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 우리가 함께 살펴본 내용은 교회와 성도들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었던 교회에 대한 내용, 어렴풋하게 또 대충 알고 있었던 내용과는 조금 달랐습니다. 두 가지를 설명했는데, 첫째로 교회는 일치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이미 아는 이야기입니다. 교회가 일치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교회는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야 한다는 것 말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특별히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성령은 기도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기도하고 간절히 구하면 교회가 일체를 이루어 하나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성장해야 하는데, 교회 성장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한 것처럼 건물을 크게 짓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유형의 성장은 그다음 이야기이고, 가장 중요한 성장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가는 것입니다. 성도 각자의 믿음의 성장이 교회의 성장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것을 베드로 식의 언어로 표현하면 '은혜와 지식에서 자라가라'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위에서부터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고, 그다음 내가 노력해서 알아가는 지식이 있는데, 이 두 가지가 하나가 될 때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일치와 성장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그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하는 성도의 삶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에베소서 말씀은 쭉 올라가서 4장에서 정점을 찍습니다. 교회를 이야기하고, 그다음에 그 교회에서 신앙생활하는 성도들의 삶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4장 말미의 이야기와 5장의 빛의 자녀들 된 성도의 삶을 다루겠습니다. 우리 교재 24쪽을 보시면 3번 질문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제대로 배운 성도들은 공동체를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몇 가지가 나옵니다. 네 가지 정도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25절을 보니까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에게 중요한 것은 거짓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짓말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왜 거짓을 말할까요? 교회에서 남을 속일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거짓을 말할 때는 목적이 있을 때입니다. 남을 이용해 먹으려고 할 때, 이 사람을 통해서 뭔가 목적을 이루고 이 사람을 수단으로 삼으려고 할 때 거짓을 말하게 됩니다. 목적이 있을 때 그렇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냥 담백하게 있는 그대로 말하지, 왜 굳이 머리 써가면서 거짓을 말해야 할까요?
이 말씀은 거짓을 말하지 말라는 것, 곧 속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도를 있는 그대로 대하라는 것입니다. 나도 있는 그대로 대우받고, 상대방도 있는 그대로 대하라는 뜻입니다.
두 번째로,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 분노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가지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예수님도 분노하지 않으셨습니까? 예수께서 성전을 정화하시며 다 뒤집고 다 내쫓으셨는데, 거룩한 분노는 품어도 되지 않습니까?" 하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이 아니지 않습니까? 분노해 보셨습니까? 분노하면서도 정신 바짝 차리고, 분노가 거룩의 선을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시작은 거룩하게 시작했습니다. 시작은 '이거 바로 잡아야 되겠다'고 해서 분노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말도 거칠게 나가고 행동도 거칠어집니다. 또 분노가 한번 터지기 시작하면 수습하기가 상당히 어렵습니다. 뒤처리 하기가 힘듭니다. 출구 전략이 모호해집니다. 분노했는데 그다음 날 갑자기 웃고 나타나기도 좀 어렵고, 이 뭔가 분노를 마무리하기 쉽지 않습니다. 나의 컨셉은, 나의 인간성은 계속 환한 얼굴로 있어야 하나, 계속 분노하고 있어야 하나, 이게 참 마무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금 여기서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분을 내더라도 그날 해결하라고 했습니다. 서로 사과하고 용서하고 용서받고 끝내야 합니다. 또 분노는 마귀가 틈타기 가장 좋은 재료이기 때문에 분을 내지 말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불의와 온갖 탐욕이 공동체 안에 차고 넘치는데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것은 분노로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분노로 해결됩니까? 시스템을 잘 만들어야 합니다. 마음속에는 거룩한 분노를 가지고 있되, 이것을 지혜롭게 잘 해소해 나가는 좋은 방법들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것입니다. 한번 불 일듯 분노를 확 낸다고 해서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그런 조직을 만들고, 시스템을 만들고, 구조를 만들고, 틀려먹은 것이 있으면 그런 사람들과 연대해서 좋은 공동체를 만들어가려고 노력하고 애를 써야 합니다. 그것이 더 지혜로운 것입니다.
여러분, 누가 더 겁납니까? 소리 크게 지르는 사람이 겁납니까? 아니면 조용조용 차근차근 하나둘씩 고치고 개혁하는 사람이 더 무서운 사람입니까? 후자가 훨씬 더 무섭지 않습니까? 그렇게 해 가야 합니다. 분노한다고 달라지는 것,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마귀에게 일할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이 참 재미있게 들렸습니다. 왜냐하면 '도둑질하지 말라' 하면 되는데,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라'고 했으니까요. 그러면 이 말은 에베소 교회 안에 도둑질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도둑질하는 사람을 다 알고 있는데, '너희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는 도둑질하지 마' 하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 도둑이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 지갑 도둑 맞아 보셨습니까? 가방 도둑 맞아 보셨습니까? 있겠지요. 물론 있습니다. 저도 그런 것 본 적이 있으니까요. 헌금 도둑도 있고, 가방 도둑, 지갑 도둑, 옷 도둑 다 있는데, 그런 도둑 말고, 그런 큰 도둑, 그런 진짜 경찰서 가야 되는 도둑도 있는데, 또 다른 도둑들도 많습니다.
교회 안의 그중에 한 도둑이 시간 도둑입니다. 시간 도둑질 당해 보셨습니까? 시간 도둑질. 지금 제가 여러분들을 여기 묶어 놓고 있지 않습니까? 물론 오늘 예배드리려고 왔는데, 목사가 성도들을 불러서 이 자리에 앉혀 놓고 엉뚱한 소리, 딴 소리, 딴 나라 소리, 이 나라 소리, 저 나라 소리, 자기 신변잡기 이야기 다 하면 그것이 시간 도둑질입니다. 그것이 도둑놈입니다. 말씀 준비 제대로 하지 않고 남의 이야기하고 이상한 이야기하면 그것이 시간 도둑 아닙니까? 아까운 시간, 그 시간에 잠이나 자지, 밥도 못 먹고 이 자리에 와 있는데, 그것이 시간 도둑입니다.
또 약속 시간 정해 놓고 약속 시간에 늦게 오면 그것도 도둑놈입니다. 시간 정확하게 안 지키면 시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약속 시간을 했으면 지켜야 합니다. 칼같이 지켜야 합니다. 그것이 도둑질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