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특강 5: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화평 (5장)

로마서 5장 1절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오늘은 로마서 특강 다섯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네 번의 시간을 통해서 로마서를 조금 맛볼 정도로 살펴보았는데, 사실 로마서를 보면 볼수록 '이것이 쉽지 않구나, 대충 봐서는 잘 이해하지 못하겠구나' 하는 것을 조금씩 깨닫고 느끼게 됩니다. 세 번 정도 보면 좋겠습니다. 먼저 미리 예습을 한 번 하시고, 함께 공부하는 시간에 두 번째 보시고, 그리고 다시 복습하시고, 그렇게 세 번 보시면 충분히 이해하고 또 마음에 새겨질 것입니다.

지난 시간 로마서 4장 아브라함 이야기를 했는데, 그 아브라함 이야기는 로마서가 말하는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아주 본질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기억이 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브라함 믿음의 특징을 두 가지 이야기했습니다. 첫 번째 아브라함 믿음의 특징은 현세 기복적인 신앙이 아니고, 다가올 미래와 그다음, 그다음, 그다음까지를 함께 포괄하고 아우르는 믿음입니다. 그것이 아브라함 믿음의 특징이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부활 신앙이라고 했습니다.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믿음, 그 부활 신앙이 아브라함 믿음의 가장 본질적인 특징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우리가 행위를 하는 것은 쉽지만, 아브라함처럼 먼 미래 이야기를 마치 지금 나에게 올 것처럼 있는 그대로 믿는 믿음이나, 사랑하는 내 아들을 여기서 내가 잡았는데 그가 다시 살아날 것을 믿는 믿음은 사실 어려운 것이 분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의 이 확실하고 분명한 믿음을 로마서에서는 믿음의 중심 자리에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5장은 4장에 이어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의 특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들이 누리는 특권이 무엇입니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 하면 딱 생각나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우리가 지난번에 살펴보았던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이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습니다. 할례 받기 전입니까? 할례 받고 난 이후입니까? 할례 받기 전입니다. 하나님께서 뭇별을 보여주시고 "너의 자손이 이와 같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그가 그대로 믿으니 하나님이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창세기 15장 6절 말씀입니다. 이것은 할례 받기 전의 믿음입니다. 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아브라함 같은 사람이 누리는 특권이 무엇인가를 로마서 5장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여기 '우리'라는 말 속에 누가 포함되어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포함되어 있고,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고 따라가는 나 같은 존재도 여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앞으로 다가올 먼 미래에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질 것을 그대로 믿는 믿음, 부활 신앙을 믿는 믿음, 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는 어떤 특권을 가지느냐는 것입니다.

1-1. 하나님과의 화평

그다음을 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특권 첫 번째입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는 특권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가 누리는 첫 번째 특권, 가장 중요한 특권이 하나님과 누리는 화평입니다.

우리가 화평이라고 하면 화평의 반대말도 있겠지요. 화평의 반대말이 무엇입니까? 반대말은 불화입니다. 그러면 언제 불화한 상태였습니까?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기 전의 상태는 화평이 아니라 불화한 상태입니다. 화평과는 전혀 정반대의 개념이 불화인데, 그 불화한 상태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기 전, 다른 말로 하면 죄의 권세 안에 있을 때입니다. 그때는 우리가 불화한 상태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그냥 관념적으로는 이해가 되는 것 같은데, 사실 마음에 확 와닿지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원죄 사건이 나옵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난 이후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이 금지하신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죄가 들어오고 나서 불화가 생겼습니다. 크게 네 가지 불화가 일어납니다.

첫 번째 불화는 하나님과 죄 지은 인간 사이에 불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항상 때가 되면 에덴동산에 임재하셔서 아담과 하와와 함께 에덴동산 전체를 산책하고 거닐었습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나니까 숨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묻습니다.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아담이 말합니다. "제가 벌거벗었으므로 부끄러워서 숨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가 들어오고 나니까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불화가 생겼습니다. 원래는 거리낌 없이 하나님께 나아가고 거리낌 없이 하나님과 교통하고 교제하던 인간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기에 뭔가 불편하고 부담스러워서 하나님을 떠나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불화, 죄 때문에 일어난 첫 번째 일입니다.

두 번째는 인간과 인간 사이에 불화가 생깁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책망합니다. "너 왜 선악과를 먹었느냐 내가 금지한 선악과를" 아담이 말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당신이 나더러 함께 살게 한 이 여자가 나에게 주므로 제가 먹었습니다." 언제는 아담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그러면서 여자를 기뻐하고 사랑하고 함께 한 공동체를 이루고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죄가 들어오고 나니까 책임을 전가합니다. 아담은 하와에게, 하와는 뱀에게. 인간과 인간 사이에 죄 때문에 불화가 생겨난 것입니다.

세 번째 불화가 있습니다. 인간 자신의 내면에 불화가 생깁니다. 내가 나를 용서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말하지 않습니까? 서로 벌거벗었음을 부끄러워해서 나뭇잎을 가져다가 치마를 엮었습니다. 서로 부끄러워서, 내 죄 지은 나의 내면을 내가 스스로 바라보고 스스로 살펴보기가 너무 민망하고 부끄러운 것입니다. 자기 내면에 죄가 생김으로 인해서 내가 나를 용서하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네 번째 불화가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 사이의 불화입니다. "열심히 땅을 갈아도 땅이 너에게 엉겅퀴를 낼 것이다. 이마에 땀이 흘러야 네가 앞으로 먹고 살 것이다. 땅의 소산을 얻을 것이다." 죄 짓기 전에는 그런 것이 없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마음껏 먹고 마음껏 취하고 누리고 살았는데, 죄 짓고 나니까 자연이 소산을 내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땅에서 엉겅퀴가 생겨납니다. 문제가 심각해집니다.

이것이 죄로 인해서 불화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결과들입니다. 이 죄로 인한 불화는 옛날에 아담과 하와와 하나님 사이에, 그들 사이에, 그들의 내면에, 그들과 자연 사이에만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오늘도 우리 가운데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죄가 관영한 세상에서 하나님과 인간은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습니까? 인간이 하나님을 찾지도 않습니다. 죄짓는 사람들이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다고 자기 멋대로 외치고 다닙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죄로 인한 불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