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야고보서 4장 7-8절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오늘은 야고보서 공부 다섯 번째 시간으로, 야고보서 4장을 살펴보겠습니다. 세상에 대한 경고인데, 이는 세상을 향한 경고가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세상과 신앙 공동체를 오가며 사는 성도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나님 앞에서 바른 인생인지를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야고보서 말씀은 사실 직면하기가 상당히 부담스럽고, 읽고 있기가 거북스럽기도 하며, 두렵기까지 합니다. 말씀이 때로는 칼날처럼 우리 마음을 후벼파기 때문이며, "지금 잘하고 있다, 괜찮다, 그렇게 해도 된다"라는 위로보다 지적하는 말씀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이런 부분도 직면하고 살펴보아야 합니다. 너무 위로하는 말씀, 괜찮다는 말씀만 듣다 보면 한쪽으로 치우치기 때문입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서 경각심을 가지고 종말의 때를 깨어서 함께 신앙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첫 번째 질문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싸움 혹은 다툼이 일어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절을 보십시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여기서 "너희 중에"라는 말은 이 편지를 받는 열두 지파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말합니다. 그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너희 중에"라는 말은 교회 공동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 공동체 안에 싸움도 있고 다툼도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교회가 완벽하거나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갈등도 어느 정도여야 하는데, 이것이 다툼이 되고 싸움이 되어 통제가 되지 않고, 그것 때문에 하나님의 몸 된 교회가 분열되고 나누어지면 심각해집니다. 이런 일은 오늘날 현대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옛날 과거 이 시절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가 이것을 아주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너희 중에 다툼이 어디로부터 싸움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그 싸움이 나는 이유를, 교회 공동체가 다투는 이유를 아주 적나라하게 설명합니다. 1절 그다음을 보시면,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첫째는 정욕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정욕을 헬라어로 보면 헤도네(ἡδονή)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이것은 통제되지 않은 욕구를 뜻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쾌락이라는 말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통제되지 않은 욕구가 있을까요? 교회 공동체에서 성도들이 어떻게 통제되지 않은 욕구를 가지고 살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것이 굉장히 의아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이 의아한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예를 들어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합시다. 좋은 의미에서 음악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서 찬양도 하고 연주도 하고 노래도 부릅니다. 그런데 교회는 찬양만 있어서 되는 곳은 아닙니다. 말씀도 있어야 되고 기도도 있어야 되고 다 함께 어우러져야 하는데, 마치 교회에 오는 것이 아니라 찬양대를 하려고 교회에 오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이것은 통제되지 않은 욕구입니다. 세상에서 노래를 잘한다고 교회에 와서도 이것만 계속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공예배, 우리가 주일에 말씀을 드리는데 찬송가를 서너 장 부릅니다. 그런데 "목사님 한 열 장 정도 부릅시다. 오늘 찬송 목이 쉴 때까지, 목 터져라 한번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그 자체로만 보면 틀린 말이 아닌데, 찬양하다가 집에 갈 수는 없습니다. 그것이 절제되고 통제되어야 합니다.
계산을 아주 잘하는 은사를 가진 분이 계시다고 합시다. 모든 것이 계산이 완벽합니다. 이 사람은 숫자에 아주 민감하고 계산도 잘해서, 보면 착착착 A부터 Z까지 딱 견적이 나오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재능을 교회에 그대로 적용하면 그것을 힘들어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숫자에 좀 약한 분들도 계시고, 그렇게 얽매이는 것을 싫어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통제되고 절제되는 재능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독서 좋아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것인데, 그것도 절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기도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 예배 시간에 방언 기도를 한 삼십 분씩 하자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계속해서 주장하다 보면 교회에 다툼이 생기고 갈등이 생깁니다. 그렇게 주장하시는 분들은 "그것이 뭐가 나쁘냐? 당연히 교회는 찬양도 있어야 되고 기도도 있어야 되고 정확한 계산도 있어야 되지 않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통제되지 않은 개인의 욕구는 교회를 분열시킵니다.
그 통제는 누구에 의해서 되어야 합니까? 말씀에 의해서 통제되어야 합니다. 성령에 의해서 정도껏 해야 합니다. 그리고 적절하게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범위에서 통제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통제되지 않은 욕구는 교회를 분열시킵니다. 스스로는 그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전체를 보면 이것은 굉장히 기형적인 교회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공동체에 다툼이 일어나는 이유입니다. 2절을 보시면, "너희는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여 또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므로 다투고 싸우는도다." 얻지 못하고 능히 취하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욕심을 내어도, 살인하고 시기하여도 얻지도 못하고 취하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목적어가 빠졌습니다. 무엇을 얻지 못하고 무엇을 취하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개인의 영광과 자기가 원하는 목적입니다. 교회에서, 신앙 공동체에서 아무리 욕심내고 아무리 살인하고 아무리 시기해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취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살인이라는 말은 진짜 형제를 죽인다는 말이 아니라 죽일 만큼 미워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해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고 취하지 못합니다. 자기 영광을 취하려고 하면 절대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몸 된 교회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그 시도를 막으시는 것입니다.
압살롬을 보십시오. 압살롬이 왕권을 차지하려고 얼마나 오랜 세월 공을 들였습니까? 왕궁 앞에 서서 백성들의 마음을 얻었습니다. 쿠데타가 성공해서 팔부 능선까지 넘었는데 마지막에 미끄러집니다.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했습니다. 자기 영광을 위해서 아나니아와 삽비라도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했습니다. 교회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자기 재산을 다 팔아 가지고 일부는 감추고 얼마만 가지고 왔는데, 성령께서 딱 보고 아셨습니다. 자기 영광을 추구하고 자기 일을 위하는 것은 아무리 욕심내고 어떤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해도 절대 취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 때문에 다툼이 나고 그것 때문에 분열이 생깁니다. 그래서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사람들, 그 분열시키는 일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한 사람 혹은 두 사람이 자기 영광을 취하는 일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면 공동체가 하나가 되고 교회가 성장하고 교회가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잘 유지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기 영광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일은 자기를 통제시켜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어느 정도껏, "아 여기까지, 교회의 덕을 세우는 범위 안에서" 통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안 되면 끊임없이 분열입니다. 다투게 됩니다. 그런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이 어디를 가든 트러블 메이커가 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자기 빼고 다 그렇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자기 영광을 위해서 일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면 타인도 살필 수 있고 공동체도 살필 수 있고, 멈출 수도 있고 말을 삼킬 수도 있습니다.
3절입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것, 이것이 이기적인 욕구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것은 자기 이기심입니다. 이기심은 자기 중심성입니다. 하나님 중심이어야 되는데, 그리스도 말씀 중심이어야 되는데, 자기 중심으로 나가니까 공동체가 분열됩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이런 사람들이 교회 공동체에 있으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너희는 이것을 주의하라고 일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