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 (막 12:18-27)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순환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낮이 지나면 밤이 오는 것처럼 사람이 건강하게 살아가다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믿기에 죽음에는 반드시 필요한 것 한 가지가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 한 가지는 다름 아닌 육체였습니다. 영혼이 거할 수 있는 육체가 꼭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삶에는 미라가 꼭 필요했습니다. 특별히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파라오가 죽을 때에 그들은 미라로 방부 처리를 해서 영원토록 남겨 두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고민이 있었습니다.

미라도 완벽하지 않았습니다. 온도와 습도를 잘 맞춰 놓아도 부패가 계속해서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조각가들을 동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나의 건강했을 때 모습을 조각해 두어라." 그리고 그들은 조각가를 이렇게 부릅니다. "영원히 살게 해 주는 사람"이라고. 의미심장하지 않습니까? 조각가들을 부르기를 "영원히 살게 해 주는 사람"이라고 부른 것은 굉장히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파라오들은 피라미드를 만들었습니다. 현존하는 피라미드 중에 가장 큰 것이 높이가 146미터나 됩니다. 지금 현대 건물로 약 40층 정도의 높이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높은 건물입니다. 기원전 2500년경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떻게 이렇게 대단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을까요? 미스터리하고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피라미드 안에 들어가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그 안에는 파라오의 부장품이 엄청나게 많이 들어가 있습니다. 살아 있을 때 가지고 있었던 금은보화 모든 것들이 그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조각상도 미라도 모든 것들이 그 안에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둔 파라오의 바람은 한 가지였을 것입니다. "나는 죽어서도 여전히 너희를 다스리는 파라오다." 지금의 삶을 죽음까지 그대로 가져가고 사후 세계까지 가져가고 싶은 그들의 욕망이 피라미드로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로부터 2천 3백 년이 지나서 동양으로 오면 진시황을 만납니다. 진시황 또한 죽기 싫었습니다. 그도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서 백방으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는 살아 있을 때 자신의 무덤을 설계했습니다. 설계한 사람, 무덤을 만드는 데 동원된 사람 모두 다 짓고 나서 그들을 죽여 버렸습니다. 혹시나 있을지도 모르는 도굴에 미리미리 준비하고 미리 대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진시황릉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약 6,000여 개의 병사 모형이 만들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 병사의 모형은 사람의 키와 똑같습니다. 그런데 6,000여 개의 병사는 각양 다른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진시황의 욕망은 "나는 죽어서도 너희들을 다스린다. 나의 호위 무사 6천 명이 나를 호위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파라오나 진시황의 욕망이 무엇입니까? 그들은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을 넘어서서 사후 세계를 절실하게 고대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간절했습니다. 지금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권력이 너무 크고 놀라웠기 때문에 이것을 놓기가 싫었습니다. 죽어서도 나는 여전히 왕이고, 죽어서도 이 삶을 영속적으로 이어가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죽음도 천국도 부활도 오해했던 사람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 말씀에 보면 부활을 오해한 사람들이 나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너무 바쁘게 살아가는 나머지, 너무 분주하게 살고 있는 나머지 우리가 죽는다는 것을 생각지도 못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서 우리가 지금 한 가지도 생각하지 못하거나, 혹은 생각했다 하더라도 잘못된 부활과 천국에 대한 관념을 가진 분들도 많을 것입니다. 오늘 읽은 하나님 말씀을 통해서 내가 갖고 있는 잘못된 천국과 부활에 대한 생각을 함께 바로잡는 은혜의 시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1. 사두개인의 정체

예수님께서 성전 정화 사건을 일으키신 이후에 본격적으로 예수 죽이기가 본격화됩니다. 유대 종교 권력자들이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혈안이 되었습니다.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보냅니다. 먼저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와서 뜬금없이 세금에 대한 질문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히려 날카롭게 반박하고 되물어 보셨습니다. 그들은 오히려 부끄러움만 당하고 돌아가야 했습니다. 그다음 집단이 사두개인들입니다.

사두개인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여러분들이 생각하기에 사두개인은 어떤 집단입니까? 성경을 읽다 보면 사두개인들은 바리새인들과 함께 나옵니다. 마치 세트처럼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들이나 예수님을 반대하기는 한 가지인 사람들이다, 우리는 그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역사성은 천양지차입니다.

1-1. 사두개인의 역사적 뿌리

사두개인의 역사의 뿌리를 들여다보면 그들은 정말 희한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은 사두개인들이 이런 사람들이라고 설명합니다.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사두개인들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왜 부활을 믿지 않았을까요? 그들의 역사에 뿌리를 올라가 보면 이해가 됩니다. 그들의 뿌리를 올라가고 올라가 보면 대제사장 아론을 만납니다. 대제사장 아론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모세의 형입니다. 아론은 네 명의 아들을 두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와 엘르아살과 이다말 네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레위기 10장에 보면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서 죽습니다.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 그러자 그다음 아들인 엘르아살이 대제사장이 됩니다. 엘르아살이 대제사장이 되면서 동생 이다말은 성전에 수종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 협력하고 도와 가며 성전의 사역을 감당해 나갑니다.

엘르아살도 집안을 이루고 이다말도 집안을 이루어 계열을 이루었습니다. 이제 두 집안이 교대로 대제사장 직을 수행해 나갔습니다. 한 집안이 대제사장이 되면 다른 집안은 성전에 수종드는 일을 감당했습니다. 상호 협력과 견제가 일어납니다. 대제사장이 잘못하면 이다말 계열의 성전 수종드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이다말 계열 대제사장이 잘못하면 엘르아살 계열의 집안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건강한 종교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이 역사는 다윗 때까지 계속됩니다.

1-2. 사독의 등장과 권력 독점

그런데 문제는 다윗에서 솔로몬으로 왕위가 넘어가는 시점이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후계자로 솔로몬을 점찍어 두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과 배다른 형제인 아도니야가 반란을 일으킵니다. 아도니야 편에 요압 장군과 이다말 계열의 당시 대제사장 아비아달이 가담합니다. 반란은 곧장 진압되었습니다. 반란이 진압된 후 다윗 뒤에 솔로몬이 왕이 됩니다. 왕이 된 솔로몬이 이들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요압을 처형합니다. 이다말 계열의 아비아달 대제사장을 그의 고향인 아나돗에 유배시킵니다.

그리고 이제는 한쪽 계열만 남습니다. 엘르아살 계열의 사독을 대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두 집안이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었던 대제사장 가문의 한쪽 집안이 망해 버림으로써 엘르아살 계열의 사독이 유일한 대제사장이 된 것입니다. 사독은 솔로몬과 결탁했습니다. 그리고 사독은 솔로몬과 함께 권력을 나눕니다. 사독의 후손들이 바로 사두개인이 된 것입니다.

사독은 솔로몬과 함께 영화를 나누면서 솔로몬의 비행과 약점을 모른 척합니다. 솔로몬은 후기에 타락했습니다. 바로의 딸 공주를 아내로 맞이합니다. 그리고 이집트의 우상들이 들어옵니다. 이집트의 우상들만 아닙니다. 여러 나라 여러 민족의 공주들을 다 맞아들였습니다. 그들과 정략 결혼을 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온 이방의 신들로 이스라엘은 가득 차 버렸습니다. 하지만 사독 대제사장은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권력을 나누어 얻기 때문입니다. 함께 배부르고, 함께 돈을 만지고, 함께 솔로몬의 영화에 동참했습니다. 그가 바로 사독입니다.

1-3. 천 년의 권력 독점

사독 이후에 그들은 영속적으로 대제사장 직을 차지했습니다. 그때부터 대제사장들은 타락해 버렸고, 그때부터 함께 생겨난 사두개파들은 여전히 권력과 돈을 독점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림잡아 보아도 기원전 950년경부터 예수님이 오셔서 지금 여기 사두개인들과 예수님이 대화 나누고 있던 그 시간까지 약 천 년의 시간, 길고 긴 천 년의 시간 동안 사두개인들은 한 손에는 정치 권력을, 한 손에는 종교 권력을 가지고 군림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