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설계자가 있고 창조주가 있습니다. 건축물에도 설계하신 분이 있습니다. 설계자는 자신의 철학과 목적과 의도를 충분히 건축물에 담고자 합니다. 건축가는 설계자의 도면을 받아서 현실 공간에서 그 뜻대로 건축물을 만들어 갑니다.
우리나라 전통 가옥을 보면 '사이 공간'이라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간은 이를테면 툇마루 같은 곳인데, 집안에 있는 사람이 신을 신고 나가지 않아도 툇마루에 걸터앉아서 자신을 찾아온 손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툇마루에 걸터앉아서 바깥 경치와 풍경을 볼 수 있고 바깥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습니다. 반대로 그 집을 방문한 손님 입장에서도 신을 벗지 않아도 툇마루에 걸터앉아서 주인장과 담소도 나누고 차도 한 잔 나눌 수 있는 곳입니다. 그 사이 공간이 바로 툇마루입니다. 집안에 있는 사람과 집 밖에 있는 사람이 서로 겹쳐지는 그 사이 공간, 이것이 우리나라 전통 가옥의 아주 독특한 특징입니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아파트 생활을 주로 하고 있는데, 굳이 아파트에서 사이 공간을 들자면 발코니를 들 수 있습니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발코니에 나가면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고 바깥 경치를 마음껏 느끼고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발코니 확장이 이제는 보편화되어서 발코니가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옛날 전통 가옥을 설계한 사람의 설계 의도와 목적이 다 사라지고 무색해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할 때면 주방장이 만들어낸 음식에도 저마다의 이유가 있습니다. 자주 가지는 않지만 인도 음식점에 가면 작은 종지에 레몬을 띄워서 내오는 그릇이 있습니다. 무더운 여름날 그 물을 들이키면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손을 씻으라고 내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도 음식의 특성상 손을 사용해야 되기 때문에 손을 씻고 소독하라고 주는 물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존재하는 이유가 있고 창조주의 설계 의도가 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1장을 읽으면서, 그리고 오늘 2장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온 천지만물을 만드실 때 하나님의 뜻과 목적과 의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신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이곳에 두신 것을 보면 하나님의 귀한 목적과 의도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발견하고 깨닫는 은혜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8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그곳에 사람을 두셨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에덴은 어떤 곳입니까? 가장 완벽한 곳, 가장 아름다운 곳, 지상 낙원, 파라다이스 아닙니까?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아름다운 에덴을 창설하시고 사람을 두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 그만큼 사람을 아끼고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과 아들 그리스도의 순종과 성령님의 거룩함의 형상을 본받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모든 피조 세계를 맡기셨습니다. 대리 통치자로 세우셨습니다.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만 해도 너무너무 감사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시는구나 감격에 겨운데,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창설하시고 사람을 거기 두셨습니다. 가장 복되고 가장 아름다운 곳에 말입니다.
그 옛날 창세기에서 에덴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고 하나님의 마음이 가장 잘 드러난 곳이라고 한다면,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서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 곳은 과연 어디일까요? 하나님의 그 사랑하시고 극진하신 마음이 가장 잘 묻어나는 곳은 두말할 나위 없이 교회입니다. 왜 교회입니까? 교회는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는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사신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와 바꾼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 주시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그 온몸의 물과 피를 다 쏟아 내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당하신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그 고통을 당하시고 주님께서 바꾸신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난 이후에 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자, 그들에게 교회라는 공동체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교회가 가장 위대하고 가장 아름다운 곳 아닙니까?
더 놀라운 것은 그렇게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이 묻어 있는 이 교회를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맡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교회에 두시고 우리에게 교회를 맡겨 주신 것은 그냥 두신 것이 아닙니다. 목적이 있습니다. 사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사람을 두신 것도 목적이 있고 사명이 있습니다.
15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
두 가지 사명이 있습니다. 첫째는 경작하는 사명, 둘째는 지키는 사명이 그것입니다.
여기 '경작하다'라는 단어를 히브리어로 '아바드(עָבַד)'라는 말을 쓰고 있는데, 노동하다, 땀 흘리다 하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에덴동산에 대한 개념과는 너무 달라서 당혹스럽습니다. 에덴동산은 일하지 않아도 마음껏 먹고 마시고 놀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내가 땀 흘려서 수고하지 않아도, 노동하지 않아도 에덴동산은 그래서 그곳이 파라다이스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에덴에도 경작하는 수고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거기 두시고 사람으로 하여금 에덴동산에서 땀 흘려서 노동하고 수고하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사명입니다.
그런데 '아바드(עָבַד)'라는 말에 숨겨진 의미가 있습니다. '섬기다'라는 뜻입니다. 누구를 섬긴다는 뜻일까요? 당연히 하나님을 섬긴다는 뜻입니다. 경작하고 수고하고 노동하여 땀 흘리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