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소림축구>를 다시 보다가 오맹달이 눈에 다르게 들어온 적이 있었다. 주성치와 오맹달은 셜록 홈즈와 왓슨처럼 비범한 사람과 그를 빛나게 하기 위한 조력자의 관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맹달은 대체로 주성치가 주연인 영화에서 주성치와의 관계로 정의되는 역을 맡았고, 주성치의 이름 뒤에 따라오는 연관 키워드처럼 여겨져 왔지만, 생각해보면 그는 주성치보다 훨씬 더 스펙트럼이 넓고 깊은 배우다. <식신>에서는 주성치를 무너뜨리는 배신자고, <파괴지왕>에서는 주성치보다 더 능동적으로 코미디를 도맡기도 하고, <소림축구>에서는 주성치보다 입체적인 서사를 가졌다. 그리고 언제나 그 인물을 주성치의 것이 아닌 자신의 언어로 살아있게 만든다. <소림축구>의 소림 형제들 대부분은 자신의 의지와 능력보다는 주성치의 안목으로 발굴된 배우들이다. 그러나 오맹달은 황금다리라는 인물을 오맹달의 힘으로 적정 무게를 실어 움직인다. 그는 주성치의 힘으로 움직이는 배우가 아닌 것이다. 주성치의 영화, 그러니까 주성치가 나오든 안 나오든 '주성치 영화'로 불리는 영화들 중에서 오맹달만큼 자기만의 언어와 보폭을 가지고 움직이는 인물은 또 없다. 어쩌면 주성치는 모든 영화에서 '주성치'를 연기하지만, 오맹달은 '오맹달'을 맡아서 연기하지 않는다. 자기만의 인장이 있으면서도 훨씬 더 다채로운 인물들을 넓고 깊이 소화해낸다.

한국에서 주성치만큼 누구나 알지만 실체가 없는 영화인이 또 없는 것 같다. 다들 '주성치', '주성치 영화'하면 떠올리는 특정 이미지가 있지만 실제로 그의 영화를 제대로 본 사람은 잘 없다. 또는 주성치 영화들이 비디오로 한참 유행하던 시기에 청년기를 보낸 세대들이 "진짜 주성치 영화"에 대해 맨스플레인하길 즐긴다. <장강7호> 이후 주성치가 출연하지 않은 주성치의 연출작은 대부분 소리 소문 없이 개봉했다가 사라졌거나 개봉도 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주성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주성치를 아는 사람도 잘 없다.

<희극지왕>도 주성치의 명성 또는 오명과 비슷하게 실체보다 이름이 더 많이 알려져있다. 그런데 <희극지왕>은 '주성치 영화' 중에서 가장 다른 결을 지니고 다른 곳에 위치해있다. 주성치가 연출하고 출연한 작품 중 영화적으로 가장 훌륭하고, 주성치가 가장 뛰어난 정극 연기를 한다. 여기서도 '주성치 사단'의 사람들은 주성치 영화의 특정 장치로 기능하지만 예외도 있다. 오맹달과 막문위가 그런데, 이건 꽤나 이상한 경험이다. 주성치의 세계에서 가장 익숙한 얼굴들이 주성치의 세계가 아닌 그 영화만의 세계에 속한 단독자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희극지왕> 속 막문위와 오맹달이 나오는 씬들은 주성치 영화의 얼굴들을 만날 때의 반가움보다 낯설고 묘한 기분이 든다. 여기서 오맹달은 주성치를 잡아먹을 것처럼 사나운 사람을 연기하는데, 내가 본 오맹달의 연기 중 가장 출중하고 캐릭터도 어쩌면 그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비범한 전사를 가졌다. "대본은 없지만 NG는 안 돼." 오맹달의 정체가 밝혀지면서 이 영화는 장르가 바뀌고, 그 와중에 오맹달의 호흡은 꾸준히 주성치의 자장 밖에서 유지된다.

주성치의 영화 중에, 비극이 아니면서도 그 세계의 모든 것이 주인공(주로 주성치)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 영화는 <희극지왕>뿐이다. 그래서 제목이 <희극지왕>이지만 주성치 영화 중에 가장 슬프고, 동화도 농담도 아닌, 가장 가까이서 본 희극이다. 틴 사우는 복지회관인 집으로 돌아가고 피우피우는 여전히 얼굴에 멍이 들어있다. 이 영화의 ‘해피엔딩’에서 주어지는 행복은 두 사람이 마주한 순간이다. 틴 사우가 갑자기 대배우로 성공하는 기적이나 그 실마리 같은 것은 없다. 그렇지만 이 행복은 주성치 영화의 해피엔딩 중 가장 현실에 발 붙인채로 손에 잡히는 행복이다. 그리고 오맹달은 총탄에 맞지만 다행히도 죽지 않는다. 이 영화가 피해주는 비극이란 그 정도다. 지난 27일 밤에는 그 당연한 아량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약간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주성치를 너무 좋아하던 때에 주성치가 어느 날 갑자기 죽어버릴까봐 걱정한 적이 있다.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도 놀랍지 않은 배우들'의 목록이 비공식적으로 존재한다. 오맹달은 그 목록에 없었다. 걱정하지 않았던 사람이 먼저 떠나면 더 황망해진다. 오맹달은 다른 영화보다도 주성치의 영화에서 가장 빛났지만 주성치의 별자리에 속하기 위해 존재한 배우는 아니었다. 주성치 영화를 밝혀줄 가장 탁월한 배우였을 뿐이다. 그런 사람이 먼저 별이 되었다.

(2021.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