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살로니가전후서 특강 5 - 그가 이루시리라 (살전 5장)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24절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아멘"


오늘은 데살로니가전서의 마지막 장인 5장을 함께 나누는 시간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가 5장, 데살로니가후서가 3장으로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가 지금까지 공부한 바에 의하면 데살로니가 전후서 말씀의 주제는 성도 한 사람 한 사람, 각 사람 각 사람을 교회라고 하셨습니다.

교회는 한 사람 한 사람으로서도 교회지만,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머물러 있지 않고 끊임없이 지속적으로 성장해 나가야 되는데, 그 성장을 멈추면 곤란하다고 했습니다. 어디까지 성장해 나가야 하느냐, 하나님이 우리를 기뻐하시는 데까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까지 성장하라 하셨고, 그 두 가지 방향으로 첫째는 우리의 거룩이라고 했습니다. 음란에 물들지 않고 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형제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4장 뒤쪽에 보면 종말과 재림에 대한 말씀을 하셨고, 오늘 5장도 역시 주의 날이 이르는 것, 즉 재림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재림에 대한 주제는 상당히 중요한데, 왜냐하면 그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에게는 임박한 종말 사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것을 본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곁에 계셨던 천사들이 "너희가 본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 하셨지 않습니까? 그러니 그날이 당장 내일 올지, 당장 다음 주에 올지 잘 모르기 때문에, 이분들은 항상 임박한 종말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곧 오실 것이다, 곧 오실 것이다'라는 것까지는 좋은데, 곧 오시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일도 하지 않고 그냥 드러누워 있거나, 혹은 교회에만 와 있거나, 그런 문제를 지금 교회 안의 문제로 꼽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극복하고 건강한 종말 사상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에 대해서 오늘 5장이 말씀합니다.

1. 종말의 때와 시기

첫 번째 질문은 주의 날의 시기에 대한 것입니다. 1절에 보니까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특정하고 있는 때와 시기는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때와 시기입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재림의 때와 시기에 대해서 너희에게 쓸 것이 없다. 그러면 이 말은 너희가 다 알고 있다, 너희가 너무 잘 알고 있다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2절에 보니까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주의 날이 어떻게 온다고요? 도둑같이 옵니다. 도둑이 우리에게 연락해서 "내가 당신 집에 언제, 몇 월 며칠 몇 시 몇 분에 방문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면, 이는 도둑이 아니고 손님이죠. 도둑은 예고하거나 갈 때를 알리거나 그러고 가지 않습니다. 도둑은 예고 없이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의 날이 밤에 도둑같이 온다는 말은 갑자기, 부지불식간에, 불시에 온다는 뜻입니다.

3절에 보니까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라고 했습니다. '그들'이라는 말은 이 문맥상 보면 불신자들을 얘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아래 있지 않는 자들, 믿지 않는 자들, 믿음이 없는 자들은 안전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평안하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는 거야 걱정하지 마, 안전해, 편안해, 그냥 걱정하지 말고 머물러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오늘날 우리의 의학 상식과 우리의 문화권에서는 이 비유가 잘 와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상 예정일을 알고 있습니다. 아이가 언제 나오는지 날짜를 다 알고 있고, 그 날짜에 맞춰서 제왕절개해서 아이를 끄집어내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거에는 그런 게 없으니까, 임신한 여자가 해산하는 건 확실한데 진통이 언제 올지, 언제 산파를 집에 불러다가 아이를 낳아야 될지 그걸 모르니까, 지금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때는 반드시 옵니다. 배가 불러오면 그때가 가까이 오는데, 그때는 반드시 오고 한밤중에 찾아올 수도 있고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이와 같다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말씀을 보면 이런 말씀이 있죠. "그러나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은 하나 아니십니까? 하나님만 알고 예수님도 삼위인데, 성령님도 모르고 예수님도 모르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정말 종말에 대해서는 너무너무 신비롭게도 하나님만 아신다고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그렇다고 하면 그렇다고 우리가 받아야 되지 않습니까?

그만큼 종말에 대해서는 그때와 시기를 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때부터 무조건 이단입니다. 하나님은 종말의, 그리고 예수님의 재림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감추어 두시고 부지불식간에 온다는 것만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두 가지를 얘기하죠. 하나는 종말은 반드시 있다, 재림은 반드시 있다. 두 번째는 그때와 시기는 아무도 모른다. 이것만 확실한 사실입니다. 더 이상도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없습니다. 이것만이 종말에 대해서 확실한 사실입니다.

1-1. 깨어 있는 자의 자세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걱정하지 마, 안전해, 평안해"라고 말하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그러면 종말을 어떻게 준비해야 되느냐, 이 준비하는 자의 자세를 설명해 줍니다.

4절에 보니까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날이 도둑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아까는 도둑같이 임한다고 해놓고서는 이제는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무슨 뜻이냐면 믿음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하나의 중요한 사인을 주겠다는 얘기입니다. 이것을 깨닫고 이때를 알아챌 수 있는 한 가지 중요한 힌트를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힌트가 아주 중요한 것 같아 보이는데,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너무너무 잘 알고 있는 거예요.

그게 뭐냐면 6절에 보면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다른 이들은 누구예요? 믿음이 없는 자들, 불신자들입니다. 그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고 했습니다. 깨어 정신 차리라, 그게 답이에요. 깨어 정신 차리라. 어떤 시기를 설명해 주지 않았습니다. 어떤 특정한 징조를 말씀하지도 않았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자지 말고 깨어 정신 차리라, 이것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정신 차리다'는 헬라어로 '네포(νήφω)'라고 하는데, 술 취하지 않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분별력을 가지다는 뜻입니다. 술 취하는 것을 대표적으로 우리가 얘기했는데, 술 취하면 분별력이 없어지죠. 판단력이 사라집니다. 그러니까 제어를 못하니까 해서 되는 말, 해서 안 되는 말, 해도 되는 행동, 해서는 안 되는 행동들을 막 다 해버리지 않습니까? 말이나 행동이나. 그러니 종말의 때를 사랑하는 사람은 정신을 차려야 되는데, 그 어떤 것에서도 취해 있으면 안 됩니다. 분별력을 가지고 정신 차리고 살아야 된다는 뜻입니다.

대표적으로 술을 얘기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상당 부분 중독되어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취미에 중독된 사람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 거기에 취해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다 보면 그 중독되어 있는 것이 자신의 인생을 끌고 갑니다. 거기에 중독돼 있으니까, 거기에 취해 있으니까 분별하지 못하고, 항상 나의 시간표는 그 취미, 내가 좋아하는 것, 거기에 항상 맞춰져 있습니다. 그것이 자기 인생의 준거가 됩니다. 그건 대단히 위험한 거죠. 정신 못 차리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