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마엘

본문: 창세기 16:10-16

조선의 많은 왕들 중에 가장 성군이 누구냐는 질문을 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세종대왕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틀린 말이 아닙니다. 세종대왕이 성군인 이유는 그분 자체가 위대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그분 주변에 뛰어난 인물들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분이 바로 황희 정승입니다. 그는 18년 동안 세종의 곁에서 정승으로 일했습니다. 황희는 집현전 학사들처럼 특정 분야의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장점은 공정하고 공평하게 모든 일을 처리하는 데 있었습니다. 그는 어떤 편도 들지 않았습니다.

만약 18년 동안 그가 어느 정파의 편에, 어느 집단의 편에, 어느 한 개인의 편에 서기 시작했다면 어떻게 세종이 성군이 될 수 있었겠습니까? 세종은 황희의 눈을 통해서 정사를 보고 세상을 보고 정치를 했을 텐데, 그랬다면 나라가 둘로 쪼개지고 잠잠할 날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황희는 항상 공정했고 누구의 편도 들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 모두의 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세력을 확장하려면 내 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 편을 만드는 데 골몰합니다. 하지만 지도자가 되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지도자가 네 편 내 편을 나누기 시작하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바로 적이 됩니다. 그러면 공동체는 그때부터 힘겨워집니다. 오늘 우리 시대가 통합의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온 세상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누구의 편도 들지 않으시고 반대로 모두의 편이 되어 주시는 아버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본문에서 이방 여인 하갈의 기도를 들으시고 하갈과 함께하셨습니다. 그녀의 소원을 들어주시고 그녀의 부르짖음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오늘 이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신 줄로 믿습니다.

간구하는 자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

사래의 학대를 견디지 못해 하갈은 집을 나갑니다. 집을 나간 하갈에게는 갈 곳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 그녀에게 말씀하십니다. 과거의 삶을 기억하게 하시고 그 수하에 돌아가서 복종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두 가지 중요한 말씀을 들려주셨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또 그에게 이르되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 (창 16:11)

하나님께서 두 가지 중요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첫째는 지금 임신한 아이가 아들이 될 것이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름을 지어 주신 것입니다. 둘째는 하갈의 고통을 다 들었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중에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하갈의 고통을 들으셨다는 사실입니다. 하갈의 고통을 들으셨다는 것은 하갈이 하나님께 기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르짖었기 때문에, 간구했기 때문에, "하나님 저 힘들어요, 저 살려주세요"라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고통을 들으신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갈이 이방 여인이라는 점입니다. 고향이 애굽입니다. 기도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님과 소통해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기도해야 하는지, 어떻게 기도하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지 한 번도 배운 적이 없고 경험한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갈의 기도를 들으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갈은 아브라함의 집에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아브라함 집에 살면서 아브라함이 어떤 식으로 하나님과 소통하는지, 어떤 식으로 하나님을 만나는지,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에게 어떻게 역사하시는지를 어깨너머로 보면서 배웠습니다. 318명의 군사를 데리고 조카 롯을 구원하기 위해 집을 떠났을 때 아브라함이 얼마나 두려웠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간구하며 기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함께하셨고, 롯을 구출하고 아브라함도 안전하게 집에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기도에 응답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자녀 때문에 걱정할 때 하나님은 짐승을 잡아 반으로 쪼개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횃불이 되어서 그 가운데를 지나가셨습니다. 이른바 저주 언약의 당사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하갈은 그때 배웠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소통하는 것이구나,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구나, 내가 이렇게 기도하면 하나님이 이런 식으로 응답하시는구나. 그래서 자신이 고통 가운데 있을 때, 힘겨울 때, 눈물 날 때, 갈 곳이 없을 때 하나님께 간구했고, 하나님은 그녀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서 중요한 두 가지 교훈을 배웁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은 간구하는 모든 자의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평범한 것 같지만 대단히 중요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이방 여인 하갈의 기도조차도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왜 사래는 10년 이상 기도했는데 하나님은 사래의 기도는 응답하지 않으셨을까요? 사래가 가나안 땅에 온 이후 10년 이상을 자녀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했는데, 하나님은 사래의 기도는 응답하지 않으시고 하갈의 기도는 즉각 응답하셨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합니까?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는 것과 이루어 주시는 것 사이에 간격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드리는 모든 기도를 우선 다 들어주십니다. 듣고 난 후에 그것을 응답하고 이루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때와 시기,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하나님은 하갈의 기도를 들으시고 즉시 응답해 주실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시고 즉각적으로 반응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래의 기도는 조금 더 기다려야겠다고 판단하셨습니다. 10년을 기다렸는데도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 그 기다림이 너에게도 유익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기도를 드리면 즉각 응답하시기도 하고, 기다리라고 말씀하시기도 하고, 다른 방법으로 인도하시기도 하고,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거절하시기도 합니다. 우리는 미련해서 무조건 내 방식대로 내가 원하는 시기에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이 보실 때 차라리 거절하는 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판단하시면 하나님은 거절하실 수도 있습니다. 지금이 아니라 10년 뒤에, 혹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시면 하나님은 기다림을 요구하실 수도 있습니다. 지금 당장 필요하면 하나님은 즉각적으로, 기도가 끝나자마자 응답하실 수도 있는 분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을 쉬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때와 시기를 알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저 기도할 뿐입니다. 간구하고 기도하면, 이루어지는 시기와 때는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감히 우리가 어떻게 전능자요 주권자 되신 하나님께 그 시기와 때를 강요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보실 때 가장 합당한 시기에 하나님은 응답하시고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갈의 기도뿐만 아니라 이방인의 기도도 일일이 다 듣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열왕기하 5장에 보면 나아만 장군은 이방인이요 아람 장군입니다. 그는 훌륭한 장군이었지만 나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사를 통해서 그의 나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요나서에 보면 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 백성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죄악이 관영해서 그대로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시고 요나를 보냅니다. 그 백성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했습니다. 한 번만 살려달라고, 우리를 심판하지 말아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들을 심판하지 않으셨습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옷을 입은지라 ...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욘 3:5, 10)

사람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합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알 일은 때와 시기는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그저 하나님 앞에 기도를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백성들의 사명인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