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퀴드 소비 개념은 폴란드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 근대(Liquid Modernity)' 이론에서 비롯되었으며, 2017년 영국 경제학자 플루라 바르디와 지아나 에크하르트가 소비자 행동 연구 논문에서 처음 제시했습니다. 액체가 담는 그릇에 따라 형태를 바꾸듯, 리퀴드 소비는 고정적이지 않은 유동적 소비 패턴을 의미합니다.
브랜드 로열티는 2025년 처음으로 50% 아래로 하락했으며, MZ세대에게는 소유 자체보다 필요한 순간의 경험이 더 중요해졌습니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소비자들은 좋아하는 브랜드라 하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이 발견되면 망설임 없이 다른 선택지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특히 극단적 합리주의 경향으로 초저가 커머스 이용을 확대하는 반면, 본인이 가치를 두는 곳에는 가격에 상관없이 구매를 진행하는 역설적 소비 행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자동차 산업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일상적 이동에는 최소 비용을, 자기 표현에는 최대 투자를 하는 양극화된 의사결정을 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중가 시장이 가장 큰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Fortune Business Insights의 럭셔리 자동차 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자동차 구독 시장은 2024년 65억 달러에서 2030년 478억 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는 연평균 40.8%의 성장률로, 럭셔리 자동차 시장에서 구독 및 공유 서비스 모델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포르쉐,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이미 구독 서비스를 운영 중이며, 볼보는 2025년까지 생산 차량의 50%를 구독 서비스에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이들 서비스는 단순 차량 제공을 넘어 소비자 개인 취향을 반영한 큐레이션 서비스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고객 구매 이력을 바탕으로 필요한 상품을 먼저 제안하고 취향에 맞춘 서비스를 선별 제공하는 방식입니다.
구독 서비스의 전략적 가치는 단순한 수익 다각화를 넘어섭니다. 고객 생애가치를 일회성 판매에서 지속적 관계로 전환하고, 실제 사용 패턴 데이터를 축적하여 차기 모델 개발에 활용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수천만 원의 구매 부담을 월 구독료로 낮춰 진입 장벽을 완화함으로써 잠재 고객층을 대폭 확대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반대편 극단에서는 완전히 다른 전략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캐딜락은 2026년형 셀레스틱의 시작 가격을 40만 달러(약 5억 7,820만 원)로 책정했으며, 연간 생산 목표는 100~150대 수준으로 하루에 2대만 생산합니다. 전 세계에 동일한 사양이 존재하지 않는 완전 맞춤형 전기 세단입니다. 이는 단순한 고가 정책이 아니라 소유 자체를 예술 작품으로 재정의하는 전략입니다. 대량생산 논리를 완전히 거부하고, 구매자를 제품 소비자가 아닌 창작 협력자로 만듭니다.
Fortune Business Insights에 따르면 50만 달러 이상 세그먼트가 가장 빠른 성장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벤틀리, 롤스로이스, 페라리 등 초고가 브랜드의 최근 3년 판매량은 연평균 15% 증가했습니다. 리퀴드 소비 시대에 브랜드 로열티가 전반적으로 하락하는 가운데, 초고가 시장만은 오히려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리퀴드 소비의 핵심 특징인 극단적 합리주의는 자동차 시장에서 명확하게 나타납니다. 소비자들은 일상 이동에는 구독, 공유, 중고차로 비용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정체성 표현에는 가격에 상관없이 초고가 맞춤형을 선택합니다. 그 사이의 중가 신차 시장은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압박받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제품 다각화가 아니라 소비자 심리의 근본적 변화에 대한 구조적 대응입니다.
표면적으로 구독 서비스는 소유 개념을 약화시키고, 초고가 맞춤형은 소유 가치를 극대화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 두 전략이 상승작용을 일으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