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켈란젤로는 조각과 회화에서 탁월한 재능으로 많은 업적을 남긴 예술가였습니다. 그는 특히 조각 분야에서 대리석이라는 재료를 능수능란하게 자유자재로 다루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대리석을 만지고 다루었고, 그를 후원한 메디치 가문의 로렌초 데 메디치 덕분에 정원에는 값비싼 대리석이 잔뜩 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대리석으로 자기가 원하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전폭적인 지지와 후원에 힘입어 스물네 살 되던 해에 그는 위대한 작품 피에타를 만들어 냅니다. 피에타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님이 금방 화면에서 뛰쳐나올 것 같은 섬세하고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미켈란젤로가 스물네 살에 이런 위대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었기 때문에 그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고, 위대한 조각가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돌아서서 그는 1501년부터 1504년까지 다비드상을 조각합니다. 다비드상은 높이가 5미터 이상이나 되고 무게는 6톤 이상이나 나가는 엄청나게 큰 대형 작품이었습니다. 그런데 다비드상을 만들었던 그 대리석을 이전부터 눈여겨보고 탐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미켈란젤로는 1501년에 이 작품에 손을 대기 시작했는데, 이 대리석은 1464년부터 어떤 조각가가 만들려고 접근하여 조각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이 대리석을 다룰 수준이나 실력이 되지 않아서 금방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로부터 11년이 지나서 1475년에 또 다른 조각가가 대리석을 가지고 조각을 시도했지만, 그도 역시 포기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 대리석은 임자 없이 주인 없이 나뒹굴고 있다가 26년이 지나서 1501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임자를 만납니다. 미켈란젤로가 드디어 이 대리석을 가지고 위대한 다비드상을 조각하게 된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재질을 가진 대리석이라 하더라도 주인을 만나지 못하면, 다듬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아름다운 조각 작품이 탄생할 수가 없지 않겠습니까? 그렇다면 미켈란젤로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대리석을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었을까요? 그는 재료에 대해서 탁월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성질이 어떠한지, 어느 면을 깎고 어느 면을 덜 깎아야 아름다운 인체를 보여줄 수 있는지, 그리고 이 대리석을 조각하기에 어떤 도구를 쓰는 것이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지, 그는 모든 것을 환하게 꿰뚫고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의 재료를 가장 잘 알고 계셨습니다. 대리석이 미켈란젤로를 만나서 위대한 작품이 된 것처럼, 우리 인간도 하나님 손 안에 있을 때 위대한 피조물로, 아름다운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인간 창조의 재료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실 때 어떤 재료를 사용하셨느냐를 살펴보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왜 이 재료를 사용하셨을까? 이 재료를 사용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빚으신 뜻과 의도가 무엇일까?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면 오늘 깊이 살피고 생각해 보시고, 과연 우리는 하나님의 창조 섭리대로 하나님이 우리를 빚으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는지 우리 자신을 함께 돌아보는 은혜의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기 직전에 그 상태를 성경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5절과 6절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고 땅을 갈 사람도 없었으므로 들에는 초목이 아직 없었고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하였으며 안개만 땅에서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더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없었던 것을 성경은 이렇게 이야기하는데, 오늘 이 말씀을 읽다 보면 창세기 1장 말씀과 충돌을 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창세기 1장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하늘 위의 물과 하늘 아래의 물을 나누시고, 비를 내릴 수 있는 준비도 이미 다 갖춰 놓으셨고, 초목도 다 만들어 놓으셨고, 채소도 돋아나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말씀을 보면 비도 내리지 않고 초목도 채소도 없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1장과 2장이 충돌하는 것 아닌가 우린 그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그렇게 읽어서는 곤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이유는 모든 것을 다 시스템을 완벽하게 갖춰 놓으시고, 인간이 태어나기 전에, 인간을 창조하시기 전에 시스템은 있었으나 아직까지 시스템을 가동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을 나누어 놓으시고, 비를 내릴 준비도 하셨고, 초목도 만들어 놓으시고, 채소도 다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인간이 창조되어서 인간이 재배할 때까지 하나님은 인간 창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동역자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동역자이고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 세계를 인간의 손으로 운영해야 되기 때문에, 아직 인간이 태어나기 전, 인간이 창조되기 전 하나님은 하나님 뜻대로 하나님 마음대로 하나님의 손길대로 이 모든 것을 운행하지 않고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엿볼 수 있는 하나님의 귀한 마음은 인간을 배려하시는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인간을 건너뛰고 일한 적이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실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바로에게 가게 하시고,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40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단 한 번도 모세를 건너뛰고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모세를 통해서 일하셨습니다. 가끔 모세가 하나님의 화를 돋구는 일도 있고, 모세가 불충할 때도 있고, 불순종할 때도 있고, 모세가 충동적인 성격을 부릴 때도 있었지만, 하나님은 오래 참고 또 기다려 주셨습니다. 왜 그러셨느냐 하면 하나님이 1장에서 말씀하신 '너와 나는 동역자라'는 이 말씀, 하나님은 인간을 하나님의 동역자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 동역의 길 때문에 길이 참고 오래 기다리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에 대해 어떤 자세를 가지고 있는가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 됩니다. 원래 언약은 상호적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맺은 동역의 언약은 하나님만이 인간을 건너뛰어서는 안 되고, 인간도 하나님의 허락을 받고 일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와서 예배드리는 우리는 과연 하나님 없이 일하고 계신 적은 없었습니까? 하나님께 모든 것을 결재 받고, 하나님께 여쭤보고 일하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은 적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작은 일부터 시작해서 큰 일까지 우리는 하나님을 건너뛰고 일해 버립니다. 하나님께 무릎 꿇고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이 문제 어떻게 할까요? 하나님, 이 문제 제가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하나님,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저에게 말씀하시면 제가 이 문제 하나님 뜻대로 하겠습니다." 그렇게 엎드려 구하고 간절하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없이 그냥 우리 멋대로 해 버립니다. 그리고 나서 문제가 생깁니다.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하나님은 그때 좀 말리시지. 왜 하나님 그거 말리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우리 멋대로 일해 놓고서는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언약은 상호적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건너뛰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건너뛰지 않고, 하나님을 통해서 일해야 됩니다.
하나님이 비도 내릴 준비가 되어 있었고 초목도 준비하시고 채소도 준비하셨으면서도 인간이 창조될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리셨던 이 하나님의 신실하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동역하는 믿음의 백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어떤 재료로 창조하셨는지 7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