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18:17-19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 세계에는 정교하고 치밀한 손길과 사랑이 가득 묻어 있습니다. 생태계를 들여다보면 하나님께서 이토록 정교하게 창조하셨다는 사실에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들을 무분별하게 포획하면 먹이 사슬이 깨어져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이 일어납니다. 생태계는 그대로 두는 것이 스스로 경쟁하고 발전하며 보완하는 데 가장 이롭습니다. 사람이 손을 대면 댈수록 문제가 생기고 파괴만 될 뿐입니다.
탄자니아에 가면 세렝게티라는 초원이 있는데, 세렝게티 건너편에 서울시 면적의 약 절반 정도 되는 분지가 있습니다. 그곳에 사는 사자들에게 1980년대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연구하는 학자들이 사자들을 관찰하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사자들의 개체수가 줄어들고 활동량도 줄어들고 새로 태어난 새끼 사자의 덩치도 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연구 결과 수사자들의 정자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어떤 수사자는 기형을 일으키는 정자를 가지고 있기도 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더 깊이 추적해 보니 그로부터 약 10년 전에 이상 기후가 발생해서 흡혈 파리가 기승을 부렸습니다. 흡혈 파리 때문에 사자 떼가 거의 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살아남은 사자가 몇 마리 있었는데, 수사자 한 마리와 암사자 여러 마리였습니다. 그때부터 이 살아남은 수사자 한 마리의 열성 유전자가 암사자들을 통해서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인간으로 말하면 그 10년 동안 근친혼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약한 유전자가 근친혼을 통해서 전파되었고 그 문제가 10년이 지나서야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결국 다양한 개체의 사자들을 투입함으로써 문제는 해결되었습니다.
이런 사건이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자연은 치밀하게 관계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관계를 맺고 다양한 관계 가운데 건강함을 유지하도록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가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연만 이렇게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도 삼위일체의 관계 가운데 계십니다. 하나님과 인간도 관계 안에 있고, 사람과 사람도 역시 관계 안에 있습니다. 이 중에서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창조하실 때부터 하나님과 인간이 관계 맺도록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죄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았습니다. 죄가 있으면 하나님과 적절한 관계를 맺기가 어렵습니다. 역설적으로 반대로 말하면 죄 문제만 해결되면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의 디자인처럼 하나님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죄 문제가 해결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찾아오시고 긴밀한 관계를 맺어 가고 계십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나는 하나님과 깊은 관계 가운데 지내고 있는지, 혹시 내가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죄가 있다면 무엇인지,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고 풀어갈 것인지를 함께 묵상하고 살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그네 세 분이 아브라함의 가정에 찾아가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세 분의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합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세 분 중에 한 분이 하나님이시고 두 분은 천사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두 천사는 소돔 성으로 떠나고 하나님 한 분만 남으십니다. 이제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대화를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창 18:17)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먼저 하시는 첫 번째 말씀입니다.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무슨 말입니까? 당신이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씀하겠다는 뜻 아닙니까? 획기적인 말씀입니다. 충격적인 말씀입니다. 이런 일이 나에게 이루어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나님이 하시려는 것을 나에게 숨김없이 말씀해주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들여다보면 이것은 충격적인 말씀도 획기적인 말씀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원래 세상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실 때부터 하나님은 이렇게 당신이 하려는 일을 사람들에게 숨긴 적이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아담, 하와와 동행하시고 교제하셨습니다. 시간을 정해두고 그들과 함께 산책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내려오셔서 그들과 함께 동행하시고 속을 다 나누시고 대화하셨습니다. 에녹은 또 어떻습니까? 하나님은 에녹과 함께 동행하시다가 그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은 그를 천국으로 데려가셨습니다. 노아에게도 똑같이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노아에게 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할 것을 말씀하시고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하나님의 사람들과 이렇게 밀접하게 소통하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이런 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소통하고 대화하고 당신의 마음을 알려주시는 분들, 그들의 공통점은 죄가 제거된 상태라는 것, 죄 문제가 해결된 상태라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보십시오. 선악과 사건 이전에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동행하셨습니다. 죄 짓기 전에 하나님은 그들과 거칠 것이 없이 대화하셨습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왔습니다.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하나님이 똑같이 에덴동산에 내려오셨습니다. 아담이 숨어버렸습니다. 하와도 숨어버렸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이 말합니다. "벌거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습니다." 결국 죄 문제는 하나님과 인간을 갈라 놓습니다.
에녹을 보십시오. 300년 동안이나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단 하루도 하나님과 동행하기 힘든데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말은 자기 부인이 되었다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이 가자는 곳으로 따라갑니다. 나는 남쪽으로 가고 싶은데 하나님이 북쪽으로 가자면 나는 남쪽으로 가고 싶은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이 가기를 원하는 곳으로 따라갑니다. 그것을 자그마치 300년을 했습니다. 죄를 떠난 상태, 그래서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노아 시대를 보십시오. 죄악이 관영해서 하나님이 그대로 홍수로 쓸어버릴 지경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노아는 당대의 의인이었습니다. 죄를 떠난 상태였다는 말입니다. 죄를 떠난 상태이기에 하나님은 그들과 교제하십니다. 직접 찾아오시고 당신의 속마음을 알려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아브라함도 역시 죄 문제를 해결한 상태입니다. 그는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13년 동안이나 이스마엘에게 빠져 살았습니다. 죄 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이름도 바꾸어 주십니다.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사래에서 사라로. 결단을 촉구하십니다. 할례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결단하고 할례 받았습니다. 할례가 어떤 의미입니까? 결단하는 것, 잘라내는 것 아닙니까? 끊어내는 것 아닙니까? 지금까지 하나님을 떠나 살았던 나의 잘못된 점들을 끊어내겠습니다, 결단하겠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죄를 끊어내고 이제는 하나님 앞에 제대로 살겠습니다, 결단했습니다. 살을 떼어내고 피를 흘리며 마음의 할례를 받고 육체의 할례를 받고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살기를 결단하며 사명을 받았습니다. 이제 아브라함의 사명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죄를 떠났더니 하나님은 그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다 말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서 우리 자신을 한번 보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뜻을 왜 잘 발견하기가 어려울까요? 하나님께서 분명히 어떤 뜻을 가지고 계시는 것 같은데 왜 나는 그 뜻을 찾아가기가 힘들까요? 하나님이 왜 이렇게 나에게 불분명하게 다가오시는 것 같을까요?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을 텐데 왜 들리지 않는 걸까요? 왜 이해되지 않는 걸까요? 이럴 때는 우리 죄 문제를 들여다보셔야 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에 죄 문제만 해결된다면, 내가 죄 문제를 해결해 놓고 있다면, 하나님은 당연히 나를 찾아오시고 우리에게 당신이 하고 싶은 것과 계획하시는 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사명을 주실 때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이사야 선지자에게 하나님이 사명을 주실 때도 죄를 먼저 해결해 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