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특강 5 - 그리스도인의 결혼과 성 (고전 7장)

오늘은 고린도전서 특강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주제는 그리스도인의 결혼과 성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은 지난 시간의 맥락을 가지고 읽어야 충분히 이해가 잘 됩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실 문제가 굉장히 많은 교회였습니다. 그중에 가장 심각한 것이 첫 번째 다룬 문제였는데, 교회가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교회에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가 있었습니다. 사실 게바파나 그리스도파는 소수였으니 논외로 하더라도, 초대 개척 목사인 바울과 2대 목사인 아볼로파, 이 두 파가 나뉘어져서 굉장한 갈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과 아볼로는 그런 갈등을 자기가 조장한 적이 없습니다. 그저 성도들끼리 '나는 바울이 맞다', '나에게는 아볼로가 맞다' 이러면서 자기들끼리 계속 나누고 갈등한 것입니다. 그 문제를 지적하고 그 문제를 해소하고 풀어갈 수 있는 방법을 바울이 제시했습니다. 4장까지가 그랬습니다.

지난 시간 5장과 6장 이야기는 교회 안에 있는 음행에 관한 문제였습니다. 음행과 세상 송사에 대한 문제였는데, 교회 안의 음행은 그저 한 가지 사건으로 비롯된 문제가 아니라 고린도라는 그 지역 전체의 음란한 분위기, 그런 세상적인 것이 교회로 그대로 들어온 것입니다. 교회는 이것을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인 것입니다. 앞서가는 교회라는 명분으로 "우리가 이걸 받아들이지 못하고야 세상을 따라가는 교회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지금 시대가 이렇게 흘러가고 있는데 교회만 이걸 막는다고 되겠는가" 이런 논리로 교회가 세상의 논리를 그대로 가지고 들어온 것을 정면으로 책망한 내용이 지난 내용입니다. 거기에 연결해서 오늘 그리스도인의 결혼과 성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맥락을 가지고 그 느낌을 가지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1. 결혼 제도의 목적

1절입니다.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질문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바울에게 이 질문을 한 것입니다. 어떤 질문을 했을까요?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그 당시 고린도 사회, 고린도 교회가 아닌 고린도라는 사회, 이방 사회는 자기 성의 자유를 주장하는 사회적 분위기였습니다. 요즘처럼 성적 결정권이 자기에게 있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나는 내 몸을 내 마음대로 하는데 너희가 왜 문제냐?' 이런 분위기가 교회 안에 그대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지금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즉 교회 안에 일어나는 음란한 문제, 음행의 문제를 피하기 위하여 결혼이라는 제도를 십분 활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그 당시 사회에서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요즘보다 훨씬 더 자유롭고 훨씬 더 음란한 세대였습니다. 요즘도 만만치는 않으나 요즘과 거의 비슷하다고 보면 되지만, 결혼이라는 제도가 사람들을 속박하지 않는 그런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결혼하지도 않고, 결혼했다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매이지 않고 그냥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자기 몸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하는 대로 그냥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이런 음란한 문제,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결혼 제도를 가지고 오는 것이 훨씬 더 좋겠다고 바울이 말하고 있습니다.

1-1. 부부 상호 간의 의무

3절을 보시면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이 이래서 위험한 책인데, 만약 이 4절 말씀만 그냥 그대로 똑 떼서 오면, 이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똑 떼서 오면 남편이 아내에게 말할 것 아닙니까? "너의 머리부터 발끝까지는 내가 주장한다. 그러니 너의 머리 스타일은 내가 말하는 대로 해야 되고, 너는 옷도 이렇게 입어야 되고, 너는 어디 가서 다른 남자와 말도 해서도 안 되고, 성경에 그렇게 써 있잖아. 여자는 남편이 주장하는 거다. 너도 나를 주장해라. 아내도 남편을 주장한다." 그런 식으로 논리가 가는데 그건 틀린 말입니다. 맥락을 전혀 무시하고 고린도전서 성경 전체를 전혀 무시하고 그냥 떠드는 것입니다.

지금 이 맥락에 의해서 보면 여기 '주장하다'라는 말이 나오는데 '엑수시아(ἐξουσία)'입니다. 통제 아래 두다, 통제하에 두다라는 말입니다. 즉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부부가 서로를 통제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의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지금 이 교회의 심각한 상황이 음행의 문제 아닙니까? 어떤 한 사람이 자기 아버지의 아내를 취한 것입니다. 이 한 가지 사건이 문제가 아니라 교회 전체에 고린도 사회의 분위기가 들어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회 분위기를 우리가 깨뜨리고 교회가 음행의 죄를 피하기 위해서는 부부가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서로 묶여서 서로가 서로를 주장하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고린도 교회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당시의 맥락을 배제하고 그냥 읽고 그냥 마음대로 적용하면 이것은 자기 마음대로 전하는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굉장히 위험합니다.

1-2. 성적 의무의 예외

부부의 성적 의무가 잠시 예외를 얻을 때는 언제입니까? 5절입니다.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부부의 성적 의무가 잠시 면제되는 기간이 있는데, 그것은 서로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중요한 것은 성적 의무의 면제에 있는 게 아닙니다. 여기에 중요한 것은 기도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기도하기 위해서 부부 간의 성적 의무까지도 면제받을 만큼 기도는 모든 것에 우선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일을 집중하고 모든 일에 헌신하라는 것입니다. 방점이 거기에 있는 것입니다.

2. 결혼과 독신의 은사

그다음 바울이 말하는 결혼과 독신의 다양성을 말해보겠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바울이 들어가기 시작하는데요. 7절입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어떤 상태입니까? 독신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독신의 상태입니다. 결혼했다가 끝난 게 아니고 한 번도 결혼하지 않은 총각입니다. 독신의 상태입니다.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바울은 독신을 은사라고 본 것입니다. 독신을 은사라고요. 은사는 누가 주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은사의 전제가 무엇입니까? 은사의 전제는 성령입니다. 성령을 받은 자에게 하나님은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해서 은사를 주십니다. 그런데 바울은 독신을 은사로 받습니다. 즉 독신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교회의 덕을 세우는 데 아주 유익하고, 아주 유용하게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2-1. 독신 은사의 기준

그러면 독신의 은사를 이 사람이 받았는지 받지 못했는지를 어떻게 압니까? "나는 사실은 진짜 결혼할 생각이 없어서 안 했어요." 그런데 뒤로는 온갖 나쁜 짓 다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에게는 "나는 독신의 은사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진짜 독신의 은사입니까 아닙니까? 바울이 지금 여기서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8절을 보시면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에게 이르노니" 여기 생략된 게 있습니다. '이르노니' 다음에 '하나님께 받은 은사라면' 즉 '독신의 은사를 받았다면'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 남자든 여자든, 과부들, 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난 사람 혹은 아내가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 그런 사람들에게 이르노니 여러분이 하나님께 독신의 은사를 받은 것이 확실하다면 나처럼 그냥 지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아느냐. 그다음 구절입니다.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이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절제할 수 없거든'이라고 했습니다. 절제할 수 있으면 독신의 은사를 받은 것이고, 절제할 수 없으면 독신의 은사를 받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아주 명확한 기준을 딱 제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절제할 수 없는데 지금 고린도 지역의 그런 분위기를 가지고 "나는 절제하기 싫어요, 절제할 수도 없고, 그래서 결혼하지 않아요. 왜? 자유 연애를 즐기기 위해서"라고 해놓고 교회 들어와서는 "나는 독신의 은사를 받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그런 소리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 공동체를 깨뜨리고 교회를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바울의 기준은 굉장히 명쾌하고 실용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