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로는 안 될 것 같을 때마다 책을 읽는다. 엄청 자주 읽는다는 얘기다. 그러고 나면 나는 미세하게 새로워진다. 긴 산책을 갔다가 돌아왔을 때처럼. 현미경에 처음 눈을 댔을 때처럼. 낯선 나라의 결혼식을 구경했을 때처럼. 어제의 철새와 오늘의 철새가 어떻게 다르게 울며 지나갔는지 알아차릴 때처럼. 커다란 창피를 당했을 때처럼.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처럼. 나는 사랑을 배우고 책을 읽으며 매일 조금씩 다시 태어난다. 내일도 모레도 그럴 것이다.
  • 언젠가 네가 그만 살고 싶은 듯한 얼굴로 나를 봤던 걸 기억해.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어.네가 계속 살았으면 좋겠는데 고작 내 바람만으로 네가 살아서는 안 되잖아. 살아가려면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들이 있어야 하잖아. 울다가 잠든 네 모습을 한참 봤어. 아침이면 일어나고 싶은 생을 네가 살게 되기를 바랐어. 왜냐하면 나는 너 때문에 일찍 일어나고 싶어지거든. 일도 하고 너랑도 놀아야 해서 하루가 얼마나 짧은지 몰라. 네 규칙적인 숨소리를 들으며 이 책의 마지막 시를 읽었어.
  • 서재에서 사노 요코의 그림책들을 다시 꺼내보는 밤이야. 조금 울고 싶다는 뜻이자 용기를 내고 싶다는 뜻이지. 이제는 죽고 없는 작가, 사노 요코는 사는 동안 많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어. 덕분에 후대의 내가 그의 책들 속에서 몇 번이고 용기를 회복할 수 있지. 글로만 이루어진 산문집들도 너무나 좋지만 글과 그림이 함께 놓인 책들도 눈부시게 좋아. 그중 내가 가장 아끼는 그림책은 『100만 번 산 고양이』와 『태어난 아이』야. 전자는 사랑할 용기를, 후자는 살아갈 용기를 줘.
  • 하마야. 우리가 입을 닫은 채로 같은 소리를 듣고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대화만큼이나 소중한 침묵이었지. 그저 듣기만 할 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이 깃드는 걸 느끼곤 해. 이를테면 박완서 선생님의 시선 같은 것. 그가 구현해낸 별별 인간 군상들의 목소리 같은 것.
  • 실은 직접 겪어보지 않아도 조금만 신경 쓰면 알게 되는 거겠지. 우리는 간혹 자기도 모르게 타자의 자리에 서는 존재니까.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건 남에게도 고통스러울 확률이 크다는 걸 아니까. 그래서 자신을 스친위험 요소가 다른 이에게 옮겨가지 않도록 움직이는 거겠지.
  • 이 문장에서 나는 왠지 다음 문장으로 빨리 넘어갈 수가 없었어. 왜일까. 엄마도 이런 마음으로 떠올리는 친구가 있었어? 못 본 사이에 아름다워졌을, 혼자 지낸다면 분명 쓸쓸할 것 같은 미경 같은 친구 말이야. 질투 없이 그저 애틋한 염려로 그 애의 예쁨과 외로움을 상상해본 적 있어? ‘나’는 그런 뒤에 약간의 서운함을 드러내.
  • 그런 순간을 아느냐고 당신들에게 묻고 싶었어요. 분명 나보다 더 잘 알 것 같으니까요. 복희 당신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지요. “꼭 내가 없는 느낌이었어. 내가 없는데 아주 충만한 느낌이었어.” 오래 전 당신이 자연 속에 혼자 누워 있을 때 느꼈던 ‘자아가 다 흩어지는 느낌’을 설명하며 그런 멋진 말을 해주었지요. 제 자아도 이따금씩 그렇게 흩어진다면 참 좋을 텐데요.
  • 전태일은 유서에서 남들을 이렇게 호명한다. ‘나를 모르는 모든 나’라고. 또한 자신을 이렇게 호명한다.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라고. 한영 씨는 내게 당부했다. “누구를 만날 때 적당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또 하나의 나를 만드는 것처럼 남을 만나야 돼. 최선을 다해야 돼.” 최선을 다하라는 말을 듣자 어느 시 한 편이 떠올랐다. 이규리 시인의 시 「특별한 일」에서 읽은 몇 문장이었다.
  • 나는 제멋대로인 한 사람을 상상한다. 아직 이 소설을 쓰기 전의 윌리엄 맥스텔이다. 그는 『뉴요커』의 소설 편집자로 오랫동안 일해왔다. 동시에 과거의 어떤 부분을 두고두고 곱씹으며 살아왔다.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그의 마음에서 내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커다란 안타까움이다. 오래 전의 일이지만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자기가 하지 않은 일로 파괴된” 수많은 이들이 안타까워서, 미안해서, 이해하고 싶어서, 과거를 몇 번이고 되돌려본다. 다른 사람이 되어보려는 노력, 다른 사람이 되어서 그의 시선으로 이 일을 보려는 노력은 그런 마음에서 비롯된 것만 같다.
  • 늘 양다솔의 이야기를 시트콤 장르로 만드는 데 관심 있는 나와는 달리 양다솔 본인은 스스로를 시트콤화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말은 온 힘을 다해 웃기게 하지만, 글은 웃음기를 거두고 쓰는 문장들로 가득했다. 사는 양다솔 말고 쓰는 양다솔은 자신이 얼마나 웃긴 사람인지 딱히 관심이 없는 듯했다. 나중에 알게 된 그녀의 지론에 따르면 말은 기뻐야 힘이 나고 글은 슬퍼야 깊이가 있으므로, 기쁨은 말로 하고 슬픔은 글로 쓰는 것이 최고의 전략이랬다. 그러므로 『간지럼 태우기』는 말로 다 할 수 없었던 슬프고 아프고 깊고 긴 이야기의 모음집이겠다.
  • 어느 할머니가 말했다. “조심조심 살아야 해. 삶은 유리처럼 깨지기 쉬운 거란다.” 그때 할머니의 표정이 어떠했던가. 기억이 흐릿하다. 어쩐지 나는 점점 불안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조심히 살아도 피할 수 없는 무수한 우연 중 무엇인가가, 내 삶의 아주 중요한 걸 아무렇지 않게 부수고 가버릴까 봐 두렵다. 내가 엉망이 된다고 하더라도 시간은 계속 흐를 것이다. 상실을 조금만 아는 채로 노인이 될 수는 없을까.
  • “그건 바로 ‘사랑을 알아보는 힘’이야. 우리의 멋진 친구 심보선이라면 사랑을 ‘다시 알아봄’이라고 표현할 것 같아. 우리가 먼 미래를 사랑하기 시작했단 것은 뭔가를, 특히 사랑할만한 것을 다시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말과 같아. 물론 자기 자신까지도 포함해서. 무릇 다시 시작하려는 자는 자기 자신도 다시 알아볼 수 있어야만 해.”
  • 이 소설을 완독할 때마다 낮잠을 잤다. 나를 뒤흔드는 사랑이 밤새 머물다 떠난 아침처럼 소진된 채로 잠이 들었다. 꿈의 배경은 아예메넴이었다. 인도의 덥고 음울한 마을. 농익은 마을과 풀벌레의 마을. 이 소설이 펼쳐지는 마을. 자신들을 합쳐서 ‘나’라고 생각하는 이란성 쌍둥이와, 가늘고 강인한 곱슬머리를 허리까지 기른 여자와, 팔이 하나뿐인 ‘작은 것들의 신’이 살던 마을. 책 속의 그 마을이 꿈에서도 나왔다. 축축하고 매혹적이고 아주 많이 안타까운 꿈이었다.
  • 모든 게 엉망이 된 와중에도 어떤 이들의 얼굴은 찬란하다. 불행을 바라는 건 나를 홀대하는 거라고, 절대로 재앙을 닮아가진 않을 거라고, 재앙이 원하는 대로 살진 않겠다고 말하는 이가 있다. 옆에는 바로 그를 닮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 세계는 망해가고 있으며 그들은 만났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부끄러움을 아는 존재를 만나고 싶었다. 강도와 살인과 폭력과 강간이 범람하는 와중에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무언가를 기억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그런 사람이라면 각박한 세상의 끝까지 같이 걸어갈 수도 있었다.
  • 그리하여 나는 어떤 거리낌도 없이 오늘의 서평을 썼다. 프리랜서로 버텨온 지난 5년 동안 사실ㅇ느 어떤 글도 혼자 쓰지 않았음을 기억해냈다. 서재에 꽂힌 수백 권의 저자들과 그 안의 무수한 인물들을 도움을 받아썼다. 물론 그들이 의도한 적 없는 도움이다. 그중에는 금정연도 있을 것이다.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에 관해, 역시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로 써내려간 그의 책을 자주 다시 읽는다. 실패를 모르고 싶어서. 또한 멋지고 싶어서. 어쨌든 문장이라는 도구를 계속 갈고 닦고 싶어서.
  • 솔직함에 대해서는 정말이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솔직함과 작품의 완성도는 무관한 경우가 많고 솔직한 글이 늘 좋은 글인 것도 아니다. 어떤 솔직함은 몹시 무책임하고, 어떤 솔직함은 너무 날것이라 비린내가 나며, 어떤 솔직함은 부담스러워서 독자가 책장을 덮어버리게 만든다. 알고 싶지 않은 정보를 쉴 새 없이 주절대는 친구처럼 눈치 없는 솔직함도 있다. 그러므로 솔직하게 쓴다는 피드백이 내게는 칭찬에 포함되지 않는다. 솔직함만으로는 좋은 글이 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