룻기 특강 5 - 보아스와 룻 (룻기 4장)

본문: 룻기 4장 9-10절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고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맞이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의 이름으로 세워 그의 이름이 그의 형제 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아니하게 함에 너희가 오늘 증인이 되었느니라 하니"

오늘이 룻기 공부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여러분, 룻기를 공부하시면서 느낀 점이 어떤 것이 있습니까? 원래 무엇을 공부하면 남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그냥 "룻이 팔자 고쳤다더라, 멋진 남자 만나서 팔자 고쳤다" 이렇게만 생각하시면 룻기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룻기를 공부했다고 하면 그런 피상적이고 단순한 논리로 접근하시면 곤란하지 않겠습니까? 적어도 룻기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핵심 메시지 정도는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데, 몇 가지 정도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1. 룻기의 핵심 메시지

1-1. 상호적 관계의 책

지금까지 우리가 공부한 이야기를 보면, 첫째로 룻기는 관계에 대한 책입니다. 지난주에도 제가 짧게 말씀드렸는데 한번 보십시오. 룻과 나오미, 그리고 나오미와 룻, 그리고 룻과 보아스, 보아스와 룻, 그리고 또 나오미와 보아스, 이 관계들이 계속 상호적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처음에는 룻이 나오미를 돕지 않습니까? 나오미가 얼마나 불쌍합니까. 남편 죽고 아들 둘 다 죽고, 노인이 혼자 베들레헴 고향으로 돌아가는데 그것을 차마 룻이 혼자 시어머니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쫓아갔습니다. 따라간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나로 어머니를 떠나라 말하지 마십시오. 어머니의 백성이 내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내 하나님이 될 것입니다"라고 고백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룻이 나오미를 도운 것입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에 가서도 계속 돕습니다. 어떻게 돕습니까? 이삭을 주워다가 시어머니를 봉양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일방적이지 않습니다. 그다음에 결정적인 순간, 나오미가 룻을 돕습니다. 결정적인 한 방이 있습니다. 이 할머니가 말합니다. "네가 타작 마당에 향 뿌리고 새 옷 입고 단장하였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그리고 조용히 들어가서 이불 밑에 누워 있거라. 그러면 나머지는 그가 알아서 할 것이다." 이런 지혜가 나오미에게 있었습니다. 나오미가 그래서 룻을 결정적으로 돕습니다.

룻과 보아스를 보십시오. 보아스가 룻을 돕습니다. 식탁으로 초대합니다. 같이 먹자고 합니다. 일꾼들에게 이야기합니다. "이삭을 조금씩 뽑아서 흘려 버려라. 꾸짖지 마라. 곡식 단 사이에서 줍게 하라." 특혜를 줍니다. 도와준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오늘 우리가 볼 내용이지만 기업도 물러 주고 다 해 줍니다.

그런데 룻은 보아스에게 해 준 것이 없습니까? 보아스가 고백하지 않습니까? "너의 처음 인애가 나중보다 더하다"고 했습니다. 처음 인애는 나오미를 도운 것이고, 나중 인애는 "네가 부하거나 가난하거나 젊은 자를 따라가지 않았다. 나를 선택해 주어서 고맙다. 그리고 너는 집안의 대를 잇고 집안의 이름의 명맥을 이을 훌륭한 여인이다"라고 칭찬해 줍니다. 자기도 선택받았음에 대한 고마움을 룻에게 표현한 것입니다. 그래서 룻과 보아스도 상호적입니다.

그렇다면 나오미와 보아스는 어떤 관계입니까? 보아스가 나오미에게 룻을 떠나보낼 때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첫날 그 밭에 와서 일하고 돌아갈 때 한 에바, 이십 리터나 들고 갔습니다. 그다음에 보아스의 타작 마당에 와서 새벽까지 누웠다가 일어나 갈 때는 여섯 번이나 되어서 보내주었습니다. 빈손으로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나오미가 보아스에게는 어떻게 했습니까? 며느리 룻을 지켜 주었습니다. 젊은 여인을 대를 잇게 해주고, 예수님 족보에 들게 해주고, 결론적으로 그래서 이것이 다 상호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사실 보아스와 룻과 나오미를 보면, 보아스가 이 사람들에게 도움받을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보아스는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입니다. 부에 강한 사람, '이쉬 기보르 하일'(אִישׁ גִּבּוֹר חַיִל)이라 했습니다. 다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도움받을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 공동체는 참 특별한 것이, 서로 돕는 공동체라는 점입니다. 이것이 너무 신기합니다. 세상은 일방적인데, 교회는 상호적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교회학교 교사들, 교회에서 월급 받습니까? 한 푼도 받는 것 없습니다. 주일날 자기 시간 드리고 자기 열정 드리고,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주머니 다 털어서 먹이고 돌보고, 그리고 아이들 길러 가면서 시간 들이고 몸으로 고생하면서 열심히 일합니다. 그런데 그 일을 이십 년, 삼십 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중독된 것입니다. 좋은 의미에서 중독인데, 내가 도움을 받기 때문입니다. 해 봐야 압니다. 그것을 하면서 내가 그 아이들에게서 받는 은혜가 더 크니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충족되고 채워지니까, 은혜가 되니까, 감사하니까 그냥 쏟아붓기만 하는데도 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머니에서 돈 나가고 시간 들이고 몸으로 고생하는데, 그것 이상으로 훨씬 더 많은 것을 얻는 것입니다.

다른 것 다 마찬가지 아닙니까? 교회에서 봉사하는 모든 자리가 그렇지 않습니까? 바깥에서 주차 안내 봉사하시는 분들, 여름이면 덥고 겨울이면 춥습니다. 그런데 왜 합니까? 잘못하면 욕도 먹고, 주차 잘못하면 막 화내고, 그런데 왜 합니까?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좋으니까 합니다. 서로 상호적인 것입니다. 서로 그 꼬맹이 어린아이가 아무것도 필요 없는, 돈 많은 어른들에게 기쁨을 주는 것입니다. 감사와 기쁨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목사가 교인들 심방을 갑니다. 그러면 어른들은 굉장히 고마워하십니다. 어르신들, 할머니들은 진짜 좋아하십니다. 심방 왔다고, 목사가 이 누추한 데 와 주었다고 좋아하십니다. 그런데 가서 더 채워 받고 오는 것은 목사입니다. 더 많이 배우고 옵니다. 주고 오는 것이 아닙니다. 주는 것이라고는 말씀 읽고 같이 기도하고 이야기 들어 드리는 것밖에 없는데, 돌아오면 훨씬 더 많이 배워 옵니다. 그것이 상호적인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 공동체입니다.

지금 여기 룻과 보아스와 나오미의 관계가 일방적이지 않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좋은 관계입니다. 이것이 정말 건강한 관계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내가 섬기고 일하는 것, 거기에서 내가 얻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누리는 것, 그것으로 인해서 누리고 그것으로 인해서 내 인생이 풍족해지고 풍성해지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니까 하는 것 아닙니까? 우리가 그렇습니다.

1-2. 율법의 현실화

둘째로 룻기는 율법이 현실화되어 가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이 룻기의 배경이 사사시대 아닙니까? 사사시대는 지파들이 다 도망가버린 시대입니다. 전부 다 내버린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문화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있는데 현실에는 이 말씀이 없습니다. 그런데 여기 이 공동체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숨 쉬고 있는 공동체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합니까? 율법이 현실이 되려면 거기에 무엇인가가 첨가되어야 합니다. 무엇이 들어가야 됩니까? 사랑이 들어가야 합니다.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습니다. 지금 여기 토지 무르기 율법, 토지 무르기, 계대 결혼이라는 율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에 있는 율법입니다. 그런데 그 당시 사사시대에 율법이 다 박살나고 다 무너졌는데, 이 공동체만 이것이 살아 있습니다. 왜입니까? 사랑이 있으니까 그렇습니다. 사랑은 무엇을 전제로 합니까? 희생을 전제로 합니다. 손해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하나님의 말씀이 왜 살아서 꿈틀대고 현실로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는가, 왜 하나님의 말씀이 역동성을 잃어버렸는가 생각해 보면, 그것이 희생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손해 보는 것을 잘 안 하려고 하니까 그렇습니다. 그것은 성도고 교회고 가정이고 마찬가지입니다. 희생하고 손해 보고,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덜 누리고 덜 가지고, 아니면 아예 다 쏟아붓고,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꿈틀대는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