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학교 6강 - 성령님은 어떤 분이신가 (2)

요한복음 16장 7절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오늘은 성령님에 대해 두 번째로 공부하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두 번, 예수님에 대해 두 번 공부했고, 오늘 성령님에 대해 두 번째로 살펴보게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이런 분이십니다"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도록, 듣기만 하지 마시고 훈련하시고 연습하시며 직접 써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라도 자신 있게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성령에 대해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은 오해하신 겁니다"라고 잘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 성령은 선물이다

오늘은 성령과 하나님의 백성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먼저 성령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믿는 자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성령을 선물로 준다는 말이 나오는데, 선물은 어떤 느낌입니까? 주는 사람이 있고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선물을 받아 보시면 기분이 좋습니다. 그런데 진짜 선물은 달라고 떼를 써서 받는 게 아닙니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주는 분이 그 사람의 형편과 처지와 상황을 헤아려서, 그 속사람 깊은 것까지 헤아려서 "이게 꼭 필요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주는 것, 이것이 진짜 선물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선물이 많이 왜곡되어 있습니다. 자기가 받고 싶은 것을 미리 말합니다. 연애하는 젊은이들은 문자도 보내고 해서 "내 생일이 언제인데 이거 해달라"고 합니다. 가끔 심방을 가서 보면 달력에 크게 동그라미를 쳐서 "내 생일"이라고 적어 놓는 분이 계십니다. 이게 무엇이냐고 여쭈니, 하도 남편이 자기 생일을 잊어버려서 크게 적어 놓았다고 합니다. 그렇게 적어 놓으면 효과가 있느냐고 물으니, 효과가 별로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생일이라고 동그라미 쳐서 적어 놓습니다. 그리고 생일에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뭐하지 말고 이것 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받는 것이 정말 선물입니까? 이건 선물이 아니고 세금에 불과합니다. 때가 되면 당연히 납부해야 되는 생존세에 가깝습니다.

그런데 성령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달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 이날 이때 이렇게 성령 주십시오"라고 동그라미 쳐서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하나님이 살펴보시다가 꼭 필요하니까 주신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중요하니까 주시지 않겠습니까? 별 시답잖은 것을 주시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에게 다이아몬드 반지 아주 좋은 것과 성령, 둘 중에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이 교회에서 제가 이렇게 묻습니다. 그런데 사실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보다 돈을 추구하고, 눈에 보이는 선물을 더 하나님께 갈망합니다. "하나님, 이것 필요합니다. 저것 필요합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사실은 하나님은 그것보다 우리에게 있어야 할 것이 성령이시기 때문에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보내셨습니다. 지난주에 공부할 때 마지막에 말씀드렸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서열이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종속되어 있으시고, 서로가 서로에게 관계하고 계십니다. 우리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항상 매여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었던 요한복음 16장 7절을 다시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누가 보낸다고 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성령을 나에게 보내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는 베드로의 설교 중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개역개정 성경에는 "성령의 선물"이라고 되어 있고, 예전 성경에는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번역하든 별 차이가 없는 번역입니다.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귀하고 소중하고 아름다운 성령을 아무에게나 주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내 인생의 구원의 주로 고백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1-1. 성령 임재의 유형

그런데 성령을 주실 때 각 사람에게 각양 다른 방식으로 주십니다. 크게 한두 가지 유형 정도가 있습니다. 성령 임재 유형이 있는데, 어떤 유형으로 오느냐 하면, 크게는 바울처럼, 또 크게는 디모데처럼 성령이 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울이 성령을 받았던 것처럼 임하는 경우가 있고, 디모데가 성령을 받은 것처럼 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전도폭발 공부를 해보면 간증문을 쓰게 됩니다. 전도폭발 공부를 하면 자기 신앙의 과거를 돌아보며 간증문을 쓰는데, 그때 간증문에 두 가지 유형의 간증이 있습니다. 첫째 유형은 바울형이고, 두 번째 유형은 디모데형입니다.

바울형은 어떤 간증입니까? 어쩜 드라마틱하게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뭔가 사연이 많습니다. 사연이 많은 인생, 할 말이 많은 인생입니다. 바울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중간에 하나님을 만나고 할 말이 많습니다. 바울처럼 좀 유별나게 하나님을 만난 분들, 성령도 바울처럼 임한 분들이 있습니다.

디모데형은 어떤 유형입니까? 디모데형 간증은 특별히 할 말이 없습니다. 별로 나는 죽었다가 살아난 적도 없고, 이렇게 보면 평탄하게 쭉 지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런데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원의 주로 고백하는 것은 확실합니다. 예수가 주가 아니시라고는 상상도 못합니다. 그렇게 살아온 분들이 디모데형입니다. 성령도 디모데처럼 우리에게 임해서, 아주 물 스며들듯이 아주 자연히 조용히 임하는 유형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이런 것을 갈망하지 않습니까? "나도 바울처럼 이렇게 성령 받아 봤으면, 나도 바울처럼 이렇게 좀 유별나게 성령 체험을 했으면." 이렇게 생각합니다.

바울을 한번 보겠습니다. 사도행전 9장 3절에서 5절에 보면,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예사롭지 않습니다. "성령이 임할 때에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누구십니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이렇게 예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때 그는 모든 사람들이 다 알도록, 그와 함께 있었던 사람들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아, 저분이 예수를 만났구나, 저분에게 성령을 경험했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도록 성령이 임했습니다. 이런 유형은 처음부터 예수를 믿은 유형이 아니고, 중간에 하나님께서 강권적으로 붙드셔서 완전히 돌이켜 놓은 유형입니다. 이렇게 성령이 임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디모데를 한번 보십시다. 디모데후서 1장 5절에 보니, "이는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음을 생각함이라." 디모데후서는 디모데가 믿음에 있어서 굉장히 침체되어 있었을 때 쓰인 편지입니다. 목회하다가 "내가 목회를 잘하고 있나, 내가 가는 길이 잘 가는 길인가, 나는 바울보다 너무 모자라고 부족한 것도 많은데 이렇게 해도 되나" 하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디모데후서 편지를 써서 용기 내고 힘내라고 편지해 준 것입니다. 거기서 말합니다. "네 속에 거짓이 없는 믿음이 있다.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 네 속에는 성령께서 함께 계신다, 용기 내라 하는 말씀입니다. 디모데는 대를 이어서 외조모로부터 어머니에게, 어머니로부터 디모데에게 믿음이 대를 이어서 전해진 집안의 귀한 아들이었습니다. 이러다 보니 어릴 때부터 신앙을 가졌습니다. 어릴 때 예수를 구주로 고백했습니다.

이런 유형이 사실 "내가 성령을 받았느냐, 내가 성령이 임하지 않았느냐" 이것이 헷갈리는 것입니다. 헷갈립니다. 그래서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습니다. 어떤 것이 성령 임재의 확신이냐, 내가 어떨 때 성령이 나와 함께한다고 말할 수 있느냐. 이것은 뜨거운 체험이 문제가 아니라, 성령이 지정의로 역사하시니까, 알고 싶을 때, 감정이 뜨거워질 때, 의지가 생길 때, 그때는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나를 깨닫게 하시고 평안도 주실 때, 그때는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디모데에게는 그렇게 성령이 임해서 서서히 성령이 그 속에서 자라나게 하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