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5] 책임의 경계를 묻다, 국가와 민간 사이의 아동그룹홈
저출생 시대, 현재의 아이들을 돌아보다
계속되는 저출생과 급속한 고령화로 사회 전반에서 지속 가능한 사회에 대한 위기의식이 팽배한 지금, 우리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의 아이들을 걱정하기에 앞서, 지금, 이 순간 우리 곁에 존재하는 아이들을 올바르게 키우고 있는지를 먼저 자문해야 한다. 특히 국가의 보호가 필요한 아동, 그중에서도 아동공동생활가정(이하 그룹홈)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을 위해 우리는, 나아가 국가는 어떤 책임을 다해야 하는가?
그룹홈은 “보호가 필요한 아동(사회적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이 5~7명 단위로 생활하는 소규모 공동체 기반의 주거 돌봄 시설로, 대규모 아동양육시설의 대안으로 가정과 유사한 돌봄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실험적 모델로서 민간의 자발적 실천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그룹홈은 2004년 법제화되며 그룹홈이 국가 정책의 틀 안에서 어떻게 관리되어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촉발되었다.
이 문제는 단순히 행정 절차를 개선하는 것을 넘어, 그룹홈이라는 공간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그리고 어떤 철학과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운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논의로 이어진다. 이는 우리 사회가 '돌봄 국가'로 나아가는 과도기에서 국가와 시민사회가 어떻게 역할을 분담하고 협력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에서 아동 돌봄의 기원은 6·25 전쟁 이후 보호자 없이 거리에 내몰린 전쟁고아들을 돌보기 위한 민간의 자발적 실천에서 비롯되었다. 이러한 시민적 노력은 오랜 시간 제도 밖에서 돌봄의 공백을 메우며 이어져 왔고, 오늘날 그룹홈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그렇기에 지금의 논의는 단지 한 제도의 효율성을 따지는 것을 넘어, 자발적으로 돌봄을 실천해 온 시민사회의 경험과 노력을 국가가 어떻게 제도 안에 포섭하고, 지속 가능한 공공 체계로 정착시킬 수 있을지를 묻는 구조적 과제를 제기한다.
이제는 복지국가로 충분하지 않다: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봉주 교수 인터뷰
이때 우리에게 이론적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는 개념이 바로 ‘돌봄 국가(caring state)’ 모델이다. 기존 복지국가는 주로 소득 보장과 노동시장 중심의 사회보험 체계를 중심으로 발전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여성, 아동, 노인, 장애인 등 ‘돌봄이 필요한 삶의 조건들’을 구조적으로 주변화하거나 사적 영역에 방치해 왔다. 돌봄 국가 모델은 바로 이 지점을 비판하며, 돌봄 윤리를 국가 운영의 기본적인 원리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개인의 안위가 개인의 책임이 아니라 국가의 책임에 해당한다는 인식에 기반한 포괄적 돌봄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돌봄 국가는 기존의 복지국가가 간과해 온 일상적이고 관계적인 돌봄의 책임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분담하겠다는 새로운 지향점을 담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삶의 어떤 시점에는 타인의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돌봄 국가는 ‘의존성’을 인간 조건의 본질로 인정하고, 반대로 ‘비의존적 개인’이라는 이상을 신화적 서사로 간주한다. 이러한 관점은 돌봄을 더 이상 개인이나 가족의 책임으로만 떠넘기지 않고, 사회 전체가 공동으로 감당해야 할 책무로 인식하게 한다.
이러한 비전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10조),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헌법 제34조)는 헌법적 가치와 깊이 맞닿아 있으며, 한국 사회가 돌봄 국가로 이행해야 할 당위성을 뒷받침한다.
[서비스 수혜자를 중심으로 한 포괄적 돌봄 네트워크]
우리는 국가의 책임을 강조하는 이러한 모델에 대해 전문적인 의견을 구하고자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봉주 교수를 만나보았다.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봉주 교수도 아동 복지 체계에서 '돌봄 국가'로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데에 동의한다. 특히 그는 인터뷰에서 그룹홈과 같은 소규모 돌봄 시설에 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책임을 지며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에게 공공성은 단순히 그룹홈을 국가가 운영한다고 충족되는 것이 아닌, 모든 아동이 차별 없이 존엄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국가가 제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윤리적 요청으로 이해한다. 원가정 복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가는 풍부한 재정과 인력을 기반으로 아동에게 가정 유사 환경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하며, 이는 복지국가의 기본 책무에 속한다는 것이다.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이봉주 교수/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홈페이지 제공]
그룹홈의 법인화를 바라보는 여러 시각: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와 그룹홈 사회복지사 인터뷰
포섭하는 것은 돌봄 국가로의 한 걸음을 내딛는 것에 해당한다. 그러나 현실은 단순하지 않다. 그룹홈이 국가 운영 체계 안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대부분의 경우 법인화 혹은 나아가 국영화를 의미하는데, 이는 그룹홈의 본래 특성과 충돌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그룹홈은 대형 양육시설과 달리, 소규모의 일상적인 생활 공간 속에서 아동을 돌보는 ‘가정형 양육’을 지향한다. 이 방식은 하나의 집에 5~7명의 아이와 함께 생활하며 종종 ‘(그룹홈) 엄마’로 불리기도 하는 사회복지사의 개별적 성향과 돌봄 철학에 따라 공간과 일상이 진짜 가정처럼 유연하게 운영되는 자율성이 핵심이다. 마치 가정마다 교육 방식과 분위기가 다른 것처럼, 그룹홈 역시 그룹홈마다 아이들의 특성과 성격 등을 반영한 다채로운 돌봄 방식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그 고유성이 발현된다.
하지만 법인화가 이루어질 경우, 사회복지법인이나 기업체의 운영 구조처럼 인사이동, 표준화된 지침, 일률적 행정 감독 체계가 적용되면서, 그룹홈 운영도 더 획일적이고 상명하복식 구조로 편입될 위험이 있다. 예컨대 현장에서 그룹홈들을 지원하는 민간단체인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는 이러한 체계 속에서는 ‘엄마’의 교체가 가능해진다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공공성 확보라는 명분이 자율성과 돌봄의 질을 희생시키는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그룹홈은 본래 민간의 자발적 돌봄 실천에서 출발한 제도인 만큼, 일률적인 국가 시스템 안으로 완전히 편입되는 데에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 그런데 이러한 자율적 기원을 간과한 채 제도화를 추진한 결과, 과도한 행정 절차와 문서 처리 요구 등이 현장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그룹홈 사회복지사는 “매달 행정 업무만 해도 되게 많은 거예요. 보통 사회복지사들은 그것만 하는데 여기는 (중략) 애들 옷 사줘야지 장 봐줘야지 이런 것도 다 해야 하니까 힘들다”며 난색을 보였다. 이러한 상황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돌봄이 표준화되고 정형화된 서비스가 아니라 구체적 상황과 신뢰 관계 속에서 작동하는 실천임을 상기해야 한다.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 홈페이지 제공]
모든 아이가 행복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
그러나 이는 제도화 자체를 거부하자는 주장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 공동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방식의 제도 설계가 현장의 실천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다. 궁극적으로는 소외된 아이들에게 안정적이고 행복한 삶을 제공한다는 목표에 대해 제도와 현장이 공통된 방향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요구되는 것은 제도의 일방적인 확장이 아니라, 현장의 감각과 돌봄 윤리를 충분히 파악하고 이를 정책 설계에 유연하게 통합할 수 있는 정치적 상상력이다. 서울시와 경기도에서 운영 중인 ‘아동공동생활가정 지원센터’는 이러한 접근의 한 사례다. 이 센터들은 행정적 감독 중심이 아닌, 현장의 문제 해결과 종사자 지원을 중심으로 하는 상담, 교육, 네트워크 연계 등 ‘지원형 관리 체계’를 지향한다. 이처럼 현장을 실질적으로 뒷받침하는 관리 체계의 전국적 확장은, 돌봄 국가로 나아가기 위한 실질적인 기반이 될 수 있다.
이제는 ‘누가 돌볼 것인가’라는 질문을 넘어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누구와 함께 돌볼 것인가’를 묻는 감각이 필요하다. 그룹홈의 현재는 바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실험하는 공간이며,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돌봄 국가의 미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하나의 창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