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본문: 창세기 18:1-8

전국 각지에는 그 지역을 대표하는 빵집들이 있습니다. 지역을 대표하는 빵집은 유명하기도 하고 매출도 상당합니다. 대전에 가면 성심당이라는 빵집이 있는데, 이 빵집이 시작된 유래가 은혜롭고 의미 깊습니다. 1997년에 작고하신 김길수 순신은 성심당의 창업주였는데, 이 분은 1950년 흥남 부두 철수 때에 빅토리아 호를 탔습니다. 사선을 넘나들며 가족과 자녀들을 데리고 빅토리아 호에 올라 피난을 왔습니다. 거제 수용소를 거쳐 진해와 부산을 전전했지만 먹고 살 길이 막막했습니다. 그래서 자녀들을 데리고 사람들이 많이 사는 서울로 가면 좀 낫겠거니 하고 1956년에 기차를 타고 서울로 떠났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서울행 기차가 대전에서 고장이 나버렸습니다. 기약이 없었습니다. 언제 수리가 되고 언제 고친다는 이야기도 없이 마냥 기다리라고만 합니다. 어린 자녀들은 배고프다고 야단입니다. 하는 수 없이 정처 없이 자녀들을 이끌고 대전에 내렸습니다. 가장 가까운 성당에 갔습니다. 성당 신부님께 자신들의 사연을 말했더니 신부님이 말없이 밀가루 두 포대를 주었습니다. 그것으로 찐빵을 만들어 대전역 앞에서 팔았습니다. 그것이 대전 성심당의 시작입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빵집은 부흥했고, 날이 갈수록 장사가 잘되어 지금의 유명한 빵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창업주인 김길수 씨는 그때부터 시작해서 밀가루 두 포대를 거저 받았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은혜로 받았기 때문에, 하루에 만드는 빵의 3분의 1은 나누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돌아가실 때까지 실천했습니다. 지금은 아들인 김대진 씨가 이어받아서 운영하고 있는데, 한 달에 약 3천만 원어치의 빵을 사회복지시설에 기부하고 있습니다.

원래 은혜를 베푸는 것은 물처럼 위에서부터 아래로 흘러가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은혜를 받고, 우리가 은혜를 베풀 만한 때가 되고 시기가 되면 다시 우리도 받은 은혜를 누군가에게 흘려보내고 삽니다. 우리는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얼마나 값지고 얼마나 큽니까?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우리는 때가 되면 하나님의 백성들인 주변 이웃들과 사람들에게 나누고 베풀며 삽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에 보면 아브라함의 삶이 바로 그런 삶이었습니다. 그런 아브라함의 삶을 살펴보고 우리도 베풀고 나누고 흘려보내는 삶을 결단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그네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므레의 상수리나무들이 있는 곳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날이 뜨거울 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본즉 사람 셋이 맞은편에 서 있는지라" (창 18:1-2상)

하나님이 천사 둘을 데리고 아브라함을 찾아오셨습니다. 천사 둘을 수행원 삼아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찾아오십니다. 특별한 방문입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이런 식으로 찾아온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오실 때 항상 말씀으로 오셨습니다. 하나님은 형상이 없는 분 아닙니까?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을 누구에게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찾아오셔서 그를 가나안 땅으로 부르실 때도 말씀하셨고, 그에게 교제하시고 그에게 명령하실 때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이 사람의 모양으로 찾아오십니다. 그것도 두 천사를 데리고 세 명이 함께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하게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이 장면은 두 가지 의미에서 특이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아주 평범한 모습으로 찾아오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왕의 행차를 달리고 찾아왔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100미터 전부터 수행원들이 쫙 늘어서 있고, 수많은 사람들이 연도에 도열하고, 왕의 행차를 알리는 풍악이 울리고 나팔을 불고, 야단법석이 났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극진히 최선을 다해서 왕을 대접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왕의 행차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아주 평범한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 평범한 모습은 바로 나그네의 모습이었습니다. 나그네는 영접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유롭습니다. 그냥 눈 딱 감고 흘려보내도 그만입니다. 나랑 상관없는 사람 아닙니까? 바람처럼 왔다가 바람처럼 가는 사람이 나그네인데, 그 사람을 영접하고 대접을 하건 그렇지 않건 나에게는 전혀 부담이 없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나그네로 우리 하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성경은 나그네를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 가운데 신이시며 주 가운데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정의를 행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여 그에게 떡과 옷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 (신 10:17-19)

나그네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나그네에게 떡과 옷을 주시고, 고아와 과부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그네를 특별히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나와 상관없는 자를 하나님은 사랑을 베풀라고 하십니다.

우리 예수님의 비유에도 나그네를 사랑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마 25:35)

종말의 때에 양과 염소를 나누는데, 양의 자리에 서 있는 사람이 말합니다. "내가 특별히 잘한 것도 없는데 왜 이 자리에 서 있습니까? 내가 언제 주님을 모시고 섬겼습니까?" 이렇게 질문했더니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네가 나그네를 영접하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와 관계에 있는 사람은 잘 섬깁니다. 말하지 않아도 명령하지 않아도, 사업 관계에, 이해관계에 걸려 있는 사람을 우리가 극진히 접대하지 않습니까? 우리 자녀와 관계에 있는 사람도 우리 아이가 혹시 불이익을 당할까 봐 얼마나 극진히 잘 섬기고 눈치까지 봅니까? 나와 이해관계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런데 나그네는 언제 봤다고 우리가 그 사람을 잘 섬기겠습니까? 특별히 날이 뜨거울 때 나그네로 우리 하나님이 천사들과 함께 오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이런 존재는 귀찮은 존재일 뿐입니다. 그런데 나그네의 모습으로 찾아오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