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바람처럼 물처럼 e-레터를 배달하는 이야기 수집가, 훈훈입니다.

<바람과 물> 6호가 발행되었습니다. <바람과 물> 6호에는 지난 2019년 3월 15일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청소년기후행동의 집회를 시작으로 2022년 9월 24일 3만 5000여명이 모인 기후정의행동으로 이어지는 시민기후행동이 그 주제입니다. 기후행동의 현장에서 활동가로 혹은 당사자의 한 사람으로서 행동해 온 청소년부터 청년, 그들을 응원하는 노년의 기후행동까지 다양한 목소리를 담았습니다. 개인적인 실천과 변화에서부터 사회체제의 변혁을 요구하는 '녹색계급'의 출현을 응원하고, 세력화된 행동이 더 큰 바람을 일으킬 수 있도록 <바람과 물>이 불쏘시개 역할을 했으면 합니다. 무엇보다 '그런다고 세상이 변해?'라며 무력감에 짓눌려 현실에 안주해 버리고 만 누군가를 다시 깨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오늘 '바람처럼 물처럼'에서는 <바람과 물> 6호의 커버스토리 중 청소년기후행동(청기행)의 활동가, 김서경님의 글을 나눕니다.

3년 전 한국에서도 청소년들이 기후행동에 불을 지폈다. 저 멀리 스웨덴에서는 그레타 툰베리의 발언과 행동에 어른들이 혼쭐나고 있었다. 10대들이 거리에 나서는 일은 흔치 않다. 그래서 세상이 주목하게 된다. 전 세계가 획일적으로 청소년의 제1 본분은 학업이라 여기는 가운데, 청소년이 거리에 나선다는 일은 그 본분을 뒤로할 정도의 심각함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사회운동의 역사를 떠올려 보면, 10대들과 20대 청년들의 거리행동은 그래서 늘 의미가 있었다. 당시 나는 그들에게 관심이 많았다. 내가 일상적으로 만나는 10대들이 당사자이기도 했고, 그들이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안다면 10대들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직접행동으로 나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건데, 당시 나는 "기후위기가 심각하다"는 것 외에 특별한 이유를 발견해 내지 못했다.

"거리에서 피켓을 드는 것만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이 사실을 모르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뭐라도 하고 싶을 때가 있다. 감정이 넘쳐서 당장 무엇이라도 하지 않고는 못 배길 때가 있다. 그래서 시위를 만들었다. 우리끼리의 작은 시위든 기후파업처럼 큰 시위든, 무언가 하고 있다는 행위는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확신을 줬다."

김서경, <바람과 물> 6호 중에서

<바람과 물> 6호에 실린 김서경님의 글 '모든 행동에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는 당시의 나를 반성케 했다. 행동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그것이 청소년들의 기후행동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었다. 새로운 세대의 운동은 기성 세대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이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원하는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부끄럽게도 그들의 행동은 나에게서 조금씩 잊혀져 갔다.

그렇다고 기후위기와 전환의 문제가 잊혀졌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심각하게 다가왔다. 그러던 중 작년 한 해는 기후위기와 생태전환을 주제로 청소년들과 1년간 생태인문학 수업을 진행했다. 현재 우리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생태이슈와 전환을 주제 삼아 한 달에 한 번씩 토론하는 자리였다. 딱 이 맘때 즈음이었던 것 같다. 우리의 주제는 지구개발을 넘어 우주개발까지 하는, 생명이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이는 새로운 행성을 지구화시키는 '테라포밍'이었다. 테라포밍에 대해 일반적으로 다루는 주제는 현실 가능성이 있는가의 여부였다.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지구 이외의 다른 행성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망은 전제된 채 가능성이 주제가 되었지만, 우리의 토론마저 그에 따를 수는 없었다. 지구가 더이상 버틸 수 없을 만큼 망가져 가고 있고 인간은 계속 살아야 하기에 지구를 버리고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방법을 택하는 것은 지구를 망가뜨려온 기존의 상식과 크게 다를 바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청소년들은 그런 태도에 대한 윤리적 감각을 발휘했다.

“지금까지 지구를 망가뜨려온 인간이,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상태가 되었으니 지구를 버리고 다른 행성으로 떠나야겠다고 상상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습니다. 살 수 없게 된 지구를 다시 살아갈 수 있는 곳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왜 하지 않죠? 테라포밍을 연구하는 에너지가 지구가 다시 생명이 살 수 있는 공간이 되는 것 쪽으로 쓰일 수 있어야 합니다.”

“지구 개발도 모자라, 우주 개발까지 할 수 있다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태도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한 친구가 말했고 다른 친구가 덧붙였다.

잠자코 듣고 있던 또 다른 친구가 혼잣말처럼 힘없이 말을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