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이냐 (막 12:13-17)

3월 1일은 1919년 3월 1일 대한독립만세가 펼쳐진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일제의 총칼에도 굴하지 않고 자주 대한민국을 위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그 놀라운 사랑과 수고가 오늘의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힘이라고 믿습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기쁨과 감사함을 느끼는 것은, 민족대표 33인 중에 16명이나 하나님의 자녀들, 예수 믿는 백성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비단 삼일운동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일제의 총칼에 굴하지 않고 독립운동을 펼쳤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었습니다. 계몽운동, 농촌운동, 심지어 무장항일운동까지, 그 가운데 상당수가 모두 신앙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그중에 한 분 도산 안창호 선생님도 계십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1878년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17세 되던 1895년에 한양으로 올라옵니다.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언더우드 선교사가 운영하던 구세학당에 들어갑니다. 열심히 학업을 배웠습니다. 구세학당은 훗날 경신중고등학교가 됩니다. 그는 신학문을 접하며 열심히 학업을 하던 중에 일생일대 획기적인 변화를 경험합니다. 바로 선교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마음속 깊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을 느끼고 나니 그는 그 자리에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이후에 곧장 결혼하고 더 큰 것을 배우기 위해서 넓은 세상 미국으로 떠납니다. 아무것도 없이 떠난 그가 미국에서 얼마나 많이 고생했을까요. 수없이 고생하고 힘겨운 시간들을 다 보내고 이제 살 만하니, 그는 돌연 다시 조선으로 귀국합니다.

그가 귀국한 이유는 민족 때문이었습니다. 이 나라가 이제 국운이 서서히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으로 민족의 주권이 일제로 넘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 땅에 귀국한 이후에 여러 동지들을 모아서 독립운동을 시작합니다. 신채호 등과 함께 신민회를 조직했습니다. 대성학교를 세웠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배웠던 것처럼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으로 이 시대 후학들을 길러서 일제를 극복하는 민족의 일꾼들을 길러 내겠다는 일념이었습니다. 민족정신을 개조하기 위해서 흥사단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저 밑바닥부터 모든 백성들이 함께 잘 사는 나라를 일구어 가겠다는 일념이었습니다.

도산 안창호의 독립운동 정신은 민족개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무장항일운동으로는 일제를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정신을 바꾸어야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그 민족개조론의 밑바탕에는 복음의 정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정신으로, 민족의 복음화의 정신으로 이 민족의 새로운 생각을 새롭게 바꿔야 한다는 일념이었습니다. 활발하게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가 1932년 상하이에서 체포됩니다. 그 이후에 수차례 투옥과 체포를 거듭하면서 몸이 쇠약해집니다. 1938년 결국 세상을 떠났습니다.

우리는 도산 안창호를 비롯해서 여러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보면서 한 가지 공통된 의문을 가집니다. 그 의문은 이것입니다. 왜 그렇게까지 살아야만 했을까? 사실 도산 안창호는 미국에 이민 간 이후에 그곳에서 자리 잡고 뿌리내리고 살아도 됩니다. 누구 하나 그를 비난할 사람이 없습니다. 고국에 돌아오지 않는다 해서 그분을 손가락질할 사람이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돌연히 귀국했고 민족의 해방을 위해서 온몸을 다 바친 믿음의 역군이 되었습니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평균만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다 중간만 하는 사람, 남들에게 욕도 먹지 않을 정도만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칭찬도 필요 없습니다. 또 어떤 부류는 평균 이하의 삶을 삽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끼칩니다. 가족에게나 공동체에게나, 자신은 잘 모르지만 그분의 존재 때문에 여러 사람들이 피곤하고 힘이 듭니다. 평균 이하의 삶을 사는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소수이지만 평균 이상, 고귀하고 값지고 거룩한 인생을 사는 분들도 있습니다. 도산 안창호 같은 분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하나님의 말씀에 보면, 모름지기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간직하고 사는 존재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영혼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평균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상의 삶, 더 고귀하고 값진 인생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과연 나는 어떤 인생을 살고 있는가, 평균의 인생인가, 평균 이하인가, 하나님의 형상에 합당한 고귀하고 값진 인생을 살고 있는가, 우리 자신을 함께 돌아보는 은혜의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려는 자들

예수님께서 성전정화 사건을 일으킨 이후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를 죽이기 위해서 촘촘한 그물을 짰습니다. 여러 사람들을 동원합니다. 조직을 동원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예수를 죽이기 위한 작업에 돌입합니다.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여 바리새인과 헤롯당 중에서 사람을 보내매"

여기서 그들은 당연히 유대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그들이 예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였다"는 말은 이제 예수를 걸어서 넘어뜨리려 했다, 예수를 고소할 조건을 찾으려고 명분을 얻으려 했다는 뜻입니다. 그 일을 위해서 그들은 여러 조직을 동원하는데, 오늘 본문에는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을 동원했습니다. 바리새인과 헤롯당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그들은 결이 다른 존재들입니다. 평소에는 말도 섞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를 죽이겠다는 그 일념 하나로 하나가 됩니다.

그들이 와서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합니다. 14절을 보십시오.

"와서 이르되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심이니이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

앞의 말은 아무런 의미 없는 말입니다. 칭찬을 잔뜩 늘어놓는데 이건 그냥 별 의미 없이 하는 말입니다. 진짜 이들이 하고 싶었던 말은 그 뒷부분입니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됩니까? 바치지 않아야 합니까? 갑자기 뜬금없이 세금을 가지고 질문합니다. 아주 의도적인 질문이고 악한 질문입니다.

1-1. 바리새인들의 의도

바리새인들이 어떤 사람들입니까? 율법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은 다분히 민족주의적인 기질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입장에서 볼 때 지금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로마 권력은 악입니다. 그들이 빨리 물러나고 지금 여기 이 가나안 땅, 하나님이 주신 팔레스타인 땅에 하나님의 회복이 이루어져야 된다고 믿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만약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세금을 내야 한다고 말씀하시면 어떻게 될까요. 이들은 당연히 예수님을 반민족주의자로 몰고 갈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소문낼 것입니다. "유대인들이여, 잘 보라. 너희들이 그토록 따라다녔던 이 예수는 알고 보니 로마의 앞잡이였다. 세금을 내라고 하지 않느냐. 우리의 고혈을 짜서 로마에 바치라고 하지 않느냐. 예수를 우리가 어찌 가만히 두고 볼 수 있겠느냐." 이들은 아마 유대인 최고의결기관인 산헤드린 공회에 예수를 고발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죽이라고 목청껏 외쳤을 것입니다. 이런 의도를 가지고 질문했습니다.

1-2. 헤롯당의 의도

헤롯당은 어떤 자들입니까? 그 당시 로마의 권력은 서열화되어 있습니다. 제일 꼭대기에 로마 황제가 있습니다. 그 아래에 황제가 보낸 총독이 있습니다. 헤롯당은 실질적 지배 권력입니다. 팔레스타인 땅을 다스리고 있는 자들입니다. 에돔 족속입니다. 로마에 많은 돈을 주고 팔레스타인의 지배권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로마와 공생하고 있는 공생 관계입니다. 당연히 로마에 세금을 내서 로마가 배불러야 그들도 배부르게 살 수 있다고 믿고 생각하는 존재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