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ide> 🔑
여름은 이미 한가운데로 들어섰습니다. 이례적인 짧은 장마와 이례적인 폭염 뒤에 괴물폭우라고 불린 집중호우가 온 나라를 휩쓸었습니다. 기후위기의 시대를 사는 건 이렇게 극단적인 날씨가 일상이 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인가 봅니다. 스물세 살의 베트남 이주노동자가 폭염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집중호우는 충청, 전남, 광주, 경남 산청과 함양 등지에서 농민과 시장상인, 노인들의 생명과 삶의 터전을 할퀴고 갔습니다. 기후위기가 차별받는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에게 가혹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습니다. 노동건강연대는 해마다 여름이면 ‘폭염’을 주제로 월례토론회를 열어 왔습니다. 2022년 6월에는 ‘폭염과 노동자 건강’, 2023년 7월에는 ‘건설노동자 안전하게 일하고 있나’, 2024년 6월에는 ‘기후재난 앞에 선 농민, 농업노동의 현재’를 주제로 열었고, 올해 2025년은 도시 빈민과 폭염의 관계를 주제로 ‘기후 약자들의 여름나기’를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반빈곤 활동가이면서 주거권 문제 전문가인 이원호 빈곤사회연대 집행위원장이 발제를 해 주었습니다.
</aside>
기후위기와 빈곤은 어떤 관계를 갖는가?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건설되었다는 부자들을 위한 계획도시 노르델타 이야기로 강의를 시작했다. 노르델타는 습지 위에 인공적으로 건설된 폐쇄형 계획도시인데 도시를 건설하면서 선주민들이 사는 마을과의 사이에 3미터 높이의 장벽을 쌓았다고 한다. 습지에서 살아가던 동물 카피바라가 서식지를 잃어 노르델타 지역에 대량 출몰하는 문제가 부자들의 골칫거리가 되었고, 카피바라는 기후문제와 계급의 관계를 풍자하는 상징이 되기도 했다. 비가 오면 가난한 선주민들이 사는 마을이 침수되기도 하는 노르델타의 모습은 기후 재난의 위험이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따라 아래로 흐른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990년부터 2015년까지의 세계 탄소배출량을 분석한 옥스팜의 자료에 의하면 소득구간에 따라 탄소배출량은 극적인 변화를 보인다. 상위 10% 부유층이 누적 탄소배출량의 52%를 차지하면서 세계 탄소 대응 예산의 3분의 1을 사용하며, 최상위 1% 부유층으로 좁혀서 보면 누적 탄소 배출량의 15% 이상을 차지하면서 탄소 예산의 9%를 사용한다. 부유한 계급의 무절제한 소비로 일어나는 기후위기에 대응하는데 공적 기금의 상당부분이 들어가고 있다.
2019년 유엔 인권위원회는 기후변화가 사회, 경제, 정치적 측면에서의 불평등한 시스템을 더욱 공고히 한다는 의미로 과거 남아프카공화국의 인종분리정책에서 이름을 딴 ‘기후 아파르트헤이트 (climateapartheid)’라는 개념을 소개하기도 했다, 애슐리 도슨(Ashley Dawson)은 세계 주요 대도시의 불균등한 발전과 재난의 조건을 탐구한 『극단의 도시들』에서 ‘기후 아파르트헤이트는 (탄소 배출을 많이 하는) 세계의 엘리트들이 다양한 형태의 구명정으로 후퇴하는 반면, 세계의 빈곤층은 가라앉거나 헤엄치도록 방치되고 있는’ 현상이라고 설명한다. 이처럼 전 지구적 측면에서 기후불평등을 가리키는 개념과 함께 한 나라 안에서도 상위계층과 빈곤층이 폭염과 같은 기후 재난을 매우 불평등하게 경험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기후 격차(climate gap)’ 개념도 널리 알려지고 있다.
서울시가 지난 5월 발표한 ‘2025년 기후재난 약자보호 대책’도 기후격차에 대한 대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서울시는 폭염에 대비해 어르신, 노숙인·쪽방 주민, 중증장애인, 저소득층 등 사회적 약자를 지원하는 방안을 내놓았는데, 폭염이 오면 편의점·은행·통신사대리점 등과 기후동행쉼터 협력사업을 통해 ‘서울시 특화 무더위쉼터’ 481개소를 운영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무더위쉼터가 어디에 있는지는 ‘서울안전누리’ 홈페이지에만 공개하고 있어서 한글을 모르거나 인터넷 사용이 어려운 저소득층, 노인들의 정보 접근 권리를 보장하지 않고 있다. 쪽방 밀집지역에 공용에어컨과 냉방비를 지원하고 쪽방상담소를 무더위 쉼터로, 폭염 안전숙소도 94개 운영를 운영한다고도 했는데, 2024년 안전숙소는 이용실적이 0건인 자치구가 있을 정도로 이용률이 저조했다.
2022년 7월, 서울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 폭우가 범람해 발달장애인 등 3명의 시민이 사망한 사건 이후 집중호우에 취약한 반지하주택 문제도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그러나 올해에도 반지하 침수경보 신기술을 시범도입 한다거나 침수방지를 위한 물막이판을 무료 설치해 준다는 대증적인 대책만 발표되었다. 그러나 이마저도 물막이판을 설치하면 집값이 떨어질 수 있다는 주택 소유주들의 우려 때문에 호응이 낮다고 한다. 집값 걱정에 세입자의 위험이 방치되는 현실은 상징적이다. 반지하 가구 거주율을 낮추기 위해 주거 상향 정책을 서울시가 냈지만 재개발 가점 부여 등 주택 소유주 지원 정책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지난해 3월 30일 충남 태안에서 '정의로운전환을 위한 행진'에 참여한 노동건강연대 활동가. 출처 녹색연합.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지구를 망가뜨린 건 차 몰고 에어컨 빵빵 튼 사람들인데 왜 선풍기 놓을 데도 없는 쪽방 주민들이 피해를 당해야 하나?“ 한탄한 쪽방촌 주민의 말을 소개했다. 혹한에는 건물 내부에 물이 차서 계단이 얼고 여름에는 지붕 표면 온도가 섭씨 65도에 달해 아파트 표면 온도의 2배에 이르는 폭염을 견뎌야 하는 일에 쪽방촌 주민의 ‘기여’는 거의 없었다. 쪽방촌 주민의 말은 그 본질을 정확히 보여준다.
2018년 11월 서울 청계천 가에서 7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11명이 다친 ‘국일고시원 화재참사’ 사건이 있었다. 국일고시원은 주로 일용직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시설관리는 허술하고, 스프링클러가 없는 노후건물이었다.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국일고시원 인근에만 30여개에 이르는 고시원들이 있다고 했다. 1970년대 서울 청계천 가를 기록한 사진을 보면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이 그 시대 빈곤의 풍경을 보여준다. 21세기 고시원은 집 없는 사람들의 존재를 지웠다. 고시원에 사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다가 화재로 희생되고 나서야 존재를 알렸다. 이를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비가시적 주거 빈곤이 증가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지하에서 거주하는 가구는 2005년 59만여 가구에서 2020년 33만여 가구로 줄었고 옥상에서 거주하는 가구는 2005년 5만1천여 가구에서 2020년 6만5천여 가구로 늘었다. 그런데 주택 이외의 거처로 분류되는 곳에서 거주하는 가구는 2005년 5만7천여가구에서 2020년 46만여 가구로 큰 폭으로 증가했다. 독립된 출입구, 방, 부엌 등을 갖추지 못한 건물에 살거나 고시원, 판잣집, 비닐하우스 등에서 거주하는 주거 불안정 계층이 늘어난 것이다.
유엔 주거권 특별보고관은 2022년 ‘정의로운 전환을 향하여: 기후위기와 주거에 대한 권리’ 보고서를 유엔 인권이사회에 제출하면서 기후위기가 전 세계적으로 주거권을 위협하고 특히 홈리스 등 취약계층이 가장 큰 영향을 받는다고 우려를 표했다. 지리, 빈곤, 연령, 성별, 장애, 체류자격, 인종과 같은 요인과 기후위기가 주거권에 영향을 미쳐서 홍수, 태풍, 지진 등 기후위기로 인한 재난에 특히 취약하다는 것이다. 아동,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 소수인종, 이주민과 같은 취약계층이 다른 인구집단에 비해 홈리스이거나 비적정 거처에 거주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기 때문에 기후위기로 인한 영향에도 취약하다. 우리나라의 농촌 이주노동자들 역시 비닐하우스, 컨테이너, 노후주택 등에서 집중호우와 폭염으로 고통스런 여름을 보내고 있다.
이원호 집행위원장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주거정책으로 2022년 IPCC(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보고서가 제안한 건강하고, 적정하며, 저렴하고, 지속가능한 주거의 원칙을 소개하면서, 프랑스 파리나 독일 베를린의 공공임대주택 사업을 예로 들었다. 기후정의와 주거정의가 결합한 ‘탄소중립 사회주택’이라는 개념이 주거권 운동에서 중요한 키워드라는 점도 알 수 있었다.
건설노동자, 배달노동자, 택배노동자, 물류센터노동자 등 폭염 아래 일하는 노동자의 건강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홈리스와 도시 빈민, 농촌 이주노동자들처럼 주거가 불안정한 이들도 극한의 더위를 안고 여름을 나야 한다. 거리에서 싸우는 노동자들이 있고, 공장 옥상과 고공 구조물에 올라가 농성하는 장기농성 노동자들이 있다. 기후 약자들의 여름나기는 2022년 신림동 폭우 참사에 대해 ‘불평등이 재난이다’라고 외쳤던 도시 빈민들의 외침 만큼 험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