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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5월, 성수동에서 셋이 만난 날. 그리고 6월 1일, 정혜수는 베를린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해리 "지난 번 혜수 감독님하고 예술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일을 만들고 삶을 만들어 나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나눴는데요. 우리 셋이 잘 통할 것 같아서 이 프로젝트를 만들어 봤어요. 셋 다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꾸준히 해왔던 것 같아요."

비치 "저는 학교를 오래 다녔는데요. 구조 안에서 훈련받는 일만 해왔는데 밖으로 나오니 적용이 안되더라고요. 학교만 잘 나오면 사회에서 잘 있을 줄 알았는데 사회에서는 다시 시작해야 되더라고요."

혜수 "저도 고민이에요. 맞아요. 예대만 들어가면 술술술 풀릴 줄 알았어요. 근데 오히려 리셋된 기분이고 나 이제 어떡하지, 이제 졸업인데, 이제 뭐하지. 그런 불안감이 너무 커요."

비치 "저는 미술대학에 계속 있던게 아니라 석사만 미대예요. 다 탄탄한 애들이 왔는데 저만 운이 좋게 낀거죠. 졸업식까지도 내가 나가도 되나? 나를 내보내네. 나를 왜 내보내지? 그랬어요. 졸업하고 나서도 나 어떻게 졸업했지? 졸업은 했는데 아직도 예술가의 칭호는 너무 멀고..."

혜수 "진짜로 수업 시간에도 그런 얘기 서로 많이 해요. 예술가라는 타이틀 자체가 뭘 칭하는지 모르겠다고요. 이제는 개인 창작자가 너무 많잖아요. 그럼 우리가 솔직하 다 까놓고 니네가 생각한 예술가가 뭐야? 이러면 갤러리나 대안공간이나 뭐, 블랙박스 화이트박스에서 자기 창작물을 발표하는 사람인가? 아닐 수도 있잖아요. 내가 생각하는 예술가는 뭐고, 그 타이틀이 뭐길래 내가 이렇게 고민하고 타이틀에 걸맞게 작업하려고 부담을 안고 사는가."

비치 "예술대학에서 도장만 받으면 예술가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결국은 '무엇이 예술인가'라는 고민에 빠지는데요. 뭔가 예술이 뭐고, 예술가가 뭐고, 어떻게 되는 거고. 이런거에 대한 고민이 '뭐라도 하면 되지'라고 해주는 친구들을 만나고, 재료를 만지는 법을 만나다 보면 조금씩 가시는 거 같긴 해요. 그래서 이 제안이 너무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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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자리, 서로의 작업을 구경 중인 두 사람.

해리 "우리가 어떤 주제로 대화를 주고 받고 작업을 만들어보면 좋을지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이 레터에 완성된 결과물이 담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작품의 재료를 수집하는 과정을 나누어 주어도 좋고요. 일기도 좋아요. 사실 전 창작자들을 너무 좋아하는데, 늘 일년에 몇 번만 만날 수 있다는 게 아쉽거든요. 창작의 과정과 작업자로서의 이야기를 더 자주 경험하고 싶어요. 둘 다 인스타그램에는 왜 작업자로서의 이야기는 안 올려요? (웃음)"

혜수 "반성되네요. 저 진짜 안 올리거든요. (웃음) 사실 창작자로서 하고 싶은 건 너무 많아요. 어떻게 일을 꾸리고 어떻게 기회를 만들 것인가. 그런 생활 안에서 내가 내 업을 꾸리는 것에 대한 고민이 진짜 많아요. 그런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어떤 작품을 하고 싶은데? 작업 시동이 왜 안 걸리지? 그런 이야기도 재미있을 것 같고요. 예술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그런 탐구도 솔직하게 해보고 싶기도 하고요."

비치 "사실 제 작업이 그런 고민에서 시작됐거든요. 예술가로 살고 싶은데 예술가가 되어서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작업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저런 미래를 내가 원하는 건가? 이런 고민이 너무 많았어요. 그런 제 모습을 초상화로 찍어서 작업화했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그런데 사실 그게 답이 없는 이야기잖아요. 답이 없는 문제를 반복해서 말하면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저를 보는 게 편안하지는 않았어요. 그렇다고 제가 '이렇게 하면 됩니다!'라는 솔루션을 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를 지속하는 것이 망설여져요."

혜수 "(눈을 반짝이며) 비치 작가님 작업, 재미있는데요? 궁금하네요. 이런 건 어때요? 우리 둘이 갓 만났잖아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인간 대 인간으로, 그리고 작업자 대 작업자로 소통을 하는 거예요. 왜냐면요. 저는 제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떤 걸 지양하는지, 그 구분이 아직 명확하지 않아요. 제 안에서요. 학교 가니까 이것 저것 하는 사람들 보면서 다 좋아보이고 이것도 배우고 싶고 저것도 배우고 싶은데, 그걸 제 스토리 안에서 어떻게 녹여낼지 고민이거든요. 본인이 지금까지 해왔던 작업을 소개해도 좋고요. 재창작한다면 보완해보고 싶은 점이라든지 앞으로 작품에 담아내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솔직하게 이야기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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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부탁한다며 손을 맞잡은 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