에서 읽었던 건데' 하는 느낌도 있고, '비슷한 내용을 이야기하시네' 하는 느낌이 있는데, 이렇게 보시면 됩니다. 심화 학습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원래 중요한 내용이 전서 5장에 있었는데, 그걸 조금 더 추려서 더 핵심적이고 더 중요한 내용들을 한 번 더 집약해서 말씀하는 것이 데살로니가후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을 보면 고난에 대처하는 자세, 박해와 환난을 잘 견디고 이긴 교회에 대한 칭찬이 나오고, 2장과 3장은 종말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전서에서도 사실 그런 내용들이 이어졌지 않습니까? 이제 구체적으로 한번 보겠습니다.

1. 교회의 참된 위치

1-1. 하나님 안에 있는 교회

본문을 보시면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이라고 똑같이 나옵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서도 똑같이 나와요. 지금 이 편지를 쓰고 있는 사람이 세 분입니다. 바울, 실루아노, 디모데. 이분들이 2차 선교여행의 핵심 멤버들이었습니다. 이 세 분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개척했기 때문에 같이 고생하고 같이 개척했고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세 분의 이름으로 편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 분의 이름만 들어도 데살로니가 교회는 가슴이 벅차오르고 그립고 생각이 많이 납니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건 많이 본 것 같죠? 데살로니가전서 1장 1절을 한번 보시겠습니다. 거기는 어떻게 되어 있는지. 제가 읽겠습니다. 이건 전서입니다. 1장 1절,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똑같이 세 분이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다른 거 찾아보세요. 똑같죠? 다른 건 이 한 절에 있던 걸 두 절로 분리해 놓은 것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데살로니가전서 1장을 공부할 때 아주 중요하게 다뤘던 내용이 교회의 위치였습니다. 지리적 위치가 아니었습니다. 교회의 지리적 위치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식당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길목에 자리 잡고 있느냐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교회 위치를 따지고 있지요. 교회는 그런 공간과 지리적 위치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진짜 교회의 위치가 중요한 건 바로 이것입니다. 교회가 어디에 있다고 했습니까? 전서에도 나오고 후서에도 나오는데,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고 했습니다. 어디요? 하나님 안에, 예수님 안에.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그 교회는 누구의 교회입니까?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이중성인데, 여기에서 갈등이 생깁니다. 교회의 영적 위치는 하나님, 예수님 안에 있는 것이 맞습니다. 거기에 있어야 됩니다. 그런데 이 교회가 위치됨을 확정하고 그것을 경영하고 운영하고 자리매김하게 해주는 사람들은 누굽니까? 그 교회 구성원이라는 뜻입니다. 그 교회 목회자요, 그 교회 중직들이요, 그 교회 성도들입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야, 교회는 하나님 안에 있어야 돼. 교회는 예수님 안에 있어야 돼. 교회가 하나님과 예수님 밖을 떠나면 되냐? 안 되지!"라고 말씀해도, 그 교회 성도들이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데살로니가인들이 그것을 순종하지 않으면, 그 교회 성도들이 자꾸 하나님 밖으로 나가고 자꾸 예수 그리스도 말씀 밖으로 나가버리면,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지금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알고 있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래서 데살로니가인들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를 만들어 가야 할 책무가 있는 자들입니다. 그것을 바울이 전서에서도 말했고 후서에서도 말했습니다.

1-2. 금송아지 우상의 경계

제가 밑에 적어둔 예시가 나오는데요. 역대하 13장 6절에서 11절을 적어뒀는데, 이 내용이 이렇습니다. 여로보암왕 이야기입니다. 여로보암 아시죠? 여로보암 모르시면 성경공부 한 번 더 봐야 되는데, 솔로몬의 아들이 르호보암입니다. 르호보암 때 나라가 나뉘어집니다. 남쪽은 르호보암이 그대로 가지고 있고 북왕국이 나뉘어지는데, 북왕국을 가져갔던 사람이 여로보암입니다. 여로보암은 큰 죄를 짓습니다. 세 가지 죄를 짓는데, 그 첫 번째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두고 이 금송아지가 하나님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두 번째 죄가 절기를 제멋대로 바꿨습니다. 세 번째 죄는 일반인들을 제사장으로 삼아서 제사를 드리게 해버렸습니다.

그 세 가지 큰 죄를 지었습니다. 지금 그 이야기가 여기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교회됨과 성전의 성전됨을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을 경영하는 사람이, 이것을 그렇게 되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 여로보암의 책무인데, 이 왕이 그것을 어겼다는 뜻입니다. 보십시오. 8절에 보니까 이렇게 나와요. "이제 너희가 또 다윗 자손의 손으로 다스리는 여호와의 나라를 대적하려 하는도다. 너희는 큰 무리요, 또 여로보암이 너희를 위하여 신으로 만든 금송아지들이 너희와 함께 있도다."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만든 신이 너희와 함께 있다고 했습니다. 여로보암이 한 짓이에요. 이것을 지금 고발하는 것입니다. 금송아지 이야기가 나와서 말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교회에서 요즘은 이런 일이 없을까요? 우상을 만드는 일이 요즘은 없을까요? 여기 우상 있습니까, 없습니까? 교회에 금송아지 있습니까? 우리 교회 없죠. 눈으로 보이는 건 없습니다. 금송아지가 없어요. 그런데 사실 요즘도 금송아지 우상을 만드는 일이 꽤 많습니다. 이를테면, 교회가 건축을 하고 건물을 짓고 헌물을 받는 일들이 있습니다. 강대상을 헌물로 받든 피아노를 받든 등등의 헌물을 교인들에게 각 가정에서 한번 작정해 보십시오. 교회 예배당은 이렇게 멋지게 지었는데 거기에 저마다 채워놓을 것들을 한번 생각해서 가정의 형편대로 해보십시오. 하고 이렇게 헌물을 받습니다.

그런데 받았다 합시다. 받았어요. 강대상을 받았는데, 강대상 이름에다가 '아무개 집사 증정'하고 이것을 씁니다. 저기 피아노에다가 '아무개 권사님 증정'하고 씁니다. 그것이 금송아지예요. 그러면 그렇게 내가 하나님께 드리고 여기다가 내 이름 석 자를 새겨놨습니다. 뿌듯하겠죠. 교회 오면 뭐만 보입니까? 예배당에 오면 그것만 보이는 거예요. 그것만, 그것만. 그것이 금송아지예요.

교회에서 중직들을 세웁니다. 중직들이 우리 교회 이번에 42명이 세워졌는데, 이제 이분들에게 돈을 조금씩 걷어가지고, 예를 들어 교회에서 버스 하나를 샀다 합시다. 우리는 절대 그런 거 안 합니다. 일절 그런 거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제가 봤어요, 그런 교회를. 그 버스 어디엔가 그 이름들을 빼곡하게 새겨가지고 거기다가 붙여놓습니다. 동판에다가 새겨가지고 나중에 저 피아노를 처분해야 될 때가 됩니다. 팔 수 있을까요? 처분할 수 있습니까? 저 피아노가 더 이상 용도가 폐기돼 가지고 어디 갖다 버리고 싶은데, 다른 걸로 바꿔야 하는데, 허락받아야 됩니다. 그분 아들딸들한테 가서. 그것이 무슨 교회입니까?

교회는 자기 이름을 지우는 것이 교회지, 자기 이름 새기고 자기 이름 석 자를 남겨가지고 후손 대대로 금송아지 만들게 하는 것, 그것이 교회가 아니잖아요.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교회가 있는 거지, 그것을 경영하고 그것을 그렇게 되게 만드는 것이 사람이거든요. 그것이 교회 성도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현재 금송아지들을 만들고 있는 일이 굉장히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